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은 지나간 삶의 기억이 바람처럼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바람결의 느낌과 바람이 몰고 오는 여러 가지 향취가 나는 아련함이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이 연극이 담고 있는 가정사와 사회적인 배경은 결코 감상적인 그것이 될 수는 없지만
잊고 싶던 기억…벗어나고 싶던 그 기억과 마주하는 순간, 현재의 내가 과거의 시간들과 다시 한번 마주하는 순간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은 비로소 내 속에서 진정으로 이별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몰려오며 바닷물이 흘러 나가듯이 지나간 시간들은 툇마루가 있는 집 대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고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고 태풍 같은 파도가 몰려와도 시간이 지나면 썰물처럼 흘러나가 상처의 흔적을 지우곤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군사독재시절 그 모질고 혹독한 시절들을 견뎌내며 혹은 먼저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 등장 인물들 하나하나에 다 녹아 있었다.

흘러가 버린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또한 아직까지도 차마 다 흘려보내지 못한 많은 것들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지금의 나에겐 때론 위안이 된다.

녹록치 않았던 그 시간들을 묵묵히 지나 왔음을…현재에도 미래에도 과거 못지 않게 되풀이 되는 또 다른 고통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결코 고통만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과거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툇마루 밑에 짓눌려져서 바래진 상처들의 먼지를 거둬내고 훌훌 털어버리던 남자의 마지막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회환과 그리움의 깊이 만큼 요동 치던 그 울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옴에 가슴 한 켠이 욱신거렸다.

향수를 자극 하는 연극이었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왜 그리 술을 드시고 가족들을 때리셨는지, 참 무능한 아버지의 표본인 듯 나왔다. 되지도 않는 사업한답시고, 엄마는 생활고에 찌들리고,
사회 저층인 차장과, 술집 여자의 등장은 상징적인 의미였겠지만, 그 시대에는 다 그리 힘들게 살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내용의 연극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환경이 바뀌었을 뿐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연출이 참 돋보인 연극이었다. 실제로 밥을 먹고, 수돗물을 틀어서 세수를 하고, 주어온 배추를 잘라서 겉절이를 담그고, 이런 연극은 첨인듯 싶다. 수도물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는데 세수도 하고, 마당에 물을 버리고, 우리의 몇십년전의 생활은 그랬다. 그리고 주인공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과거를 칼을 찾아서 버리고, 못된 마음을 쓴 종이를 불 사르면서 과거와의 단절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연극을 한편 봤다. 말초적인 것만 자극하는 요즘 연극은 흥미 없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본 툇마루가 있는 집은 나름 괜찮은 연극이었다. 이런 연극을 계속 볼 수 있었음 좋겠다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갔는데, 긴 시간을 배우 열두분들이 굉장한 연기로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올해 30대 중반인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꽤나 있고, 눈물짓게 되거나 먹먹해하며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끝나고 나면 몸이 뻐근함을 느끼게 되네요.
오랫만에 이정도에(12명이나 되는 인원, 빠져들게 되는 연기, 어색함 없는 무대장치 등) 이 금액이면 너무 저렴한거 아닌가 생각할 정도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감사하고 더욱 흥행하길 기원합니다.

배우분들 연기가 자연스러워서 보기 편했고 억지감동이 아니라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이라 재밌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