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변성이후인 중학교시절부터 타고난 바리톤의 음성을 소유하게된 그는 독학으로 성악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종이건반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혔으며, 고교 재학시절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음악실로 달려가 자신의 반주로 즉흥 음악회를 열어 수많은 무대 경험을 쌓았으며 전국성가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많은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이미 '학생 스타'로서 입지를 굳혔다. 지독한 노력의 결과로 전혀 개인 렛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1977년 연세음대 성악과에 실기수석으로 입학하였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통하던 대학 재학시절 1천여 곡에 달하는 레퍼토리와 함께 다양한 언어의 뉘앙스를 익혔고 리트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83년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84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오지모 아카데미, 스칼라 가극장 오페라 아카데미, 카를로 베르곤찌 아카데미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유학시절 모든 성악인 들의 갈망인 베르디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등 상과 최고 바리톤 상(86)을 받아 전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마리오 델 모나코 국제콩쿠르 1등 상(86), 칼리아리 비엔날레 국제 콩쿠르 성악 대상(86), 코젠짜 국제 오페라 콩쿠르 1등 상(87)등 주요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며 동양인의 자부심을 높였다. 이 시기에 최현수는 베르디의 고향 부셋또에서 오페라 '리골렛또' 타이틀 롤을 맡아 데뷔하여 기념비적인 열연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으며 '가면 무도회', '라 트라비아타' 등도 언론의 극찬의 받았다. 또한 많은 음악회에 출연하여 '지난 40년간 사라진 진정한 벨칸토의 부활', 호평을 받으며 이탈리아 청중들의 큰사랑과 촉망을 받는 독보적인 바리톤이 되었다.

경력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과장
2002 월드컵 홍보대사, 2003 한국최고의 성악가로 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1등과 차이코프스키상 수상 (1990)
베르디 국제 콩쿠르 1등과 최고 바리톤상 (1986)
파바로티 국제 콩쿠르 대상 (1988)
칼리아리 국제 콩쿠르 성악 대상 (1986)
마리오 델 모나코 국제 콩쿠르 1등 (1986)
코젠짜 국제 오페라 콩쿠르 1등 (1987)
미국 단젤로 국제 콩쿠르 1등 (1990)
대한민국 문화훈장 2회 수훈 [옥관(1990), 보관 (1995)]
문화부 장관상 '효시상' 수상 (1991)
난파 음악상 수상 (1986)
뉴욕을 빛낸 사람 상 수상

학력

 숭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이태리 베르디 국립음악원
 스칼라 가극장 오페라 전문과정
 오지모 아카데미
 카를로 베르곤찌 아카데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센터 전문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