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어떻게 한국과 인연이 닿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A : 저는 러시아
연극 아카데미 ‘기티스’ 배우학교 교수로서 한국에는 여러 번 왔습니다. 지금은 국민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며,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지난 세기 마지막인, 혹은 21세기의 첫해라고 말해야하는지도 모르지만, 2000년에 학교측의 초청으로 왔으니까 국민대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처음 세 번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여름 워크숍에 연기훈련을 위해 짧은 기간동안 왔었고, 초빙교수로 한국에서 거주하는 것은 2003년도부터로 이제 2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래 한국과의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아마 한국의 첫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했고, 그 아름다움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나온다는 것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하는데 있어 자유로울 수 있게 모든 편의를 제공한 학교측의 배려와 학과장이신 이혜경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마치 러시아에서 혹은 유럽에서 작업하듯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고, 이제 한국이 제 2의 고향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사람들이 그 내면의 모습에 있어 러시아 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격적인 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를 말할 때 영혼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종합적인 것들로 이런 인간적인 면들은 연극작업 및 배우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감정의 예민함과 열려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 학생들의 이런 숨겨진 재능들이 저를 한국에서 작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Q : 같은 한국인인 저로서 아주 듣기 좋은 말이군요, 이번 작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 무엇보다 먼저 국민대 졸업생들과 작업하고 싶었고, 그 중 가장 재능 있는 배우들과 작업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함께 할 재능 있는 한국 배우들의 숫자에 맞춰 그 인원으로 공연이 가능한 희곡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좋은 연극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저와 같이 공부한 국민대 졸업생들로 러시아 연기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과는 연극이라는 한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그래서 연습하는 내내 언어 이상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재능 있고 동시에 현재 극 주인공들의 아픔을 같이 이해할 수 있는 러시아 심리주의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희곡을 선택한 이유는 영국 작가 존 오스본의 희곡이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희곡은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아픔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린 그들의 방황이 전 세계 모든 젊은이들의 방황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희곡 속의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모두 제거하고 주인공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25살의 주인공은 갑자기 자기 인생이 무의미하게 끝나 버린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단지 살아있는 송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무언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놓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를, 인생의 끝을 바라본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그들의 삶은 정작 주인공인 그들과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주인공의 노력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즉 사랑과 행복을 망가뜨립니다. 저는 연출가로서 ‘사랑’이 현대 젊은이에게 중요한 관심 사항이자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 젊은이들도 다르지 않음을 연습을 통해 확신했습니다. 더불어 희곡에서의 정치적 색깔은 이제 구시대의 것으로 존 오스본이 희곡을 쓰던 1950년대는 히피의 등장과 원자폭탄에 대한 저항 등 지금과는 다른 정치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 색을 제외한 나머지는 작가의 것을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고 사랑과 가족,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했습니다.


Q : 그런 러시아 연출가의 생각과 노력이 한국 배우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나다니 제 개인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을 위해 관람하는 데 있어 조언을 해 주신다면?

A : 한국 관객이 이 공연을 보면 아주 즐거워 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단순한 흥미 이상의 것으로 여러분은 공연을 통해 익숙하게 알고 있던 혹은 거리에서 스치던 젊은이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공연은 러시아 시스템에 따른 훈련과정을 통해 만들었기 때문에 배우들은 과장 없이 심리적인 선을 보여 줄 것입니다. 관객들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그들의 삶은 통해 자신만의 문제와 관심사항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 관객을 위해 특별히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공연 첫 순간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으로 즉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등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순간에 찾아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작가는(이 경우는 존 오스본 인데요) 언제나 관객들이 공연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듭니다.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한 거야? 다음엔 뭐야? 등등 여러 질문을 하게 된다면 관객들은 주인공들과 같이 교감하며 아파하며 관람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극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고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의문은 공연이 끝난 후 해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한국 관객에게 하고싶은 가장 중요한 얘기는 극이 진행하는 동안 배우들과 함께 하시고 서둘러 해답을 찾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저는 연출가로서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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