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
우연히 대구에서 다시 연극을 볼 줄을 생각 못했다. 서울 생활을 할 때도 영화는 종종 혼자서 보러 가곤 했지만, 연극을 누구랑 같이 가는 것은 여간 쉽지 않았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는 갈 상대가 마땅치 않았고 공부를 할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예전 대구에 있을 때, 동성로의 소극장에서 ‘달구벌만평’을 출연하는 홍문종선생(후배 홍성훈의 아버님)이 하는 연극을 본적이 있었다. 그 이후 약 4년만에 대구에서 보는 연극이었다.
소극장에 도착하여 입장권과 브로쉐를 보니 이 연극은 모노드라마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소극장이지만, 덩그런 무대에 혼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베터랑 연극배우라도 쉽사리 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객석의 관객들이 빼곡히 들어찬 공간에서 말이다.
불이 꺼지고 한 여인이 물 주전자와 잔을 가지고 방으로 설정되어있는 무대로 들어섰고 손님은 관객이라는 설정 하에 배우가 객석을 보고 말을 건넸다. 십대 후반에 서울로 취직하러 집을 나간 한 처녀가 한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사창가로 굴러들어오게 되고 거기서 20년 넘게 생활을 하여 어느덧 ‘노계(老鷄)’가 된 늙은 창녀의 인생사를 읊어 주는 내용이었다. 불행하게 이곳에 끌려왔지만, 이 곳이 바로 자신의 삶의 터전이기에 아직도 이곳을 버리지 못하고 몸을 파는 40대 여인의 사연 많은 인생의 굴곡들을 손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나중에는 자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인신매매범에게 연민의 정을 넘어서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고 살림까지 살던 중 그토록 갖고 싶었던 아이를 임신하고야 만다.
자신도 남들처럼 신랑이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버젓한 한 가정을 꾸리면서 살 줄 알았는데, 아이를 갖길 원하지 않은 남자의 완고한 고집으로 인해 불행하게 아이를 유산하고야 마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길 원했던 그녀의 희망은 단지 꿈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지도 몸을 파는 신세이기에 이 사창가는 바로 자신의 삶의 터전인 것이고 여기서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연극을 보는 내내, 배우의 소름 끼칠 정도의 몰입도와 연기력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다리만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극이 끝나자마자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그 정도로 그 배우의 연기력은 대단하고 놀라웠다. 미생의 오과장역의 이성민 배우 역시 우리 대구가 낳은 훌륭한 연극인이다. 배우 최영주는 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 명의 향토 배우임에는 틀림이 없을 거다. 예술의 불모지로만 알고 지냈던 대구에서 이와 같은 순도 높은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어 수영이 형에게 감사한다.
이 겨울이 가기 전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를 보기 위해 극장만 찾지 말고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소극장으로 한 번 발길을 옮기는 것은 어떨지 한 번 권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