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길 떠나는 가족>

에디터 조주영

자신의 그림은 가짜라는 한 화가가 있었다.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능력이 없는 한 아들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 있었다. 고향의 소만 찾는 고집 센 한 국민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동시에 진짜만을 그리는 거장,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붓을 든 가장, 조국의 아픔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국민, 그리고 순수함이 가져다준 비운의, 그래서 숭고한 한 ‘인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이중섭. 한국인이 사랑하는 근대화가 이중섭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 석자를 ‘소’의 이미지와 함께 기억한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황소>와 <소>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에 뽑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중섭은 살아있을 때는 인간을 위해 일을 하고, 떠날 때는 인간에게 자신의 육신까지 주고 가는 소처럼 한평생 가족과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 소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소의 동그란 눈이 지닌 순수성까지도 닮아버린 것이다.

이중섭과 연극 <길 떠나는 가족>

1916년 북한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1956년에 눈을 감는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2016년, 그의 탄생은 100주년을 맞았다. 비록 억압의 시대의 희생양이 된 그이지만, 한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화가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의 우직함과 따뜻한 인간애를 그리워해서일까, 혹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현시대를 비교했을 때 상황 또는 사람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일까.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그의 일생은 다큐멘터리, 전시, 연극, 등으로 다양하게 재탄생했다. 그 중 다시 돌아온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유독 반갑다. 그 이유는 이중섭 만큼 연극 <길 떠나는 연극>이 한국 연극 역사에서 걸어온 길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떠나온 길은 다음과 같다. 먼저, 1991년 극단 현대극장은 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故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처음 선보인다. 시대적 상황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극작가 김의경의 질문이 녹아든 <길 떠나는 가족>은 동아연극상 연기상, 서울연극제 작품상 등 주요 연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는다. 그 후로도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서울시극단, 국립극단을 거치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올해 공연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올 봄 극단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에 참석하지만 귀국 며칠 뒤 타계한 김의경 선생을 기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공연은 1991년 훨씬 이전부터 이중섭과 함께한 故 김의경 선생을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무대란 캔버스 속 살아 숨쉬는 오브제들

초연 이후 23년 만에 재연하게 된 2014년 <길 떠나는 가족>이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던 데에는 단연코 ‘무대’가 있었다. 이는 2016년 무대로도 이어졌다. 무대연출이라 하면 흔히 세트를 생각하는데, 무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중섭과 관객들이 함께 그려나갈 수 있는 상상 속 흰 도화지만 있었을 뿐이다. 여백을 절제미로 채워 넣는 데는 이영란 오브제 디자이너가 큰 몫을 했다. 그는 실제 무대를 캔버스라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중섭의 그림에 평면적으로 존재했던 사람부터 사물, 작은 동식물까지 오브제들은 생명력을 얻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인 <길 떠나는 가족>에 그려진 아내 이남덕, 두 아들 태현과 태성, 이중섭으로 추정되는 소를 모는 사내가 그 예이다.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는 서귀포에서의 게, 물고기, 새, 등도 이에 속한다. 여기서 바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흥미로운 관람포인트가 등장한다. 바로, 배우들은 동식물을 몸으로 연기하여 오브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 방법은 이중섭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되었던 삶에서 잠시 행복한 기간이 있었다면 단연코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떠났던 서귀포 시절일 것이다. 그곳에는 불안정한 시기였음에도 가족들과 바닷가에서 꽃게를 잡고 반찬으로 해먹는 등 소소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극은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들을 통해 관객들이 당시 이중섭이 처한 상황을 몸과 머리로 느끼게 돕는다.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는 언뜻 사소해 보였을 오브제들이 사실은 작품의 정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음을 관객들은 이해하게 된다.

이외에도 이 부분은 관객들로 하여금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기에 영리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노니는 오브제들, 즉 이중섭과 가족이 누리는 행복 속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이중섭의 상황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한이 깃든 음악의 선율이 흘러감에 따라 알게 된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이중섭의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의 가족들의 유효기간이 존재한 행복했던 날들에 대한 회상인 동시에 이중섭이 꿈꿨던 사물과 사람,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없는 유토피아이자 이상향이었음을.

몽상적이고 동화적인 극의 분위기에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오브제는 바로 ‘인형’이다. 극 전체에 걸쳐서 다른 인형이 총 3번 등장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바느질을 하는 인형이고 두 번째는 뜨개질을 하는 인형이다. 마지막은 목각인형이다. 이영란 미술감독은 인형들이 이중섭의 아이들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인형의 정체가 심상치 않다. 목각인형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연희단거리패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언급한 디프테리아로 잃게 된 이중섭의 첫 아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 이중섭이 죽은 후 등장하는 목각 인형은 죽은 이중섭을 톡톡 친다. 그리고 무대 위의 길을 두 저승의 존재가 함께 걷는다. 먼저 간 아들은 멋진 소풍을 끝마치고 오는 아버지를 마중 온 것이었을까. 그리고 ‘아버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을까. 이영란 미술감독은 오브제아트인 물체극에 대해 ‘물체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야기, 배우 혼자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 물체와 배우가 만났을 때 배우에 의해 물체가 움직이면서 영혼을 통해 나오는 언어, 그 둘만이 낼 수 있는 언어’라고 정의한다. 오브제인 인형 혹은 이중섭 혼자로서는 의미가 전달될 수 없는 극이 지닌 감수성은 둘의 협연을 통해 최대치로 표현됐다.

이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는 입체적인 사람들 사이로 평면화된 소품들이 눈에 띈다. 바로 목탄화로 표현되어 있는 주전자, 컵, 생선, 등이다. 이영란 미술감독의 말대로 목탄화의 색감과 질감은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오브제들과 함께 극 전체에 몽상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을 준다.

‘길’을 걸어간다는 것

배우들과 오브제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길’을 통해 등장하고 퇴장한다. 처음 선보이는 세트이기에 왜 추가를 하였는지 생각해볼만 하다. 먼저, 흔히 길은 ‘삶’으로 비유된다. 무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이 길에서는 인형이, 작품 속 오브제들이 아주 천천히 걸어나온다. 그들의 조심스럽지만 강렬한 몸짓은 마치 실제와 환영, 삶과 죽음을 서서히 연결하는 제의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경계는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이중섭의 현실은 이중섭에게는 진짜가 존재하지 않는 가짜의 세계, 즉 환영일 수 있고, 반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의 환영은 오히려 그에게는 세상의 질서가 뚜렷한, 안개가 걷힌 맑은 실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물리적으로는 죽은 아들, 즉 목각인형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중섭이 죽는 곳은 인형이 나온 곳과는 다른 우리에게 보여지는 무대이다. 이는 실제로는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이분화 하고, 인위적인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사실 그리 유의미하지 않다는 연극의 메시지를 시사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길을 걷는다. 이미 포장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상징적인 행위이다. 그렇기에 특히 과거 실존했던 인물들이 걸었던 길을 표현해야 되었을 연극 <길 떠나는 가족> 배우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연기는 훌륭했다. 특히 이중섭 역의 윤정섭이 내뿜는 에너지는 공연장을 압도했다. 순수. 행복. 슬픔. 그리움. 실망, 좌절과 절망. 집착. 해탈, 광기 등 화가를 떠나 ‘인간’ 이중섭이 당시 지녔을 감정의 스펙트럼을 최대로 보여줬다. ‘음메’를 외치는 중년의 이중섭이 병원에 홀로 지내며 전등을 힘차게 밀어내는 최후의 감정까지도 쏟아낸다.

이러한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데는 ‘음악’도 큰 몫을 한다. 한국의 한의 정서를 지닌 우리 가락은 배우 이중섭의 삶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이러한 데에는 김시율 음악감독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피아노와 국악기, 드럼을 준비하면서 배우의 호흡을 따라가는 작곡을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이중섭이 불에 타 쓰러지는 장면에서 같이 쓰러져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은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주제와 이에 힘을 실어주는 음악과의 합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깊이를 더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인간의 치열한 고민과 내적 갈등이 이중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삶이 연극 속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중섭에게는 그림이었던 것처럼 개인의 각기 다른 열정이 될 수도 있고, 가족과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인 ‘고향으로의 회귀’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연극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은 이성과 감성이 오랜 시간 기억할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에게 필요한 건 황폐한 시절을 견뎌낼 만큼의 순결한 영혼이었고, 이중섭은 폭발하는 천재이자 맑은 영혼의 모습으로 부활했다.’고 말한다. 이중섭 역할을 맡은 윤정섭 배우가 인형과 함께 걷고,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던 커튼콜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 순간 인형은 더 이상 ‘죽은 아이’가 아니었다. 대신, 이중섭처럼 순수한 영혼을 지녔기에 고난을 피해갈 수 없던 우리의 삶으로 부활했다. 이처럼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물음을 던진다. 당신이 걸어온 길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출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작성자 아트엠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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