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젊은 극단의 행보 ①] '연극이 아니어도 좋아'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작성일2018.01.19 조회수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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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도전은 역사를 만드는 힘이 분명하다. 연극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연극사의 길을 만드는 것은 선배 연극인들의 탄탄한 족적 뿐아니라 그 위로 새로운 족적을 과감히 더해 다지는 후배 예술인들의 행보도 빠질 수 없겠다. 여기, 저마다의 시선으로 무대와 인간, 사회를 탐구하며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젊은 극단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난해 문화계 검열 및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무대 안팎으로 뜨거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 21이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 21
공동대표 : 김재엽(작/연출), 백운철(배우)
창단연도 : 2003년
주요작품
<유령을 기다리며>(2005년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연출상 수상 등)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2007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차세대 예술가 부분 선정작 등)
<알리바이 연대기>(2013년 제5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수상, 제6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 무대예술상 등)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장석조네 사람들><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검열언어의 정치학> 등


극단 드림플레이의 연습실이자 창작 및 공연 공간이기도 한 삼선동 위치 ‘드림스튜디오’를 방문한 지난 15일 저녁은 마침 극단 총회일이기도 했다. 지난해 활동에 대한 리뷰와 올해 활동 계획, 극단 운영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로, ‘역대 최다 참석 예정’이라며 다들 놀라워했던 이날 출석인 수는 약 40명.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긴 총회 후 극단 공동대표 김재엽, 백운철과 현재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유미(40세, 극단 활동 15년), 서정식(40세, 극단 활동 11년), 김세환(31세, 극단 활동 3년) 배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Q. 드림스튜디오는 언제 만들었나?

김재엽: 2005년부터다. 대관이 잘 안 되고 밖에서 공연할 기회가 없어지니까 여기를 아지트 삼아서 연습실에서 스튜디오 공연을 해보자, 시작했다. 극장 분위기가 나도록 2016년 3~4월에 조명기 달고 바닥 공사도 했다.
 
Q. 스튜디오를 비롯해 극단 운영, 배우들의 개런티 등도 중요한 부분이겠다. 총회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고, 30대 이상의 참여인들에게 1만원 이하의 기부금을 받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재엽: 프로덕션으로 들어오는 돈은 다 개런티로 나간다. 안 남긴다. 그래서 재정상태가 문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그렇게 하는게 (오래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이다. 프로덕션의 수입과 지출을 다 공개하는 거. 극단은 세이브하지 않는다는 거.
 



드림플레이 테제21 공동대표 백운철

Q. 총회에서도 ‘누가 단원이고, 어디까지가 단원인가, 그런 구분이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하더라.

김재엽: 처음에 우리가 2,30대 였을 때 극단을 만들었는데 기존에 있었던 극단들은 좀 멤버 중심의 도제식이고, 자신의 비전과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고. 그런 것을 목격하다 보니 그런 거 없는 팀을 만들자, 대신 이 팀이 자기 개인적인 비전이나 발전을 다 담보하지는 못 할 것이다, 자기 능력을 개발하면서 더 큰 곳으로 나가는 교두보로 여길 삼자,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이 미흡하니까 창작을 하자, 우리 오리지널티가 있어야 경쟁력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하고 개인 사정이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또 빠지고.

백운철: 15년 간 계속 나오는 이야기다.(웃음) 단원 제도라는 걸 만들면 그 때부터 수직이다. 푸쉬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불만이 있을 것이고. 하지만 자유를 줬을 때는 그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각자가 선택만 하면 된다. 내가 내 일을 함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태도로 할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 서로 계속 조율해 나가는 거다.

김재엽: 그런데 그렇게 되어야만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된다. 뭔가 어사무사하니까.(웃음) 20대에 모든 예술가들은 욕망이 있고, 그래서 다 ‘자기’를 본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이 팀에 있어야 하나’. 그런데 내 생각엔 그거 다 쓸데 없는 거다. 들어가고 나가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작업에 내 중심이 있나, 없나, 그게 중요한데. 나갈지 말지 고민할 바에 차라리 다른데 오디션 보고 나가서 작업하라고 한다. 여기보다 더 좋은 작업이 있다면 하는 거고, 그렇게 하다 또 여기(드림플레이)에서 해야 할 것들이 생기면 다시 찾아와서 적어도 뭔가를 상의하거나. 그럴 때 찾아오는 집단이 되면 되는 거다.
 
Q. 하지만 올 초에는 20대 대상의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워크샵’ 참가자를 공개 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재엽: 우리가 젊은 팀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는데 더 이상 젊지는 않고. (웃음)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이 이젠 결혼도 많이 했고.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시작들, 젊은 관객들을 만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들 자체에서 젊은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친구들의 극단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극단으로 가기 위해 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또 현실적으로 연출가, 기획자, 작가가 필요하다. 판을 벌이면 배우들은 모을 수 있으니까. 또 우리 친구들 또래의 멤버쉽이 있는데 후배들에게 또래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공연할 때 마다 그때그때 수급해서 하다 보니. 후배 또래들이 만들어지고 자기들이 ‘우리들 공연 좀 하려는데 선배들이 서포트 해 달라’, 그러길 바란다.

 



드림플레이 테제21 공동대표 김재엽
 
Q. 작, 연출을 하고 있는 김재엽의 이름이 극단 이미지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김세환 : 고등학교에서 연극부를 하면서 연극을 되게 좋아했고 소속감이라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극단에 계속 들어가고 싶었는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재엽 작,연출)를 보고 뭔가 탁!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극의 형식, 표현, 이런 게 아니라 내용과 철학에서. 두루뭉술한 무언가 였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여기다, 난 이곳을 반드시 간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드림플레이에 들어가겠다고 엄청 떠들고 다녔다. 그러고 나서 우연히 소개로 <검열언어의 정치학> 오퍼를 하게 됐고 남자 역할 한 명이 갑자기 비게 되어 공연에 참여했다. 난 연출님이 멋있다. 생각하시는 거, 고민하는 지점들, 나아갈 방향, 이런 내용들이 너무 좋다. 연출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고, 몇 작품을 하면서 나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배우로서 고민의 지점들이 온다.

정유미 : 김재엽이라는 네임 벨류가 처음부터 있진 않았다. 그것 때문에 뭉친 게 아니니까. 처음엔 으쌰으쌰 해보자 하는 분위기가 더 컸고, 지금에 와서는 김재엽 대표의 성향, 작품들이 외부적으로 더 빛나면서 그것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안 맞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네임 벨류가 극단을 유지도 시키고 상생해 갈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에서 탈출하기 위해 ‘테제21’을 만들어 외부 일정들을 김재엽 연출 또한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정식: 김재엽 연출이 쓰고 우리는 그걸 발화해야 하는 배우인데, 개인의 가치관과 재엽의 가치관이 동일시되는 것인가, 주입이 되는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대본이 늦게 나올 때) 작품에서 내가 ‘저는’이라고 말하기까지 담론들을 체화하고 채우기가 시간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걸 공유하는 분위기나 흐름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여러 사회적 이슈나 사건들에 대해서 분명히 같이 분노하고 분개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걸 재엽이 형이 생각하는, 조금 더 정리된 단어로 올 뿐이지 어떤 근본적인 지점, 씨앗은 똑같다.
 
Q. 창단 초창기에는 환상, 가설 등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작품들을 선보였다면, 중간엔 김재엽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그리고 현재는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테제 21’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극단 명에 추가하기도 하고.

김재엽: 사회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들을 처음에도 좀 했었고 <알리바이 연대기>로 넘어갔을 때는 풍자의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됐던 것 같다. 이명박까지는 풍자의 대상이 되는데 박근혜 때는 불안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던 거고, 그러니 풍자가 아니라 굉장히 집요해져야 하고 좀 더 절실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림플레이 공연작

그리고 글쓰기의 한계에 대한 것인데, <알리바이 연대기> 하면서 개인으로서 정확하게 자기 의식을 드러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2016년까지 공연을 했다. 그런데 그런 작업들이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을 상상의 공간에 넣어 이야기를 하거나(<여기 사람이 있다>) 나는 30대인데 20대 이야기를 하거나(<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그런 게 진정성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를 극에 넣어서 내가 경험한, 나의 진정성으로만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나의 한계가 작품의 한계로 드러나고 다른 작품의 형식을 찾아야 하는 과정에 있기도 하다.

서정식: 극단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4.19와 5.18을 헛갈렸었고, 정치가 나에게 왜 필요한가, 이런 것들을 잘 몰랐다. 극단에서 용산 참사에 관련된 공연을 하고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공연 후에 술자리도 같이 했을 때 뭔가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과정이 10년간 쌓이면서 김재엽 연출이 생각하는 방향을 같이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 같다.
 
김재엽: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동시대적인 관점, 지금 살고 있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예술, 문화가 정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가고 있을 때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필요성을 못 느꼈다가 MB와 박근혜로 가니까 그 필요성을 느꼈고. 진지하고 좀 어려운 얘기를 우리 나름대로 유쾌하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끼리 쌓아놓은 내공을 그런 방법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Q. 지난해에는 1월부터 촛불시위가 한창인 광화문에서 블랙텐트 기획공연을 했고, 이후 <검열언어의 정치학>,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강력히 비판하고 정당한 심판이 내려지도록 행동하는 ‘대학로 X포럼’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솔직히 두렵지 않았나?

김재엽: 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두려운 건 학생들이다. 지금 학교(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강의실에서 내가 하는 말과 밖에서 하는 작품이 다르다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나. 그들도 다 안다. 그런 것이 두려운 부분이다.
 
Q. 앞으로 드림플레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나?

김재엽: 테제와 드림플레이를 동시에 가져갈 것 같다. <유령을 기다리며>나 <마호로바>와 같이 드라마적인 공연을 할 땐 드림플레이가 맞는다. 다큐멘터리성, 동시대성, 테제가 선행하는 작품의 경우엔 ‘테제21’이라는 말을 쓸 거다. 극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테제21’이라는 말을 더해 외부로 드러냈을 땐 사람들이 볼 때도 그런 시각으로 봐 달라는 요청이 포함된 거다.
 



백운철: 처음엔 되게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나 역시 당연히 있었다.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하면서 바뀐 게, 삶 속의 정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연극과 삶이 맞닿은 거구나, 바로 여기에 삶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아실현한다는 말을 사람들이 자주 쓰는데, 근현대사를 다시 들여다보며 ‘내가 나를 모르는데 무슨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곧 나에 대해 아는 것이더라. 그런 것들을 사람들과 교류해서 풀어나가고 싶다. 외롭기도 싫고. (웃음)
 
정유미: 우리가 <검열언어의 정치학> 공연을 하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우리 내부에서도 자기 검열, 우리 검열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에 활동하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온,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사이 간극이 있고 경계가 모호해서 분명 불편한 것이 있을 것이다. 어느 극단이든 오래될수록 그 부분들에 대한 각자, 그리고 서로의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이 여기(드림플레이)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그것들이 다져져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서정식: 친구들과 우연히 시작했던 단체가 벌써 15년이다. 이곳에서 길러지는 자유로움과 선배들의 강요 없이 내려오는 인문학적인 환경, 정치적인 사안들에 눈을 뜨는 가치관 등, 이런 부분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자기가 자신의 것들을 잘 가져가는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런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가서 더 뻗어가든 여기서 더 잘 되든 상관 없다. 10년 이상 지내보니까 재밌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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