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푸름과 봄. 이 두 단어의 조합, 푸른 봄은 꽤 젊음을 잘 담아내는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젊음은 인생을 꽃피우게 하며, 새싹처럼 생명력을 마구 풍기는 시기이다. 이와 같은 젊음의 생명력과 소중함은 청(靑)에 담긴다. 그러나 이 푸름은 바로 뒤따라오는 봄(春)이라는 단어에 의해 ‘유한함’이란 선이 그어진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나 일 년에 한차례 있는 봄처럼, 잠시 스치고 지나가고 마는, 언젠가는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기 위하여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기가 바로 청춘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코끝에 스치는 알싸한 겨울 냄새와 눈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장마철의 눅눅함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애정을 품는다. 따라서 푸른 봄을 소모하는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자신의 젊음이 유한한 것임을 깨닫고, 인생을 꽃피우기 위해 꾸준히 물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한재인 젊음을 마치 무한히 지속되는 것처럼 소비하는 사람도 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하루라도 빨리 여름과 겨울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



Learning to Labor



연극 <청춘예찬>의 ‘청년’은 후자에 가깝다. ''청년‘에게 찾아온 봄은 푸르기 보단 오히려 칠흑 같이 어두울 뿐이다. 22살이지만 고등학교 졸업은 아직 못하였고, 마땅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는 방구석에서 술이나 마시며 이혼한 전 처에게 용돈 타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염산을 뿌려 눈이 멀었으며, 술김에 나눈 하룻밤의 사랑은 그에게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와 하루사이에 부양해야할 식구가 더 늘어나고 만다.



연극 <청춘예찬>을 보며 ‘폴 월리스’의 저서, 『Learning to Labor』가 떠올랐다. 교육이 사회적 지위의 상승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자녀가 가지고 있는 반(反)학교의 문화가 그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고 만다는 것, 본인도 단지 노동자 부모와 같이 노동하기 위해 배울 뿐이라는 것이 이 저서의 주 골자이다.



<청춘예찬>에서 만난 ‘청년’의 모습은 『Learning to Labor』가 이야기하는 노동자 계급의 자녀의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청년’에겐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으며, 주어진 선택지 중 그가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를 둘러싼 어두운 가정환경은, 굴러들어온 나쁜 패를 내미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을 정도로 ‘청년’을 그저 무력한 개인으로 자리하게 한다. ‘청년’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으면서도 ‘학교에 나오는 것은 일주일 간 더 생각해 보겠다.’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어쩌면 ‘청년’ 스스로 자신이 배움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Learning to Labor』가 이야기하는 교육의 아이러니와 같이, 연극 <청춘예찬>은 ‘예찬’이라는 반어법을 통해 암울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던진다. “어떤 멍청한 사람이 담뱃값만 올려놨다.” 라고 이야기하는 코믹함 속에는 무력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게 하는 상황에 대한 청춘들의 절규가 서려있다.



Say ''Something'' Like It''s ''Nothing''



<청춘예찬>은 철저한 인과관계로 묶인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를 통해 극을 전개하지 않는다. 이렇다 할 줄기 서사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청년의 불우한 상황이 <청춘예찬>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9개의 막을 통해 ‘청년’의 상황을 먼발치에서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청춘예찬>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와 닿는다.



말기 암 환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담담하게 전하는 TV 드라마의 장면처럼, 슬픔을 감춘 담담한 목소리는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법이다. <청춘예찬>이 특별한 이야기 없이도 관객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처럼 불편한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독특한 화법을 통해서 극을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오가는 대화를 보며 웃음을 짓는 찰나, 툭 하고 던져지는 몇 마디의 대사에 관객들의 마음은 무겁게 짓눌리며 멍해지고 만다.



연극 <청춘예찬>의 무대에는 딱히 이렇다 할 장치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그 자체로 메리트라는 어느 인디 밴드의 노랫말처럼, 휑한 <청춘예찬>의 무대는 청춘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예쁜이’나 ‘수발이’ 등의 배역은 한 차례를 제외하곤 등장하지 않아 커튼콜 때가 되어서야 이와 같은 배역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게 하는데, 이처럼 <청춘예찬>이 등장인물을 소모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청춘예찬>의 무대가 표하는 바와는 괴리감이 느껴져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결핍된 무대와 과잉된 캐릭터 사용방식 사이의 어색한 간극은, <청춘예찬>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극복된다. 특히나 ‘아버지’ 역의 윤제문 배우의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초연 당시 제36회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청춘예찬>에서도 역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유일무이한 캐릭터 소화력을 뽐내고 있었다.



언젠가 떨어지고 마는 야광별



<청춘예찬>은 ‘청년’이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위해 붙인 야광별 앞에 서면서 막을 내린다. 야광별은 형광등이나 햇빛을 받아야 빛을 발한다. 그리고 얼마간 빛을 발하고 나면, 점차 그 빛의 세기는 약해지고, 접착력이 떨어지면 결국 추락하고 만다. ‘청년’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 야광별처럼 위태롭다.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0명 중 76.4%가 이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탈출을 꿈꾸는 미친 세상은, 야광별이 잠시나마 빛날 수 있는 햇살도 드리우지 못할 것 같다. 항성처럼 밝고 지속적으로 빛나야 할 청춘을 야광별로 수식하여야 한다는 사실과, 이 야광별 같은 청춘이 단 한 차례도 빛나보지 못한 채로 천장에서 떨어지고 말 것 같다는 불편한 예감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미친 세상에선 오히려 ‘청년’의 무계획적이고 방랑한 생활 패턴이 더 설득력을 갖춘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정작 자신은 이 나라를 포기하고 외국으로 떠날 계획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해라. 젊으니까.” 하지만 이 청년에게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하라고 이야기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 수 있을까. 그 가벼운 문장 한 줄에 얼마나 큰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깨닫고나 있을까. 이미 푸른 봄을 떠나보낸 사람들, 카르텔과 같이 철저한 이익관계에 묶인 기성세대의 이 같은 말들은 사실 폭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연극 <청춘예찬>은 초연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암울한 현실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이 작품이 여전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은, <청춘예찬>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어느덧 중견배우가 된 사이에도 바뀐 건 오로지 극중 배우가 언급하는 드라마 작품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젊으니까 행복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말을 내뱉는 이들에게 조소를 날리며 모든 청년들에게 감히 고하고 싶다. 잘 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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