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다고, 이제 뮤지컬은 안 할거래”

상수, 하수의 뜻도 모르던 초짜 배우를 기껏 키워놨더니, 이제 드라마를 하겠노라며 등을 돌리던 야망의 남자. 무대 위 기억은 잊고 싶은 듯, 자신의 프로필에 연극, 뮤지컬 경력을 슬쩍 지우던, 떡잎은 파랬으나 싹수는 노랬던 야망의 여자. 말이 좋아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지, 실컷 내공만 쌓고 무대를 떠나버리는 배우들의 빈자리는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불과 3년 사이, 공연시장의 파이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무대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다. 연기, 춤 실력과 더불어 대중성까지 갖춘 스타들의 도전도 가속도가 붙었다. 브로드웨이 극장에 덴젤워싱턴, 휴잭맨 등이 등장했다면, 대한민국 공연장에는 실력 탄탄한 뮤지컬, 연극배우와 방송계 스타군단들이 총출동해 촘촘한 벽을 이루고 것.

대한민국 뮤지컬 시장을 훈훈하게 달궈주고 있는 배우들의 따뜻하고도 황당한 이야기들, 정제되지 않은 캐스팅 비화까지. 살짝, 맛만 보시라.

1. 옥주현, 감동의 하이힐!
2007년 뮤지컬 <시카고> 오디션 현장.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스텝들이 직접 한국 배우들을 선발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었다. 밥파시의 댄스가 백미인 이 작품, 오디션 합격의 관건은 댄스를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였다. 오디션장,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옥주현. 자신의 발 사이즈에 맞는 댄스슈즈를 구하지 못한 그녀는 (그녀의 발 사이즈는 255!) 하이힐을 신고 오디션장에 나타났다.

오리지널 스탭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댄저러스!(Dangerous!)”, “운동화도 괜찮습니다”를 외치며 그녀를 만류했지만, 라인이 중요한 밥파시의 댄스에서 운동화를 신고 루저가 될 순 없는 노릇! ‘록시하트’를 향한 열망 하나로 하이힐을 신고, 밥파시의 댄스를 소화해낸 옥주현은 심사위원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2010년 1월, 그녀가 <시카고> 세번째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대한민국 ‘록시하트’로 자리잡은 그녀, 정말 대단해요!

2. 노력파, 조민아
쥬얼리 출신, 가수 조민아는 뮤지컬 계에서는 노력파로 유명하다. 오디션 신청서를 누구보다 빨리 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녀. (그녀만의 열정 표현 방법!) 2008년, 뮤지컬 <렌트> 오디션 현장에 온 스탭들을 기겁하게 만든 한 여자가 나타났다. 핫팬츠, 망사스타킹, 배꼽티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극 중 미미의 헤어, 메이크업으로 풀변신, ‘조미미’로 변신해서 찾아온 것. 미미의 모든 뮤직넘버를 외워온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그녀를 2009 <렌트>의 미미로 선택했다.


3. 캐스팅 담당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나, 이렇게까지 무릎 꿇어봤다

캐스팅 담당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끈(한반도를 뒤덮는 네트워크 인맥), 깡(까여도 다시 한 번!), 꾼(전문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꾼’에 가까운 안목). 그 중에 제일은 깡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E군에게 부처의 마음으로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낸 A 기획사의 캐스팅 담당자. “이번 주 일요일, 밤 11시에 제 연습실에서 뵙죠” E군의 전화에 담당자는 쾌재를 불렀다.

일요일 밤 11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담당자는 발걸음도 가볍게 연습실로 향했다. E군의 한 마디, “저 아직 대본도 안 봤어요. 이거 안 할건데.” 두 달 전에 보낸 대본도 안 봤다는 말을 전하는 E군. 캐스팅 담당자는 아직도 궁금하다. “일요일 밤 11시에 불렀던 이유는 뭘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4. 스타요? 소용 없습디다
삼고초려 끝에 성공한 스타 캐스팅! 이제는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생각한 X기획사의 마케팅 담당자. 그러나 그것은 모든 재앙의 불씨였으니. 노래도 안되고, 연기도 안되던 Z군. 격려 차원에서 전한 ‘잘한다’는 인사말을 그대로 받아들인Z군은 본인이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고. 급기야 뮤지컬 경력 10년 차 배우에게 “우리, 좀 잘해봅시다”라는 충고를 서슴지 않던 Z군.

연습실 분위기는 알래스카 그 자체였다. 해결책이 없던 z군의 실력 덕분에 음악감독은 매일 밤 오디오 뒤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결국, 무대 위에서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뒤로하고 단독콘서트를 열었던 그. 담당자는 당시의 상황을 악몽 같았다고 떠올렸다. “티켓파워요? 정말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 야, 너 팬까지 없었냐? 몰랐다, 정말. 흑.”

뮤지컬, 연극 배우들의 숨겨진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쭈욱.

* 오디션 장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글 : 강윤희 기자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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