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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뒤 찾아오는 소중한 깨달음, <잘자요, 엄마>

작성일2015.07.09 조회수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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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돋보기 안경을 쓰고 TV를 보며 깔깔 웃는 노모에게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던 중년의 딸이 다가와 말한다. 오늘 자살을 하겠노라고.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딸과 그런 딸을 잡아 일으키기엔 너무 나이 든 엄마.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잘자요, 엄마>는 이들이 함께 보내는 보내는 마지막 밤을 통해 진한 슬픔과 귀한 깨달음을 남긴다.

<잘자요, 엄마>는 198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1987년부터 2008년까지 여러 차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7년 만에 펼쳐지는 이번 공연에서는 나문희와 김용림이 엄마 델마를, 염혜란과 이지하가 자살하려는 딸 제씨를 맡았다.

지난 7일 전막공연으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는 나문희-염혜란과 김용림-이지하가 번갈아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쳤다. 2시간 후 자살하겠다는 갑작스런 제씨의 예고에 델마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여유 있는 농담으로 응수한다. 그러나 차분한 얼굴로 살림을 정리하고 집안 여기저기에 꼼꼼한 메모를 남겨놓는 딸을 보며 델마의 표정도 차츰 심각해진다. 그녀는 온갖 말로 딸을 달래고 윽박지르지만, 그럴수록 깨닫는 것은 ‘내 것’이라 여겼던 딸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 함께 살아온 엄마의 속내를 잘 모르는 것은 딸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가까이 살았으나 서로를 알지 못했던 엄마와 딸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깊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델마는 간질과 이혼 등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딸이 느끼는 깊은 공허감을, 제씨는 엄마가 품은 비밀과 자책감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대화는 깊게 패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

만약 이 모녀가 좀 더 일찍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들의 삶은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무수히 변화하고 이어졌을지 모른다. 제씨는 어머니의 권유대로 강아지를 기르며 생의 소박한 기쁨을 되찾았을 수도 있고, 일찍 병세가 완화되었을 수도 있다. 이 ‘만약’이라는 안타까운 가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가족들과 더 늦기 전에 온전히 소통해야 한다는 귀한 깨달음을 전한다.

이 연극이 남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애써 희망을 이야기하려 해도, 때로 삶은 복원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일그러져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대 위에서 90분간 펼쳐지는 델마와 제씨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없이 애달프고 안타까운 삶의 진실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나문희, 김용림은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로 그 진실에 다가서고 있으며, 삶에 지친 스산한 얼굴로 문득문득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염혜란의 모습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잘자요, 엄마>는 8월 1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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