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좌절과 분노, 상처와 슬픔이 얼룩진 2017년 2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권리는
오랜 시간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예술인 블랙리스트로 시대정신을 담아야 할 영혼의 무대는 폐쇄되고
부역자들의 놀이판으로 전락하였다.

극단 푸른숲의 이번 공연은 체호프의 6호실을 각색한 무대다.
주인공 이반이 갇힌 정신병동 6호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하다.

공연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예술인들을 검열하고 통제한 블랙리스트는 대한민국의 6호실이다.
광화문의 텐트촌은 6호실에 갇혀 가난과 탄압,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던
예술인들의 분노와 저항의 해방구다.

최근 3-4년 간 의미있는 창작극을 선보였던 푸른숲의 무대라서 새로운 각색을 기대했지만
원본에 충실한 무대를 보면서 조금은 아쉽긴 했다.
체호프의 시대만큼이나 지금의 우리 현실이 아프고 처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시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푸른숲의 방향성과
연출, 배우들의 진정성은 올해도 역시 깊은 여운과 되새김을 주었다.

모든 것이 갈색이어야만 허용되는 ''통제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든 위협을 감지한 주희와 변선생은 무대에 극을 올린다. 안톤체홉의 ''6호실''.
양심으로 고뇌하고, 그것을 발언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감되고만 이반과, 그런 그에게 지적인 동질감을 느끼지만 안온한 현실 밖을 벗어나지 않았던 라긴의 이야기.
생각하고 고찰하고 판단하지 않는 자들에게만 평안한 세상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며 현실의 벽을 두려워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정신만은 살아있고자 했던 이반에 비해 좋은말과 언제나 옳을 것 같은 철학을 설파하던 라긴은 ''작은 바람에도'' 무너져 넘어지고야 만다.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라긴 옆에서 읊조리는 이반의 마지막 대사는 그래서 더 안타깝고,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단순한 현실의 깨우침을 전해주었던 극. 나는 혹 침묵하는 자들의 편에 서있는 건 아닌가.

배우들의 각각 살아있는 캐릭터를 보는 것이 첫째 재미.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버려진 자''의 대사는 웃음을 기대하며 다음 텀을 기다리게 하고, "한푼줍쇼~"를 외치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모이세이까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다. 거기에 캐스팅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의 니끼따와, 닮은 듯 다른 두 배우의 라긴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종일관 무겁고 괴롭게 어려운 대사를 열정적으로 소화해낸 이반(들)에게 박수를. 대단한 집중력으로 극의 주제를 끌었다. 이번 시즌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다음에 볼 기회가 있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 것!

너무 해석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