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를 이어 내려오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으니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이 그것 때문에 갈등하기도 하지만, 결국 비슷한 삶과 사건을 반복해서 겪었을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특히 미혼모, 양육, 직업을 가지려는 여성의 어려움 같이 시대가 흐르더라도 반복되는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작품 전반에 드러내면서 세대와 위치에 따른 그들의 다른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행복하게 끝나게 되니,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 살면서 겪는 여러 일들이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더라도 계속 반복되는 것들이라는 점, 그리고 세대에 따라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여성들이라는 점이 바로 이 작품에서 하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실 이 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다.
가장 어린 인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본인-어머니-할머니-증조할머니까지 등장하는데, 각각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그 나이대의 인물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의 어리거나 젊었을 때 모습도 보여준다. 많은 부분에서 마가렛은 재키의 어머니고 로지의 할머니지만, 어머니에게 떼 부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내내 증조할머니/할머니/어머니로서의 모습만 보여주었던 도리스 역시 마지막에는 막 청혼을 받은 1930년대의 젊은 여자로 등장한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세대와 시대가 다르더라도 그들이 결국 여성으로서 같은 고민이나 제한점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를 연기해야했지만, 다행히도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네 명의 배우들은 그들의 연기에서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히 모든 인물을 소화해내주었다. 물론 사실 처음은 어색하다. 누가 봐도 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얼굴의 배우들이 어린 아이 옷을 입고 어린 아이의 말투로 대사를 하는게 처음부터 익숙할리는 없지 않나. 하지만 그런 어색함은 길어야 10여 분 정도 있을까, 얼굴에서 보이는 나이는 여전하더라도 그들의 연기와 대사,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녹아있어 객석으로 전달되는 분위기에서 그들의 나이는 딱 연기하는 정도로, 어린 마가렛은 어린 나이로, 결혼을 앞둔 마가렛은 또 그 나이로, 할머니가 된 마가렛은 다시 또 그 나이로 맞춰지게 된다. 그저 배우들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반대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번역과 장면 전환이다.
20세기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런던과 맨체스터를 배경으로 하니, 원작도 영미권에서 영어로 쓴 작품일 것이다. 번안이 아닌 번역 작품이니 우리 문화에서 쉽게 익숙하기 힘든 것들(예컨대 히피 문화)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 그대로 번역어투가 대사에 남아있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듣자마자 '저건 영어를 번역할 말투군'이라고 느낄만한 대사가 몇 번 있었고 그 때마다 작품에 몰입했다가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번역이 단순하게 의미만 담으면 되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경우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초반에는 장면 전환이 무척이나 자주 일어난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열 번은 족히 넘을 정도인데, 장면들의 길이도 길지 않은 바람에 마치 영화의 컷이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중반에 넘어가면서부터는 확 줄어들었지만, 이런 잦은 암전과 짧은 장면과 암전 될 때마다 보이는 무대 위 스탭들의 모습, 그리고 대부분 작품에 어울리지도 않는 암전 중 음악은 초반의 몰입을 참 많이 방해하는 요인들이었다. 작품이 애초부터 그렇게 써 있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하나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게 연출의 역량이라고 본다면... 많이 아쉬운 지점이다.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30분에 이르는 긴 공연시간인데... 사실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흡입력이 높아졌고, 각 인물들이 숨겨왔던 비밀이나 사연이 드러나면서 긴장감도 생겨, 그렇게 지루하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통의 작품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공연시간이니, 사전 공지 정도는 제대로 해주는게 어떨까 싶다.
*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