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뉴욕 브로드웨이에는 인간적인 감동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한 편의 뮤지컬이 있다. 브로드웨이 극장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부스 극장(Booth Theater)에서 공연 중인 <넥스트 투 노말 (Next to Normal)>이다. 상투적이지만, 상투적인 차원을 떠나 명언이 된 ‘가족의 소중함’을 탄탄한 드라마, 강하고 아름다운 록 음악, 상징적인 무대 디자인, 그리고 감탄을 아끼고 싶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에 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을 포함 올해 토니 어워즈 11개 부문 후보작이다. <넥스트 투 노말>은 <위키드>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스톤(David Stone) 제작, <렌트>의 마이클 그레이프(Michael Greif)연출로 경기침체 이후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눈에 띄게 줄어든 젊은 관객들의 그야말로 완소작(?)이기도 하다.

가족의 사랑과 아픔을 노래하다
우리말로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내지는 ‘거의 평범한’ 정도가 되는 <넥스트 투 노말>은 지극히 단란해 보이지만 실은 상처투성이인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막이 오르면 이 가족의 구성원인 아빠 댄, 엄마 다이아나, 딸 나탈리 그리고 아들 게이브의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16년 전부터 시작된 원인 모를 다이아나의 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댄은 다이아나의 병을 치료하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그녀와의 갈등만 더 깊어진다. 딸 나탈리는 엄마의 무관심과 자기도 엄마처럼 정신병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통 받는다.
다이아나의 조울증의 원인이 밝혀지고 (이 부분은 한국에서 공연될 경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개인적인 리서치나 문의 바람), 이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각자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감싸 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그런 모습이 어떤 가감도 없이 솔직하게 무대 위에서 노래될 때 감동은 그 평범함 때문에 더욱 배가 되는 묘한 경험이 시작된다.

심리를 잘 표현한 대본과 가사
어떤 뮤지컬 창작 관련 책에서 ‘가장 평범한 이야기가 가장 쓰기 어렵다’고 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기가 가장 쉽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대본과 가사를 쓴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의 글의 힘이 무엇보다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 공신이다. 뮤지컬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가족의 심리를 적당한 무게감과 함께 서정적인 음악극으로 잘 써냈다. 귀에 들어오는 가사들도 많은데, 특히 2막에서 나탈리의 남자친구 핸리가 자신도 엄마처럼 될까 봐 겁낼 때 그녀를 달래며 ‘난 너한테 완벽할거야. 그러니까 니가 미쳐도 괜찮아. 아니면 내가 미칠 수도 있는 거고. 때때로 인생이란 자체가 미친 거니까. (I will be perfect for you/ So you could go crazy/ Or I could go crazy, it's true/ Sometimes life isn't sane)’하고 노래할 때는 감동이었다.


점묘법으로 가족의 분열을 표현한 무대
상징적인 무대도 인상적이다. 무대 디자인의 주제는 ‘점묘법’. 멀리서 보면 알 수 없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조각 조각 쪼개져 있는 점묘화처럼, 보통 가정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분열되어 있는 이 가족의 모습을 무대미술로 승화시켰다.

자체로는 훌륭한, 극적으로는 아쉬운 음악
배우들의 연기는 이미 많은 매체들에서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6인조로 연주된 록 오페라 스타일의 톰 킷(Tom Kitt, 뮤지컬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의 작곡가이기도 함)의 음악은 음악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드라마를 표현하는 뮤지컬 음악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감이 든다. 예를 들면, 40대 중후반인 댄의 음악에서 그의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들과 듀엣을 할 때는 부자간의 대화라기보다는 십대들의 대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또한 전체적인 구성면에서도, 느닷없이 이 작품의 색깔과 다른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스타일 음악이 나올 때는 개인적으로 ‘왜 저런 음악이 나올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흔히들 어렸을 때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꿈꾼다. 대통령이 돼서, 과학자가 돼서, 연예인이 돼서, 혹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돼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고,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평범하기가 제일 힘들고 가장 행복한 거야’라는 말이 아닐까? <넥스트 투 노말> 뮤지컬 넘버 가운데 2막 후반부에 다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가 있다. ‘평범하기는 쉽지 않아. 조금은 평범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대로 괜찮아.’ 이 노래가사를 들으며 평범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소망이 시크릿처럼 세상에 퍼져버린 탓인지, 평범하고 싶어도 평범하기 웬만해서는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메시지 같은 느낌이 든 것은 관객들 중 나 하나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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