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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필하모닉 | Die Muench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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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독일 전통 사운드의 수호자

베를린, 런던, 파리, 그리고 뮌헨. 위 도시들의 공통점은 한 도시에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을 최소 3개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 3개 도시는 그 나라의 수도라 그렇다 치더라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라는 일 개 주의 수도인 뮌헨에는 2012년 11월 첫 내한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뮌헨 시를 대표할 수 있는 뮌헨 필하모닉 등 초일류 오케스트라가 세 개나 활동하고 있다. 한 도시에서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 켄트 나가노 등 거장 지휘자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뮌헨 시민은 문화적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현대 뮌헨 음악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893년 문헌학자 프란츠 카임에 의해 설립되어서 ‘카임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이 악단은 창립 초기부터 당대 작곡가들의 초연작을 대거 소개하며 공격적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굳혔다. 특히 1910년 말러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교향곡 8번은 토마스 만, 버나드 쇼, 레오폴드 스토콥스키 등 신구 대륙 문화계의 지성들이 객석을 가득 채운 당대 문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꼽힌다.
또한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가 재임하던 시기에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기존의 린츠판본이나 비인 판본이 아닌 자필악보에 충실한 편집으로 재간행한 원전판 연주의 보급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나치스 집권 이후 악단의 성향이 친 나치스로 기우는 바람에 1944년 전황의 악화로 활동 정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으나 전후 미군정의 허가를 받고 새로 부임한 상임 지휘자인 한스 로스바우트의 지휘로 뮌헨 대학 강당에서 연주회를 진행했다. 카임 관현악단 시절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도 종종 객원 지휘자로 출연해 공연 수익금을 악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로스바우트의 후임으로는 프리츠 리거와 루돌프 켐페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 직책을 맡았고, 1979년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상임 지휘자에 부임하면서 악단의 명성이 급상승했다. 첼리비다케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리허설과 상업적인 녹음 거부, 돌발적인 언행 등으로 악명이 높았으나, 악단의 연주력과 표현력을 끊임없이 연마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관현악의 사제’로 불리며 예술적 완성도에 있어서 일체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첼리비다케로 인해 뮌헨 필은 ‘우월’ 하다기 보다는 ‘독특’한, 다른 악단과는 비교를 쉽사리 허용치 않는 유럽 관현악계의 이단아로 새롭게 자리 매김하게 된다. 첼리비다케는 공식적인 상업 녹음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방송을 중심으로 연주회 중계가 활성화되면서 그 음원을 무단으로 복제한 해적판까지 만들어지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첼리비다케가 1996년에 타계한 뒤에는 3년 동안 객원 지휘 체제로 운영되다가 1999년 제임스 레바인이 창단 후 최초의 미국인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다. 레바인은 2004년에 보스턴 교향악단으로 옮길 때까지 직책을 유지했으며, 후임으로 독일 음악의 적자(嫡子)이자 수호자로 불리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부임했고 2012-13 시즌부터 거장 로린 마젤이 악단을 이끌며 독일 정통 사운드와 마젤의 국제적 사운드의 조화로 새로운 명성과 도약을 쌓고 있다. 2차 대전으로 톤할레가 파괴된 후 레지덴츠 궁전이 있는 헤르쿨레스잘과 독일 박물관 등을 공연장으로 사용했으나, 1985년에 가슈타이크 필하모니가 완공되면서 상주악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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