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든>의 무대는 40년 넘은 허름한 갈빗집. 그 허름한 갈빗집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회식을 하는 한 가족의 역사와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다. 본래 <가든>이라는 세련된 제목을 듣고, 훈훈하고 화려한 연극을 상상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가든>은 바로 갈빗집을 말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연극 후반에 나오지만, 동시에 <가든>은 이 가족의 어머니의 꿈을 가리키기도 한다. 잔디 정원 있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그런 꿈.
그러나 가족이 지금 있는 <가든>과 엄마의 꿈인 "가든"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극은 나의 상상과는 달리 슬픈 연극이었다.
이 가족은 실패로 가득하다. 주인공이자 장남인 박동재는 원래 문학가를 꿈꾸는 똑똑하면서 극도로 소심한 국립대생 청년. 가족의 기대에 떠밀려 고시 공부를 5년 넘게 하다가 결국 좌절한다. 장녀인 박동식은 매우 당찬 성격이지만,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을 이혼하게 해서 결혼에 골인하지만 결국 바람핀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는 여자. 화끈한 성격의 차남 박동호는 술집과 나이트를 운영하면서 음지에서 일하면서 사는 홀아비다. 어머니는 무뚝뚝한 군인 남편과 함께 살다가 평생을 그를 비위맞춰주며 살다가, 남편이 바람을 펴 딴 살림을 차린다. 아버지 박대식은 오랜 군인 생활에도 그다지 높은 자리에 못올랐던 그런 가장. 늙어서는 암에 걸린다. 결국 끝에도 다들 변변치 못한 삶을 계속 사는 채로 극이 슬프게 끝이 난다.
장남 박동재를 중심으로 그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부터 40살 무렵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극의 스토리는 사실 TV 속에서 많이 봐왔던 스토리라인으로, 특별할 것이 없다. 가족 중 누가 암에 걸리고, 누가 이혼하고 어떤 고시생이 실패하는 그런 이야기. 불편하고 식상한 이야기들의 모임이다. 무언가를 풍자하는 풍자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웃긴 코미디도 아니고, 나는 이 연극의 스토리가 무엇인지 의문이 갔다. 팜플렛에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연극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아무런 생각도 느낄 수 없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이 연극의 목적이 염상섭의 <삼대>같이 불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 연극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난 스토리라인만 봐서는 이 연극을 그다지 좋게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극을 그저 그런 연극으로 치부하기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희곡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이 극은 철저히 배우가 돋보이는 연극이다. 아버지 역을 연기한 이주원, 어머니 역의 성경선, 박동재(장남)의 김정석, 박동식(장녀)의 윤영민, 박동호(차남)의 안병찬, 그리고 술집 여자 등 많은 조연 역할을 소화한 정문선까지... 하나 하나의 연기가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캐릭터를 살릴 수 있던 것은 희곡 자체의 캐릭터도 좋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좋은 연기와 캐릭터들로 <가든>팀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마 이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닌가한다. "가족은 서로 기대고 기대하면서 산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기댐'과 '기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의 기대를 받는 장남 박동재, 자녀라는 희망에 기대어 살아나가는 어머니 김정숙. 가족이 경제적으로 기대는 불행을 남편은 해방시켜주고 날 행복하게 해줄거라는 기대를 했던 장녀 박동식. 이 극 속 거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여느 가족들과 같이 서로에게 기대하고 기대면서 살았다.
그런데 이 가족의 이야기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슬프게 끝난 이유도 기댐과 기대에 있다. 기대고 기대하면서 나름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두 가지가 지나쳐서 결국 무너저버렸기 때문이다. 몇 년동안 고시를 안하겠다며 방황했던 박동재를 기대로 억압하여 결국 좌절하게 만든다. 장녀 박동식은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남편과 어긋난다. 어머니 강정숙은 자식들에게 기대고 기대하면서 살지만, 그 자식들이 무너진다. 기대고 기대했던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 둘 무너진다.
흥미롭게도 극 마지막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차남인 박동호이다. 그가 아무런 기대도 받지 않았고 아무런 기댐도 하지 않은채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말썽꾸러기라서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채 결혼을 하고, 지금도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운영하며 사회적 기대에 어긋나서 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또 기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박동호는, 학창시절 학교에 잘 적응하는 학생,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방법을 찾아 "행복"하게 산다. 그는 아내가 암이 걸려도, 마냥 표정이 밝다.
가족에게 기대고 기대는 사람들에게 연극 <가든>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기댐과 기대는 가족을 이어주고, 또 가족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지나침은 금물이라고.
- 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