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두 천재의 만남, 기대 되지 않으세요?” ‘용의자 X의 헌신’ 조성윤, 송원근

작성일2018.06.21 조회수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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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추리 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옆집 여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시가미의 지독한 사랑과 그가 만들어놓은 복잡한 알리바이를 풀어가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의 모습은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용의자 X의 헌신’ 무대를 찢고 나온 듯한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에 등장한 이시가미 역의 조성윤과 유카와 역의 송원근. 이날 공연을 하러 가기 전이어서 그럴까? 두 배우의 눈빛과 풍겨 나오는 아우라는 무대 위 캐릭터와 똑 닮아 있었다. 형 앞에서 서면 한없이 귀여워지는 조성윤과 동생을 토닥토닥 다독이며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던 형 송원근. 공연 스케줄에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더없이 다정한 궁합을 보여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Q. 두 분 일주일 만에 만나셨는데, 다정해 보이세요.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 '타이타닉’에서 처음으로 함께 하셨다고요. 서로 첫인상이 어땠나요?
송원근(이하 송): 성윤이를 ‘타이타닉’때 처음 만났어요. 그전까지는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죠. 성윤이 나이는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저보다 동생이라고 들어서 속으로 좀 놀랐어요. 왜냐하면 그때 성윤이가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을 하고 있어서 손톱이랑 수염에 맨날 피가 묻어 있고 좀 어두운 모습으로 연습실에 나타났거든요. 그렇지만 나중에 보니까 진중하면서도 장난기가 많은 동생이더라고요. 먼저 다가와서 살갑게 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반전 매력이 있는 친구예요.
 
조성윤(이하 조): 흐믓하네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형한테 완전 제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건방지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형은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웃음).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요. 형이랑 ‘타이타닉’ 때 공연 전 몸풀기로 탁구를 많이 했는데 같이 운동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것 같아요. 제가 형을 이겨보겠다는 일념으로 탁구장도 등록하고, 동호회도 가입했어요. 저는 더블 캐스팅이었지만 형이 맡았던 역할은 원 캐스트여서 둘이 ‘타이타닉’ 연습 기간까지 합치면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Q. 이런 인연이 뮤지컬 ‘용의자 X의 헌신’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네요.
조: 아무래도 그런 것도 영향을 받게 돼요. 형의 출연이 먼저 결정되고, 저는 나중에 제의를 받았는데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송: 성윤이가 되게 시원하게 결정하더라고요. 저는 작년에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할 때 이 작품이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신)성록이가 “같이 하자”고 계속 꼬셨어요. 성록이가 “형 팔 들어봐” 하면서 제 팔에 자기 팔을 크로스 모양으로 갖다 대면서 “용의자 X”하고 도망가고 그랬어요(웃음).
 



Q. 이 작품은 원작이 워낙 유명하고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원작이 있는 2차 창작물은 아무래도 원작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요.
조: 뮤지컬과 상관없이 예전에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었고, 그때 느낌이 저에게 크게 다가와서 처음 제안을 받고 무대에서 얼마나 그것을 재현해 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원작이 있다면 당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너무 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 입장에서도 원작을 통해 작품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겠죠. 그 편이 방향을 잡기 쉬운 길이기도 하고요. 관객들도 원작이 있다면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기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하기로 하고 소설을 1/3쯤 읽다가 말았어요. 어느 순간 소설에서 말하는 이시가미의 묘사가 저에게 벗어날 수 없는 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그 안에 갇혀버리게 될 것 같아서 책을 덮어버렸어요. ‘대본에 나와있는 이시가미만 초점을 맞추자’라는 생각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최대한 따라가려고 했어요.
 
Q. 미스터리 추리극인 경우, 결과를 먼저 알려주고 가는 작품이 별로 없는데 이 작품은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송: 맞아요. 이런 작품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관객들이 너무 알고 가니까 ‘나중에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 ‘해결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건을 풀어가는 그 과정을 뮤지컬만의 색깔로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조: 우리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게 아니에요. 범인은 누구인지 모두가 알아요. 제목이 '용의자 X 헌신’이잖아요. 한 인간이 남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헌신하느냐 그것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Q. 성윤 씨는 극 중 이시가미의 텅 빈 눈빛, 고독한 표정, 무심한 목소리, 힘없는 걸음걸이, 구부정한 허리, 굽은 어깨 등 캐릭터의 섬세함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조: 처음부터 이시가미를 이렇게 표현해야지, 이렇게 하면 완벽한 캐릭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시가미의 정서를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한 것 같아요. 이시가미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잖아요. 제 상식으로는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연습 기간이 있으니, 그 인물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서가 따라오고 정서를 느끼게 되니까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더라고요. 내가 '일부러 눈빛은 이렇게, 허리는 구부정하게 해야지' 하고 하는 건 아니에요.
 
송:
이시가미는 그냥 얘 역할이에요. 성윤이랑 딱 맞아요.
 
Q. 반면에 유카와는 사건을 풀어가는 역할이라, 이시가미 같은 섬세함을 보여주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송: 아쉽긴 했죠. 어쨌든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이시가미니까요. 유카와는 이시가미가 세워 놓은 알리바이를 추리하는 입장이라서 유카와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긴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함께 사건을 추리해가는 대학 동기이자 형사 쿠사나기와의 케미를 좀 더 살리면서 유카와의 캐릭터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관객들도 유카와를 통해 “너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어?”가 아닌, “너처럼 그렇게 똑똑한 친구가 왜 사랑 때문에 그런 희생을 하는 거야”라는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극 중 이시가미와 유카와는 대학 동기로 나옵니다. 대학 시절을 둘을 상상해본다면 어떤 친구 사이였을까요?
송: 대학교 때도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이 친구랑 대화가 통했을 때 즐겁고 반가웠을 것 같아요. 둘의 성향 자체가 “우리 뭐 할까”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같이 있을 때만큼은 정말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로 풀기 힘든 문제로, 많이 교감했을 것 같아요.
 
조: 이시가미는 고독하고 외로운 인물이에요. 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시가미 삶에 유일하게 있는 건 수학밖에 없어요.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요. 그런 이시가미에게 친구가 있다면 그건 유카와 한 명일 거예요. 이시가미와 유카와 둘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천재들의 만남이었을 것 같아요.
 
Q. 앞서 성윤 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작품의 핵심이 ‘헌신’인데, 두 분 모두 이 부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셨을 것 같아요.
송: 내가 야스코 씨 옆집에 사는 이시가미라면, 그녀에게 자수를 권할 것 같아요. 제가 감옥에 사식을 넣어주면서 챙겨줄 수는 있어도 이시가미처럼은 못했을 것 같아요. 이시가미의 헌신은 정말 위대한 거예요.

조: 저는 이시가미를 연기하는 입장이니까요. 그걸 그의 헌신에 대해서 ‘막연히 이해 안 돼’ 라고는 못 겠더라고요. 어떻게든 이해를 해야죠.
 
헌신에 대해 쉽게 생각하기 위해 엉뚱한 예를 하나 들자면. 제가 탁구채를 사랑해요. 탁구채를 깨끗이 관리하고 닦고, 이시가미의 헌신과는 비교 안 되는 헌신이지만 제가 유일하게 세상에서 탁구채와 소통하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Q. 이시가미는 더블, 유카와는 트리플 캐스팅이어서, 각각 다른 배우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조: 우선 제일 큰형 에녹 형은 강직하고 점잖은 유카와에요. (신)성록이 형은 키가 커서 제가 우러러보게 되는 그런 친구예요(웃음). 원근이 형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말 친구 같은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송:
(최)재웅이 형은 무대에서 보면 무게감과 어두운 기운이 있어요(웃음). 형이 연기하는 이시가미 안에는 아주 많은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성윤이의 이시가미는 겉으로 보면 멀쩡해요. 그런데 이 안에도 뭐가 들어있긴 있어요. 이시가미끼리도 젊은 이시가미와 덜 젊은 이시가미의 에너지가 다 다른 것 같아요(웃음).
 



Q. ‘내가 맡은 캐릭터와 나는 이런 점이 비슷해’라는 게 있을까요?
송: 일단 전 천재는 아니고요. 제가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은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19년째하고 있는데, 누가 저랑 똑같은 루틴으로 산다면 저는 반대하고 싶어요. 그동안 참고 견디면서 지낸 일이 많았거든요. 제가 참으면 모든 게 정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이 많았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원형 탈모도 있었고요. 일부러 악하게 하고 싶어도 잘 안되더라고요. 이게 어쩔 수 없나봐요.
 
조:
성격적으로는 이시가미와 비슷한 건 없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이 '배우의 길 하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은 인생에 수학밖에 없던 이시가미와 비슷해요. 어릴 때부터 저한테 주어진 건 배우의 길 뿐 이었어요. 다른 거는 상상도 안 해봤고요. 지금도 잘 상상이 안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연기고 이걸 최선을 다해서 묵묵하게 하는 것. 이런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가 못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안 했어요. 오로지 이 길밖에 없으니까, ‘하다 보면 언제가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시작은 달랐지만 두 분 모두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선지 꽤 긴 시간이 흘렀어요. 그만큼 배우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조: 어떤 일이든 맡은 바를 책임감 있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하는 동안만큼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서 느낀 감정에 방해가 될까 싶어 SNS에 재미있는 사진 올리는 것도 자중하고 있어요.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받은 감동과 환상을 깨고 싶지가 않거든요. 무대 위 배우의 모습과 개인으로서 삶이 분리되어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 이런 것까지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송:
저는 가수 생활을 하다가 뮤지컬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행복하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사실 가수로 활동하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이후에 내가 배우로 활동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길로 자연스럽게 오게 된 것 같아요. 동료들과 같이 무대에서 호흡하고 함께 관객들의 박수받는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삶을 살아가는 재미도 좋고요.

성윤이처럼 순간순간 캐릭터와 일치하며 살아가지 못하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온 관객들에게 당연히 배우로서 책임감이 중요하지요. 어느 공연이든 저 때문에 '작품의 색깔이 표현이 안 되는 것 아닐까' 항상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관객들이 집중해서 공연을 봐주실 때, 제가 관객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으면서 그런 긴장과 부담감이 점점 풀리더라고요. 그러니 더더욱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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