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무대 뒷 편, 브래드 리틀 분장실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탁자 위의 홍삼 드링크와 거울 앞에 붙여진 ‘작은 빵/Bread Little’이라고 적힌 메모 한 장이다. 메모는 팬들로부터 ‘작은 빵’이라고 불리는 걸 아는 그가 글씨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고 해 한국 스텝이 써 준 것이라고 한다. 홍삼 음료수는 그가 피곤할 때 마다 먹는 그만의 특효약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먼 나라에서 바다 건너 온 파란 눈의 배우지만 그와 한국은 결코 낯선 사이가 아니다. 지난 2005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으로 그는 한국 관객들에게 말 그대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연일 매진 행진에는 항상 브래드 리틀이라는 이름이 따라붙었다. 인기에 힘입어 2006년엔 한국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기도 했을 정도. 그 당시 생긴 두터운 팬층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킬앤하이드>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조승우, 류정한, 홍광호가 연기하며 국내에서 역시 두터운 마니아를 거느린 작품과 브래드 리틀의 만남이라니.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킬앤하이드>가 지금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아냐고 묻자 “예(yeah)~”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3년만에 방문한 그를 여전히 뜨겁게 맞아준 한국 관객들에게, 그는 전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마산에 이어 서울공연이 성공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나를 반겨줘서 놀랍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사실 한국 스텝들과 서양에서 온 배우들이 짧은 시간 내에 무대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나에게도 도전이었다.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무대를 만들어가는 개념에 있어서도 두 문화는 너무 달랐다. 지금은 서로 많이 배웠고 가족처럼 같은 팀이 되었다(웃음).


현재 공연랭킹에서 몇 위를 하는지 알고 있나.
전혀 모른다. 어떤가? (1위라고 하자) 진짜인가? 와우! 하하하

전혀 모르고 있나보다. 원래 외부적인 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가.
내 무대에만 집중을 하고, 그런 외부적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언론에서 내가 무대에서 어떻게 하는지, 팬들이 내 무대를 어떻게 말하는지, 또 티켓 판매가 어떻게 되는지, 그런 피드백을 들었을 땐 좋던 나쁘던 자극을 받고 연기에 영향을 준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당시 한 신문 리뷰에서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들어올리는 손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후 공연을 하면서 올리는 손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었다. 공연 도중 내가 어떻게 손을 올렸던 지에 대해 기억하려고만 했었지. 배우에겐 정말 안 좋은 일이다. 그 기사를 머릿속에서 지우는데 세 달이나 걸렸다. 그래서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웃음). 공연이 좋았는지에 대해 ‘Yes, 또는 No’로만 듣고 싶다(웃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면적인 연기뿐 아니라 무대에서 넘어지고 구르고 하는 연기도 많았다.
매우 힘들다. 공연 시작하고 나서 체중이 3~4킬로그램이 빠졌다. 이건 좋은 게 아니다(웃음). 매주 1~2킬로씩 빠지면 곤란할 것 같다. 공연이 정말 재미있지만 무대에서 구르고 뛰는 통에 무릎과 다리가 시리다. 더 이상 20대가 아니어서 옛날처럼 빨리 회복되진 않는다. 극중에 한쪽 다리로 체중을 싣고 춤을 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특히 쉽지 않다.

목 관리, 체력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따로 하는 게 있는지.
(홍삼 음료수들 들어 보이며) 하하. 언론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해오지만 웬만해서는 거절할 수 밖에 없다. 주 8회 공연이라는 건 정말 쉽지 않고, 그렇게 공연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도, 관객을 위해서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주말 공연을 위해선 목요일 저녁부터 월요일까지는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는다. 한 마디도 한 할 때도 있다.




앞으로 지방 공연까지 많은 공연이 남아있다. 주 8회 공연을 잘 소화할 수 있겠나.
누가 알겠나. 나도 사람이라 다른 사람처럼 아플 수도 있고, 피곤할 수도 있다. 항상 무대에선 최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나머지 공연을 위해 한 번의 공연을 빠져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아주 실력 있는 언더스터디가 있어, 피치 못할 경우 그를 보더라도 실망하지는 않을 거다.

공연이 시작되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기곤 한다. 마산에서부터 현재 서울 공연까지, 실수했거나 아차 했던 일이 있었나.
너무 너무 많았다. 마산에서의 첫 공연 때는 2막이 시작할 때까지 내 의상담당자가 없는 채로 공연을 해야 했다. 언제 무대로 나가야 할 지, 옷은 어떻게 하고,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가르쳐주면서 공연이 진행됐다. 그래서 머리를 묶고 나가야 하는데 풀고 나갔다던지 하는 실수가 있었다. 2막이 시작돼서야 의상 담당자가 생겨서 극이 제대로 진행됐다.

한국 관객들은 그런 실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나.
보통 공연을 할 때는 95% 정도는 실수가 생긴다. 정말 놀라운 게, 브로드웨이를 포함한 세계 모든 관객들은 실수가 있더라도 극의 일부분으로 녹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가 관객이 됐을 때도 그랬다(웃음).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가 라이브 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런 스릴 때문이고, 이건 무대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실수조차 스릴이자 묘미라고 한다면, 그럼 긴장할 때도 있나.
처음 무대에 오르기 전엔 긴장을 하지만, 긴장만 있는 게 아니라 기대감도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겁도 나지만 그런 걸 다 떠나 ‘괜찮을 거야’라고 믿고 본능에 따르면 된다.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 흰머리가 늘었다는 것?(폭소). 한국에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가장 많이 변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일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꼭 만나야 하는 친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 어떤 면에선 좀 더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 볼 순 없어서 쉴 시간이 부족해지곤 한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한국 관객들의 뮤지컬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고,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다. 이번에는 서울 관객뿐 아니라 전주, 대구, 대전 등 한국의 지방 관객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더 기대된다.

공연을 하지 않는 낮 시간에 친구를 만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하나.
쉬거나, 외출해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주로 인삼차나 생강차를 마신다. 아주 좋아한다. 골프처럼 말이 필요 없는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고. 컴퓨터로 지인들과 채팅을 한다. 말이 필요 없으니까 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특히 좋다.

인터뷰 때 한국 팬들이 프로페셔널 하다고 언급했다. 이유가 있다면.
한국 관객들은 좋은 무대를 이끌어 내게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을 볼 때 그 공연에 대한 지식이 정말 풍부하다. 세계에서 공연을 제작하는 데 있어 관객이 목소리를 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월급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웃음).

열혈 팬들이 많은 배우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팬이 있는가.
팬 한 명을 말하고 싶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상하이 공연 때부터 좋아해준 한국 팬이다. 다른 팬들도 정말 소중하지만, 이분이 내 생애 처음 만난 한국 팬이고,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났기 때문에 한국팬의 어머니(?) 같은 분이다. 이름은 종순이다(영어 스펠링까지 정확히 이야기 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 팬을 만났겠다.
오프닝 공연 때 와주었다. 갈비 두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그날은 정말 피곤한 날이었는데 숙소로 돌아가 갈비를 먹고 힘낼 수 있었다(웃음).

오랜 시간 뮤지컬 무대를 지켜왔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아,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매일 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2~3천명의 사람들이 환호를 해준다. (감격스러운 듯 휴~하고 감탄사를 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행운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당신이지만, 만약 뮤지컬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
역시 소리에 관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 분들로 인해 내 노래가 정말 잘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못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어 ‘신’이라고 부르고 있다(웃음).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다. 그 이외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대에서 연기를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난 그냥 평범한 남자다. 평범한 사람으로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 할 뿐이다.

<지킬앤하이드> 이후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다면.
아마 내년 정도에 한국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을까 한다.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 내년에도 인터파크 예매율이 높았으면 좋겠다(웃음). 방문 때마다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고 싶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