이번에는 대강당 1층 가운데 첫줄에 예매를 했다. 아주 자세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몇달 전에 통영에서 한 독창회와 많이 겹쳤다. 그때 스트리밍을 아주 집중해서 정자세로 봤는데
그렇게 했는데도 다시 실연으로 간절히 보고 싶었다.
시작하기 전에 앉아 있는데
20년쯤 전에 처음으로 연광철의 독창회를 봤던 기억이 났다. 12월이었고 연말이었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많이 비어 있었다.
서울에서 독창회를 하면 요즘은 단기간에 매진되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그의 진가가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이었다.
요즘도 아주 가끔
''그 독창회에 나도 갔었는데..''이러면서 (그때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예전 얘기하다가
어? 나도 갔었는데 너도? 이런 스토리)
그때 관객 정말 없었다는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참 추웠다는 기억이 있다.
그때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Du bist die ruh 를 남자도 저렇게 달콤하고 부드럽게 부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있어서 베이스로서 처음 각인된 가수는 연광철이다.
그때도 독일가곡만 가지고 독창회를 했는데
여러 언어를 섞고 마지막에 한국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전형적인 독창회 구성이 아니라서
그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 이후에도 몇번의 좋은 공연들을 본 기억이 있고
그리고 어제
꽤 피곤했었는데 가슴은 두근거렸다.
나처럼 첫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는..
교회에서 너무 열심히 노래했는지 집에 왔을 때 상당히 피곤했는데
독창회 잘 보겠다고 눈 꼭 감고 누워서 쉬고
6시쯤에 미리 회관에 도착해서 커피 한잔 원샷하고 준비된 자세 ㅋㅋ 로 들어갔다.
역시 너무 좋았다는!!
발음이 너무 좋으니까
노래를 전체적으로 안 듣고
자꾸 아는 단어를 캐치하려는 이상한 짓을 ㅋ
원래 아는 곡들도 (불렀던 곡들) 발음과 호흡 위주로 많이 들었다.
호흡 진짜 힘든 곡들만 많이 고르셨더라는!!
진정 가곡과 오페라를 둘 다 잘 하는 가수였다.
반주 아주 좋게 들었다. 스트리밍으로 볼 때도 인상적이어서 찾아보고 인스타/페북 팔로우 했는데
처음에는 포스터에 다른 사람이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시 통영에서 반주했던 그 사람이었다. (중간에 반주자 바뀌었던 듯)
반주하면서 그처럼 몰입하고
반주가 아니라 독주자인 것처럼 치는 경우는 드물고
보면 참 즐겁다.
막달레나 코제나 공연 이후 반주자가 저렇게 연주에 깊이 engage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감동적이고
무엇보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독일가곡 칠 때도 참 좋게 들었는데
한국 가곡 반주할 때도 너무나 몰입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특별히 앙콜로 불렀던 #그대있음에 는
자칫하면 밋밋할 수 있는 곡인데
노래도 너무 좋았지만 반주도 참 좋았다.
앞으로 공연 보는 것을 줄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지만
공연 가서 매번 이 정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끊기 힘든 것이 공연이다. 물론 다행히? 항상 이렇지는 않으니까!!
최근에 공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임지영 때도 너무 좋았는데!!
연광철 샘 같은 분이 노래하면
(어떤 이들은 내가 불경하다고 하겠지만)
예배에 다녀온 느낌이다. 그만큼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노래도 무지 잘 하지만 평생 음악에만 몰입하고 살아온 이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런 예술가는 국가의 보물이다.
예상과 달리 만석은 아니었는데 (빈자리가 많았음)
전국에서 팬들이 몰려왔고, 또 최근에 내가 많이 주목하는 성악가들도 보였다. 일부러 기차 타고 멀리서 온 가수들을 보면서
역시 성악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좋아하는 샘하고 차 마시고 집에 들어왔는데
선생님도 "너무 잘 하시지?" 이러면서 1시간 동안 감탄의 연발
어제는 생일이었다. 표를 사면서
"연광철 샘은 모르겠지만 ㅋ
생일을 연광철 샘 독창회와 함께 ☺️😁😁" 이러면서 변태처럼 즐거워 했다.
평소에는 첫줄이 10만원이면 얌전히 2층으로 가는데
연광철 샘이니까! 생일이니까!! 그러면서 합리화
나에게 스스로 주는 멋진 생일 선물이 되었다. (평소에는 아주 비싼 향수를 산다 ㅋ 신랑이 안 사주니까, 그런 센스가 없으니까 ㅋ
이런 합리화를 하며)
최근에 #연애망상증 이라는 병에 대해서 들었는데
이 병에 걸리면 상대는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데 자신이 상대와 연애 중이라고 착각하고
상대가 연예인이면 그가 티비 같은 곳에서 "여러분 사랑해요" 하고 말하면 그게 자신에게만 하는 얘기로 잘못 인식한단다.
어제 독창회를 보는데
망상증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어 가사를 들으면서 (물론 다행히 가사를 전부 아는 곡들도 몇개 있었지만)
가수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비밀을 말해주는 것 같은
그런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노래를 잘 하는 것을 넘어 특별한 것이 있는 가수고
나는 쉽게 영향을 받는 인간인 것이고
그런 것 같음
마지막 앙콜로(앙콜 4개 해 주셔서 기뻤다오) 그대 있음에 를 불렀는데
스트리밍으로 봤을 때도 너무 좋았지만
직접 첫줄에서 들으니까 녹는 느낌
나의 뭘 건드렸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원래도 참 좋아하는 곡이고 가사도 정말 아름답다.
담에 한국 가곡 부를 일 있으면
무조건 이거 부를거야!!
20년쯤 전에 카네기 홀에서 벤 헤프너 독창회를 보며 1시간 내내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레파토리가 대체로 북유럽 작곡가들의 곡이어서 언어도 낯설고 모르는 곡이 대부분인 독창회였는데
영혼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나름 힘든 시기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고..
그는 아직도 노래를 할까? 다시 간절히 듣고 싶은 가수다.
아.. 또 음악회 가고 싶다...
줄이기로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