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때문에 화병 나서 돌아가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어머니의 상을 치르면서 딸은 원망에 찬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악을 쓴다. 완고하기 그지없던 백발의 아버지 ‘박씨’는 호통 한번 제대로 못 치고 뒤로 누워 일어나지 못한다. 서글프게 흐느낄 뿐이다.
 
지난 7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는 연극 <사랑별곡>의 프레스콜이 개최됐다. 마당에 평상이 놓인 정겨운 시골집을 구현한 무대에 이순재, 손숙, 고인배 등 관록의 배우들이 올라 천연덕스런 연기를 펼쳤다.

지난 2014년 재연에 이어 2년만에 돌아온 <사랑별곡>은 강화도의 한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우리 부모님 세대가 품고 살아온 한(恨)의 정서를 절절히 풀어낸 작품이다. 여자로서 헌신만 하며 살아온 아내 ‘순자’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깊은 후회에 빠지는 ‘박씨’는 중장년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프레스콜은 간략한 하이라이트 시연으로 문을 열었다. 박씨와 순자가 주고 받는 대사에서 억센 사투리가 두드러진다. 강화도 사투리는 재연 때 사라졌다가 이번 공연에서 다시 부활한 설정이다. 억양은 다소 투박하지만 시(詩)적인 대사에 잘 어우러져 현실감을 부여한다.   
 
“작가 선생님이 강화도 출신이에요. 2년 전에 재연할 때는 강화도도 좋지만 다른 방언으로 설정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는 다시 강화도 사투리로 돌아왔어요. 강화도 사투리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거든요. <사랑별곡>의 대사들은 굉장히 시적이고 문학적으로 아름다워요.” (구태환 연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장면이 추가된 점도 지난 공연과 달라진 부분이다. 프롤로그는 순자의 애절한 순애보를 압축해 보여주며 극 전체에 뻗어나갈 복선 역할을 한다. 에필로그는 박씨가 아내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진심을 담담히 풀어내는 장면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씨가 아내 순자에 대한 회한을 표현하는 장면이 공감됐어요. 박씨는 ‘미안한다.’, ‘사랑한다.’같은 표현을 전혀 못하는 예전 어르신들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겠죠. 사실 이순재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시적인 대사가 많아서 연극투로 표현하게 되기 쉬운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일상적인 느낌을 잘 살려 풀어내시더라고요.” (고인배)
 

하이라이트 시연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배우들의 위트와 연륜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박씨와 본인의 닮은 점을 꼽아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순재는 “난 박씨처럼 거친 사람 아니야. 마누라한테 꽉 쥐어 살아.”라며 엄살을 피웠다. 최근 연극 <햄릿>에서 여왕 거트루드 역을 맡았던 손숙은 “여왕 연기 하다가 갑자기 시골아낙을 하게 돼서 어색하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이런 모습이 원래 내 모습같아서 편안하게 연기했다.”고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