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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스모크’에 담긴 이상의 향기를 찾아서

작성일2018.05.21 조회수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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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시인 겸 소설가로 활동한 이상. ‘날개’, ‘오감도’ 등 기존의 형식과 문법을 파괴한 파격적인 작품을 발표한 그에게는 항상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훌륭한 작품이었음에도 다소 낯선 형식과 내용으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데다, 가난과 병으로 28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 그래서일까. 공연계에선 유독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문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특히 이상의 연작 시 ‘오감도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창작뮤지컬 ‘스모크’는 지난 2016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재연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작이다. 특히 이번 재연에는 2PM의 황찬성을 비롯해 김종구·김소향·강은일 등이 새롭게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초’, ‘해’, ‘홍’, 세 인물을 통해 뮤지컬 ‘스모크’가 그리고 있는 이상의 삶, 무대에선 그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을까. 이상에 관한 기록과 ‘스모크’ 추정화 연출과의 인터뷰를 참고해 정리했다.

* 이 기사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홍의 ‘보따리’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이상의 유년 시절, 실제 사연은?
작품 속에서 홍은 해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바로 ‘가슴 속 보따리’를 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다. 한 아이가 친척 집에 살면서 사랑받지 못한 아픔·증오를 가슴 속 보따리 속에 숨겨놓았고, 급기야는 그 보따리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돼 버리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홍이 "혼자서 만들었다"며 지나가듯 건네는 이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실제 삶을 일부 반영한 바가 크다.

이상은 어린 시절부터 친부모님을 떠나,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입양되어 23살까지 성장하게 된다. 큰아버지는 이상의 총명함을 알고 그를 끔찍하게 아꼈지만, 어린 이상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스스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후 큰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어머니가 자신의 아들 문경을 데리고 와 함께 살면서 그는 더욱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친부모가 있음에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아버지, 어머니라 불러야 하는 그에게, 초현실적인 작품들은 말할 수 없던 그의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해방구였던 것이다.
 



■ 이상은 ‘스모크’의 주인공 해처럼 그림을 잘 그렸을까?
시를 쓰는 초와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해. 초와 달리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인지라 조금 의아할 수도 있지만 해 역시 시인 이상의 삶을 녹여 만든 인물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초·해·홍, 세 인물은 한 인물에서 파생된 자아로, 극 후반부 반전 요소로 등장한다.)

이상은 사실 글보다도 미술에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이미 7살의 나이에 담배 ‘칼표’ 껍질에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했고, 14살에는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으로 입상을 하며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울공대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들어갔지만, 미술에 대한 애정 역시 놓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던 경성고공 미술부에서 그는 주당 4시간씩 미술을 배우며 열정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로 많았던 그는 조금씩 자신의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20살에 접어들면서는 화가가 아닌 문학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추정화 연출은 “초와 달리, 해는 ’시인 이상에게 아무 책임 없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를 떠올리며 인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등단 이후 주변의 비난에 고통스러웠던 그에겐 오히려 ‘그림 모사를 통해 부모님께 칭찬받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초와 가장 대비될 수 있는 캐릭터로서 해를 만들어갔다.”
 



■ 모던보이 이상의 러브스토리, ‘스모크’ 홍은 이상이 사랑한 사람일까
조선의 모던보이로 알려진 이상. 그가 사랑한 여인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바로 금홍이다. 이상과 그녀의 첫 만남은 요양 차 떠난 황해도 배천 온천이었다. 당시 기생이었던 금홍과 우연히 만나게 된 그는 사랑에 빠져, 상경하자마자 금홍을 불러들여 다방 ‘제비’를 함께 차린다. 다방을 문학인들의 아지트로 삼고, 금홍과 동거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2년 정도 운영하던 다방 ‘제비’는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고, 자연스럽게 금홍과 이별하게 된다.

또한 그의 마지막 연인은 27살에 이상과 결혼한 화가 구본웅의 의붓이모 변동림으로, 당시 다방에서 문학을 논하다 인연을 맺었다. 폐병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도 결혼을 결심한 이들은 짧았지만 깊은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상의 죽음으로 인해 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홍으로, 해와 자연스러우면서도 묘한 케미를 보여준다. 흔히들 그녀를 이상이 사랑했던 여인 금홍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추정화 연출은 “홍은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로, 이상의 인생 전체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홍은 이상 인생의 모든 기억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보니, 이상 삶 안의 고통이자 행복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때론 인간들이 신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하다가, 원망하기도 하는 것처럼 홍을 통해 캐릭터 간의 갈등을 부각하고자 했다. 물론 홍 자체가 그의 인생을 표현하는 인물이기에 금홍과의 사랑 역시 캐릭터에 녹아 있긴 하지만, 홍을 금홍으로 그리진 않았다.”
 



■ 죽음을 앞두고 멜론이 먹고 싶었던 이상, 그의 마지막은?
이상의 마지막은 고향이 아닌, 일본의 한 병원에서였다. 1937년 ‘사상 불온혐의’라는 죄목으로 일본 니시칸타 경찰서에 한 달 이상 구금되었다가 지병인 폐결핵이 더욱 심해졌던 것. 요양 및 재기를 위해 신혼임에도 동경으로 홀로 떠났던 이상은 결국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병원을 찾은 아내 변동림 앞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만 남긴 채 말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이상을 그린 세 인물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화해한 뒤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된다. 추정화 연출은 “이상은 멜론을 먹지 못하고 향기만 맡은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혼만큼은 행복하게 날아올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와 같은 결말로 마무리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물이 기체(연기)로 변하기 위해선 끓기 직전까지 뜨거운 고통을 견뎌야 비로소 스모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작품의 인물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 뜨겁고 치열한 인물이기에 작품 끝에 승화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 참고 및 인용 : 오빠 이상, 누이 옥희(2018년, 정철훈), 이상평전(2003년, 고은)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플레이디비DB,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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