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인물메인 >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직업
오케스트라
사이트
공식홈 |
Follower 863 티켓캐스트 등록
검색랭킹

사진

(2)

동영상

(0)

  • 기본소개
  • 인물소개
  • 출연작품
  • 인맥
  • 영상/포토
  • 관련기사
  • (1)
  • (0)

인물소개

2005년 6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세계적 오케스트라로의 도약을 위해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예술감독으로 영입하여 오케스트라의 기본과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고, 단원 전면 오디션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연주자들로 조직을 재구성했다. 클래식 불모의 시대라는 조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울시향은 우리 음악계의 질적 도약과 클래식 음악의 저변확대라는 과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도전의식과 개척 정신으로 당시로선 실험적인 레퍼토리도 두루 소화하며 한국 교향악단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역사는 1945년 계정식, 현제명, 김성태를 중심으로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에서 연원한다. 1945년 10월 계정식의 지휘로 창단연주회를 가진 고려교향악단은 1948년 10월 제26회 정기공연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한편, 1948년 1월 김생려를 중심으로 창단된 서울교향악단은 김성태의 지휘로 창단 공연을 가진 후 롤푸 자코비와 김생려가 지휘봉을 들었다. 1949년 <필하모니>라는 음악잡지까지 만들었던 이 교향악단이 사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 11월 해군은 해군정훈음악대를 조직하여 이 명맥은 이어졌고 시 공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오케스트라는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되었고, 결국 1957년 8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되기에 이른다. 김생려가 초대 상임지휘자로 재직한 1957년부터 1961년까지의 시기의 서울시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레퍼토리와 훌륭한 연주를 통해 한국 교향악단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2대 지휘자 김만복(1961-69)은 미국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돌아온 전문 지휘자로서 수많은 작품을 한국 초연하는 한편, 국내 창작곡도 공연하는 등 많은 공로를 남겼다. 3대 지휘자 원경수 이후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정재동은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오랜 기간동안 서울시향과 호흡하면서 안정된 앙상블을 선보였으며, 이후 박은성(1991-92), 원경수(1994-96), 마르크 에름레르(2000-2002) 등의 지휘자가 서울시향과 함께 하였다. 서울시향은 넓은 레퍼토리와 세련된 앙상블을 자랑한 정기연주회 이외에도 많은 공연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랑받았다. <범세대음악회>를 통해 국내작곡가에게 곡을 위촉, 초연함으로써 국내 창작곡의 기반을 넓히는 한편 세대를 뛰어넘어 호흡할 수 있는 음악을 관객들에게 제공하였고, 서울시향이 한국에 정착시킨 <팝스 콘서트>는 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를 제공하였다. 56년부터 시작된 <소년소녀 협주회>는 정경화, 백건우, 정명화, 이경숙, 강동석에서 최희연과 양성원, 장한나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 대부분을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서울시향은 많은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의 교향악 수준을 널리 알렸는데, 특히 1982년과 1986년 미국 순회연주, 1988년 유럽 16개 도시 순회연주 등을 통해 음악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 세계무대에 우리민족의 예술성과 저력을 확인시키며, 세계적 문화도시 서울의 상징으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할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최고의 기량과 완벽한 앙상블, 그리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정성과 마음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 국민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대한민국 교향악단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이름이다.

경력

2005 광복 60주년 기념음악회
2005 청계천 새물맞이 기념음악회
2005 정명훈과 서울시향 새로운 출발
2006 정명훈과 서울시향 베토벤 싸이클1~4

플레이DB의 모든 공연DB는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 공연정보로 연동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