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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국의 전설 아더왕의 성장 판타지를 섬세하고 묵직한 무대로 옮긴 연출가 스티븐 레인

작성일2019.07.10 조회수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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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국내에서 뮤지컬을 창작할 때 해외 연출을 영입하는 사례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난 6월 18일 개막한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처음 관람했을 때 신선하게 와 닿았던 느낌은 연출과 작품의 합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작품을 만난 기분 좋음이었다. 제작되는 작품의 수와 규모에 비해 연출가의 풀이 현저히 부족한 국내 시장에서 작품과 특별히 잘 맞는 연출을 발견하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더왕의 이야기를 촘촘한 서사와 효과적인 무대로 풀어낸 뮤지컬 '엑스칼리버'의 연출 스티븐 레인(Stephen Rayne)을 만나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대담을 나누어보았다.
 
 



Q. 이 작품은 스위스 세인트 갈랜 극장에서 초기 개발단계를 거친 뒤 연출님께서 합류하시고, 이후 추가 창작과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더왕의 전설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깊이 있게 이해하는 관객이 많지는 않은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셨나요?
트라이아웃으로 개발되었던 버전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효과적으로 살아나지 않고 극 전반에 드라마적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헐거운 서사 속에서 관객들이 영국의 역사적 배경과 내부분열 또는 분쟁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더군요.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추가적인 내용과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창작진들과 제작진들에게 6세기 정도에 실재하던 배경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로마인들이 떠나고 영국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제대로 된 왕이 없는 틈을 타서 색슨족이 쳐들어왔고, 그들은 영국을 쉽게 침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엑스칼리버'에서는 이 지점에 멀린의 마법과 흑마법 같은 요소들을 추가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했습니다. 프로듀서들과 많은 회의를 했던 부분이죠. 판타지를 잘 그려내려면 실제 세계의 관점에서 보아도 어느 정도 말이 되고, 누구나 이해가 될 정도의 판타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어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충격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늘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갈등을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아더와 색슨족의 전쟁에 조금 더 집중했습니다. 아더는 색슨족과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하고 영국의 왕이 되어 통일을 이루어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죠. 그래야 관객분들이 영국과 색슨존의 분명한 차이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창작진들은 새롭게 많은 곡을 추가했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소년이던 아더가 어른으로, 왕으로 거듭나는 흐름에 방향을 맞추어 함께 작품 수정을 진행했습니다.
 



Q. ‘엑스칼리버’는 분명한 사건의 기승전결 보다는 아더와 랜슬럿, 기네비어 그리고 모르가나와 멀린 등 주요 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에 놓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의 골격을 잡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트라이아웃 공연에서는 도입부에서 아더가 엑스칼리버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관계성과 작품의 배경에 대해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을 뽑는다는 것에 대해 부여되는 의미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싸워야할 적이 누구인지를 먼저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의 서사를 추가했습니다.

또한 초기 개발 버전에서는 아더와 기네비어, 랜슬럿의 삼각관계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었는데, 모르가나와 멀린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랜슬럿과 아더에게도 더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었고, 기네비어의 복합적인 감정, 멀린과 모르가나의 이야기의 분량을 늘리면서 각 캐릭터를 서사의 중심으로 옮겨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아더와 기네비어는 극 중 18살로 가장 어리죠. 랜슬럿은 그들보다 10살 정도가 많은 나이로 설정되어 있고, 모르가나는 그 보다 좀 더 많은 나이입니다. 그리고 그들 윗 세대로 엑터와 멀린이 있습니다. 다양한 세대와 캐릭터가 교차하면서 서사가 쌓이고 밀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아더왕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내용과 해석의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뮤지컬 ‘엑스칼리버’ 만을 위해서 변경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었나요?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더왕과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는 알면서도 신화의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죠. 실제 전설에서는 멀린이 갓 태어난 아더를 귀족에게 맡기는 설정인데, 저는 이것 보다는 평범한 가정에서 길러진 평범한 소년이 왕의 운명을 걷게되는 여정이 보다 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기네비어를 아더와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공주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과 달리 ‘엑스칼리버’에서는 기네비어에게 조금 더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부여하고자 했어요. 이런 캐릭터가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죠.

반면에, 랜슬럿은 늘 약간 바람기가 있는 기사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저희 작품에서는 이를 더 극대화했어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삶의 뚜렷한 방향 없이 술과 여자에 빠져사는 인물이 아더와 함께 색슨족과 맞서면서 비로소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과 이유를 깨닫는 계기, 누군가를 지켜야 된다는 감정을 느낀 계기가 형제 같은 친구의 아내인 기네비어와 사랑에 빠진 덕분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죠. 마지막에 아더의 목숨을 구하면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또한 울프스탄은 새롭게 창조된 인물이예요. 영국을 무자비하게 침략하는, 아더가 맞서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인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강한 어감으로 ‘울프스탄’이라는 이름을 지어 캐릭터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색슨족의 규모를 거대하게 표현하기 위해 앙상블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무대를 압도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Q. 아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용의 등장이 인상적인데요, 용은 작품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나요?
팬드라곤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용(드래곤)의 단서가 등장하죠. 영국에서 용은 폭력, 분노, 질투 등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상징해요. 아버지인 우더 팬드라곤이 탐욕스럽고 화를 다스리는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었던 만큼 아더 또한 그러한 성격을 물려받았던 거죠. 아더가 성인으로, 왕으로 성장하면서 극복해야 했던 게 바로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드래곤, 즉 우더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모르가나는 아더 안에 있는 이 나쁜 기운을 이용하기 위해 그를 자극하고 유혹하죠. 결국 아더는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마음 속의 용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왕으로 성장해갑니다. 상당히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결말이지만, 엑스칼리버 검을 손에 쥐는 삶의 무게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익숙치 않은 다소 복잡한 서사일 수 있지만, 주요 인물들에게 각각 분명한 배경과 사연이 부여되어 있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지루하게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각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솔로곡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2막에서 기네비어, 아더, 기네비어, 아더 순서로 발라드가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자칫 관객이 지루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색슨족이 군대를 이끌고 등장하는 장면들을 삽입했죠. 그 자체로도 관객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장면이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이후 발라드 넘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도 판단했어요. 아무래도 영상매체에 익숙한 관객들은 화면편집과 같이 빠르게 전개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색슨족의 강인한 장면을 중간에 배치함으로써 분위기를 전환하며 서사를 이어갔습니다.
 





Q. 전달해야하는 이야기가 많았던 만큼 무대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한국 스태프와의 작업은 두 번째셨는데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같은 큰 무대를 채우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2017년 ‘마타하리’를 연출할 때의 경험을 ‘엑스칼리버’에 활용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관객들이 먼 거리에서 관람을 하게되면 친밀감을 쌓고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죠. 그래서 무대장치, 조명, 영상 등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모든 순간을 시각적으로 더 잘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내고자 했죠. 다만, 매 무대 전환에 30-40초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때마다 암전이 되고 관객들이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을 가급적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 관객들의 감정이 흐트러지거나 서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에 대해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노력했는데, 오케스트라 피트와 객석 사이에 동선을 추가해서 만든 것도 그러한 의도 중에 하나였어요. 세종문화회관의 무대를 고려해 엑스칼리버가 꽂혀있는 바위산도 더 커지길 원했고, 전체적으로 웅장한 무대를 만들고자 싶었습니다. 영상과 조명이 더해지면서 장면마다 새로운 매력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배경이 한국 문화와 거리가 있다보니, 조문수 의상디자이너에게는 참고용 사진을 100장도 넘게 보내드리면서 함께 고민을 했었구요. 각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한데 어울어지는 의미 있는 협업이었습니다.
 
Q. 작품을 보며 상당히 섬세하고 밀도가 높은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나 봅니다. 연출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어떤 부분이세요? 
저는 관객의 입장을 고려하며 연출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특정 장면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흥미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등을 고려해 여러 방안 중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내리려고 합니다. 관객과 연출가 두 가지 관점으로 리허설을 진행하며 여러 부분들을 해결해나가려고 하는데, 오랜 경험이 본능적으로 녹아드는 과정 속에서 결과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 배역을 여러 배우가 연기하는 형태가 익숙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여러 명의 배우들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의사소통도 어려움 중에 하나였구요. 하지만 한국의 배우들에게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배우들끼리 매우 협조적이라는 점입니다. 세 명의 아더, 세 명의 랜슬럿이 회의를 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해가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서로 경쟁하느라 바빴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여러 명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또 같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다양한 조합이 각기 다른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Q. 마지막 질문인데요, ‘엑스칼리버’ 또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국의 뮤지컬 관객은 젊은 여성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뮤지컬 시장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연령대 즉, 관객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싶어하는 공연이 더 많아져야죠.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기에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와 서사를 전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엑스칼리버’가 한국의 많은 관객에게, 나아가 더 큰 시장에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주임교수로 공연칼럼니스트이자 공연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연예술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본 고장에 살아 있는 예술경영”이 있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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