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림걸즈> 내한공연

-부족한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 -

에디터 양세훈

내한공연 붐

2017년 국내 공연계는 내한공연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다. 1월 초 메탈 계의 제왕(帝王) ‘메탈리카’의 내한을 필두로, 기타의 신 ‘제프 벡'과 이번 처음 내한공연을 갖는 영국 인기 록 밴드 ‘콜드플레이’까지, 유명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올 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핏불’이나 ‘혼네', '자미로콰이'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의 공연 일정이 남아있는 터라, 많은 관객들의 가슴 설레는 밤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계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첫 공식 내한공연부터 아시아 최초 내한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관객들을 맞이할 예정인데, 뮤지컬 내한공연 라인업은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일정 못지않게 화려하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시카고>, <캣츠>, <리걸리 블론드>와 같이 유명 작품들로 구성된 내한공연 라인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하기 충분하다.

이러한 내한공연 풍년에 한 몫을 보탠 작품이 있으니, 이는 바로 뮤지컬 <드림걸즈> 오리지널 내한공연이다. 뮤지컬 <드림걸즈> 내한공연이 갖는 의미는 꽤나 특별하다. 앞서 언급한 <지킬 앤 하이드>나 <캣츠>와는 달리, <드림걸즈>의 오리지널 무대가 국내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드림걸즈> 오리지널 내한공연은 “오리지널 소울에 압도당하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을 내걸며 내한공연 대열에 합류, 오는 4월 4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새롭지 않은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

뮤지컬 <드림걸즈>의 서사는 사실 지질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밴드 혹은 보컬 그룹이 갈등으로 인하여 해체되고,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감동적으로 재회하여 화해한다는 이야기는 딱히 관객들에게 새롭지 않은 이야기이다. 1960년대 전설의 흑인 R&B 여성 그룹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스’의 실화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뮤지컬 <드림걸즈>는, 언뜻 보기에 또 다른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 작품의 감동까지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라는 기시감마저 떨쳐내기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뮤지컬 <드림걸즈>는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스’의 실화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부함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있다. 뮤지컬 <드림걸즈>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는 가장 먼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잘 녹아들어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작품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에선 백인 중심의 음악이 성행했고, 흑인 음악을 백인 중산층의 취향에 맞추어 수정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한 차트 순위권으로 곡을 올리기 위하여 뒷돈이 오고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뮤지컬 <드림걸즈>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작품 곳곳 녹아들어있어 작품의 극적성을 배가시킨다.

자신들의 곡을 백인 그룹이 무단으로 표절하자, 우리도 이제는 비열한 길로 들어서겠다며 새로운 다짐을 다지는 'Steppin' Into Bad Side'는 뮤지컬 <드림걸즈>가 꽤나 탄탄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쌓아 올려져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넘버이다. 가사에 맞추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멋진 조명은 이 넘버가 제공하는 부차적인 재미라고 할 만하다.



이렇듯 시대적 배경이 녹아들어 탄탄해진 기반 위에서 ‘드림매츠’ 멤버의 꿈과 사랑 그리고 우정이 펼쳐지니, 작품의 메시지는 날개를 단 듯 객석으로 날아들어 관객들의 마음속에 박힌다. 작품의 진정성은 단순히 소재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이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달려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지질한 이야기에 진정성을 실어주는 것은 바로 소울 넘치는 넘버이다. R&B, 재즈, 부기, 디스코, 팝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구성된 <드림걸즈> 넘버의 완성도는 이미 두 차례의 수상경력으로 검증 받은 바 있다. 완성도와 드라마를 겸비한 <드림걸즈> 의 넘버는 서사 전개에 많은 힘을 보태는데, 이는 작품이 전하는 감동과 재미를 크게 높이는 요소이다. 많은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는 'Listen' 이외에도, 'One Night Only',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와 같은 훌륭한 넘버를 감상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다.

콘서트와 뮤지컬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

뮤지컬 <드림걸즈>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보아도 단연 음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작품이다. 그러나 훌륭한 넘버에 많은 부분 의존함으로써 적지 않은 단점들이 파생되는데, 이러한 단점들을 가장 잘 축약하는 표현은 ‘콘서트스럽다’ 일 것이다. 작품의 일정 부분들이 콘서트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극중 인물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림매츠’의 첫 무대부터, ‘제임스’가 갖는 몇 차례의 무대, 그리고 피날레까지 ‘극중콘서트’의 형식을 취하는 장면들은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극중콘서트’의 공연장면 후 백 스테이지로 이어지는 구성이 작품 내내 반복되는데,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서까지 계속되는 단조로운 구성은 이따금 지루함을 자아낸다. 또한 술집 카운터나 분장실 등의 세트를 넣고 빼는 방식으로 꾸려지는 <드림걸즈>의 무대 또한 콘서트와 뮤지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새이다. 밋밋한 인상을 주다가도 때로는 지나치게 화려한 <드림걸즈>의 무대는 장면 간 밸런스가 좋지 않은 편이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사정은 비슷한 지적을 받았던 뮤지컬 <보디가드>에 비해 훨씬 나은 편이다. 전반적인 서사 진행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서트와 뮤지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드림걸즈> 내한공연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훌륭한 개인의 기량을 뛰어넘지 못하는 하모니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위원은 참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장르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어요.” 해당 심사위원의 걱정은 필자가 국내에서 두 차례 공연되었던 라이선스 <드림걸즈>를 보기 전 뇌리에 스쳤던 걱정과 맥이 닿아있다. 국내 배우들의 기량이 출중함은 더 이상 이야기하기에도 입이 아프지만, 국내 배우들이 R&B와 재즈와 같은 흑인 음악을 ‘맛깔나게’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또 다른 것이었다.

외국인이 판소리를 한국인만큼 소화할 수 없듯이, 국내 배우가 아프리칸 아메리칸처럼 ‘흑인 음악’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은 쉽게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드림걸즈> 내한공연 프로덕션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올 캐스트로 구성되어, 이와 같은 걱정을 사전에 불식시켰다. 그러나 내한공연 성패의 여부는 가히 배우들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아직 한 가지의 걱정이 남아있던 셈인데, 이는 바로 이번 프로덕션 배우들의 기량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뮤지컬 <드림걸즈> 내한공연 주연배우들의 놀라운 기량은 이러한 우려까지 종식시키기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에피’ 역의 브리 잭슨이 가장 눈부시다. 그녀의 파워풀한 가창력을 보고 있노라면 객석에서 벌떡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브리 잭슨의 캐릭터 해석과 연기도 가히 인상적인데, 가창력과 캐릭터 해석, 연기력이 모두 어우러지는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는 이번 공연의 단연 하이라이트이다. 멤버들과 ’커티스‘에게 그룹을 탈퇴할 것을 종용받는 ’에피‘가, 5분이 넘는 긴 호흡으로 서운한 감정을 토해내는 이 장면은 브리 잭슨의 기량을 유감없이 맛볼 수 있는 대목이다.



커튼콜 때까지 몸을 들썩거리며 주체 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는 ‘제임스’ 역의 닉 알렉산더 역시 주목할 만하다. 멤버들 간 갈등이 깊어지는 시퀀스 직후, ‘제임스’의 등장만으로도 달라지는 무대의 공기를 보아하니 그는 쇼 스토퍼로서 훌륭하게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듯하다. 'Jimmy Got Soul‘을 외치는 ‘제임스’ 역은 그에게 딱 걸 맞는 배역처럼 보인다. 무대를 자유롭게 휘젓는 그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관객이라면, 닉 알렉산더가 소울을 'Got' 한 배우임은 그 누구도 의심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기량을 뛰어넘는 하모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꽤나 아쉽다. 이 작품은 ‘에피’가 아닌 ‘드림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개인의 기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출연진 간의 하모니일 것이다. 하지만 브리 잭슨의 기량이 워낙 압도적인 탓일까, ‘드림스’ 멤버가 멋진 조화를 선보여야 할 장면에서도 하모니 보단 개인의 기량이 더 눈에 들어온다. 화합의 측면에서 보자면 ‘에피’역을 맡은 브리 잭슨의 출중한 실력이 오히려 독이 되고 만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드림걸즈> 오리지널 내한공연의 출연진은 관객들이 ‘내한공연’에 거는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할만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객들의 관람 후기는 날마다 정반대의 의견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심지어 다수의 관객이 환불까지 요청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는데, 개인의 취향차이로 인한 결과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엇갈린 반응이다. 왜 이렇게 관객들의 반응이 갈리는 것일까? 이 이유는 이번 <드림걸즈>가 당당하게 내걸었던 ‘오리지널 소울에 압도당하다.’ 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한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

관객들이 ‘오리지널 내한공연’에 거는 기대는 당연히 브로드웨이 혹은 웨스트 앤드를 가지 않고도 동일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많은 관객들이 라이선스 작품에 거는 기대와 유사해보이나, 기대치에 대한 그 깊이는 전혀 다르다. 내한공연을 예매하는 관객들은 라이선스 무대의 수준을 뛰어넘어는 해외의 ‘그 무대’가 오롯이 내 눈앞에서 재현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드림걸즈 내한공연은 브로드웨이에서 오디션을 진행했을 뿐, 실제 브로드웨이에서 꾸려지고 공연을 치룬 <드림걸즈> 프로덕션이 아니다. 달리 말해, 이번 <드림걸즈> 내한공연의 출연진 대다수는 <드림걸즈>로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오리지널 내한공연이라고 칭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결성된 프로덕션이 끌어안고 있는 문제는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출연진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회차별 캐스팅에 따라 흔들리게 될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여 본다면, 관객들의 반응이 날마다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정상적이다.

브로드웨이에서의 <드림걸즈> 무대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험을 누적할 기회가 없던 이번 프로덕션에서, 주연 배우들의 부재를 훌륭하게 메워 줄 대역을 기대하기란 더욱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주연 배우가 모두 캐스팅 변경 없이 무대에 오른 회차 라고 하여도 이번 프로덕션이 <드림걸즈> ‘초연자’ 임이 간혹 드러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앙상블 간 좋지 못한 합이 그러하다. 앙상블 간의 합이야 공연 초반임을 감안하였을 때 완벽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던 ‘오리지널 내한공연’이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이기도 하다.



달갑지 않은 과거 문제의 재현

2009년 국내 뮤지컬계는 <드림걸즈> 내한공연과 비슷한 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그 논란의 주인공은 <지킬 앤 하이드> ‘내한공연.’ 당시 <지킬 앤 하이드> 내한공연 프로덕션은 호주권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제작팀과 공동으로 꾸려진 것으로서, 이번 <드림걸즈>의 상황과 흡사했다.

하지만 2009년 <지킬 앤 하이드>의 내한공연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드림걸즈> 내한공연에 비해 더 높았다. ‘내한공연’이라는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원 캐스트 합류하였던 유명 브로드웨이 스타 ‘브래드 리틀’의 건강이 악화되자 사전 공지 없이 대역을 출연시킨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무대에서 립싱크라는 관객 기만적 행동까지 자행되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이 좋지 못한 여러 이유로 인하여 2009년 <지킬 앤 하이드> 내한공연은 꽤나 많은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했다.

당시 이 작품의 홍보 문구는 <드림걸즈> 내한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았다. “오리지널을 향한 13년의 기다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홍보문구가 아니던가? 게다가 8년 전과 오늘 날 사이에 홍보문구 만큼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는 붉어지고 있는 논란과 비판의 목소리들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2009년 공연계에 불거졌던 논란이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8년 전의 감동도 아닌, 8년 전의 문제가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간 향상된 국내 관객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약 두 달간의 공연 일정이 남아있는 <드림걸즈> 오리지널 내한공연. 이 내한공연은 과연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오리지널에 대한 불편한 기시감을 완벽히 지워낼 수 있을까?

* 다른 리뷰기사는 아트엠콘서트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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