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요

이문열 작가의 원작을 모티브로 1995년 초연을 시작으로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아온 대한민국 대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오랜 쇄국과 사대주의로 일관하던 조선에서 개국으로 근대화된 대한제국으로 거듭나던 구한말의 격동의 역사를 중심으로 고종과 명성황후, 조정 대신들과 제국주의 열강의 시점에서 바라본 조선 왕조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을 찾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을 보지 못한것은 아쉬웠지만, 서울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공연장은 역에서 전용 출구로 연결되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며, 백화점과 카페와 레스토랑등 부대시설이 공연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연 시작전에 일찍 도착하여 여기저기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장 주변에 도서관과 주민들을 위한 취미활동을 위한 전용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은 조금은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람극장은 4층으로 구성된 대극장으로서 깨끗한 시설과 어디서나 무대를 조망하기 좋은 편안한 관람석 덕분에 쾌적한 공연 관람이 가능하였습니다. 공연 시작 안내 방송에 따라 서둘러 객석에 착석하여,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지난 100여년전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이자 왕비였던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주한조선공사 미우라 고로와 가담자들이 일본의 법원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음을 알리는 판결문으로 시작됩니다. 봉건주의 막부체제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단숨에 중앙집권적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한 일본과 달리 비슷한 시기의 조선은 어린 고종과 명성황후의 결혼을 주선한 대원군의 주도로 강력한 쇄국정책과 왕실권위의 회복이라는 복고적인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열강의 침략과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부국강병과 강력한 조정의 권위를 앞세운 대원군의 흔들림없는 리더쉽에 왕국은 굳건해 보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고종에게 친정을 건의하는 왕비의 조언에 따라 드디어 조선은 왕이 주도하는 개혁과 개방으로 정치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왕의 곁에서 여러 나라와도 국교를 수립하여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유럽과 러시아를 끌어들이며,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외국인들로부터 인망이 높았던 현명하고 똑똑한 왕비를 경계하던 일본은 드디어 거사를 단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조선의 국모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여러 외국의 공사들과 부인들의 호의적인 평가와 함께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치와 민씨 집안의 횡포를 이유로 왕비를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황후 마리 앙투아네트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마지막 황후였던 엘리자벳처럼 후대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이 비슷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서 권력에 눈이 먼 대원군의 섭정을 중단시키고,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여색을 가까이하고 마음이 심약했던 남편을 대신하여 개국을 주도한 명성황후의 노력은 뮤지컬 속에서 픽션이지만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며 한국인으로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조선이여 일어나라, 백성들이여 깨어나라]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그녀의 유언과 열강의 침략에 맞서 나름대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대원군과 고종의 정치적인 행동을 차마 외면하거나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왕조는 몰락했지만, 고종과 명성황후의 노력이 한국인이라는 민족주의를 부추겨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끝내 광복을 맞이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치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조선 왕조의 화려하고 감성적인 아리아와 일본 제국의 대동아 정책으로 팽창하려는 야욕이 느껴지는 일본 전통 리듬과 군가풍의 행진곡을 떠올리게 만드는 웅장하고 화려한 아리아의 대비는 너무나 훌륭하였습니다. 명성황후역의 최현주 배우님의 고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프라노와 고종역의 양준모 배우님의 중후한 테너가 어우러진 오리지널 넘버의 열창은 깊은 감동과 여운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양준모 배우님의 연기와 노래를 듣고싶은 마음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대원군역의 정의욱 배우님께서도 성악가 못지않은 기량으로 부르시는 넘버와 홍계훈 역의 임정모 배우님의 황후를 남몰래 사랑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끝까지 충성을 다해 목숨바쳐 궁궐을 수비할때 부르는 넘버와 비장한 최후에 박수 갈채를 보내드렸습니다. 만악의 근원이자 원흉인 미우라역을 맡아 2부에서 온갖 나쁜짓을 일삼는 이정열 배우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와 비장한 신념에 따라 손에 피를 묻히며 부르는 넘버의 열창은 너무나 인상 깊이 다가왔습니다.

화려했던 조선왕조 500년의 궁중문화를 재현한 혼례식, 국모로서 자식을 낳고자 벌이는 무속신앙에 기반한 굿판, 각국 공사들을 초청한 연회에서 선보이는 아름다운 궁중무용등 전통춤과 국악이 어우러진 무대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궁궐 수비대를 선발하기 위한 무예 대회속 남성 앙상블들의 화려한 무술 솜씨와 두차례의 양요를 재현한 대포와 총이 실제로 발사되는 전쟁 장면도 너무나 실감나서 숨죽이며 몰입하며 관람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를 재현한 한복과 근대화된 제복을 고증한 의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앙상블과 주연 조연 모두가 합창하는 장면이 많아 웅장하고 비장한 느낌이 감도는 장면들과 모두가 함께 열창하는 마지막 넘버에는 기립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해 드렸습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부터 처음으로 명성황후를 알게된 젊은 관객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전국 순회 공연 기간중 꼭한번 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비록 서울 공연은 종료되었지만,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투어 마지막인 인천 공연에 부모님과 함께 재관람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선보여주신 배우님들의 열정과 제작진 여러분들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멋진 공연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아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성황후의 내용은 정말 좋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로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스토리 도 매우 좋아 습니다 감사합니다!

뮤지컬 〈명성황후〉 - 고양

배우들이 단체로 나오는 장면들은 볼거리가 많습니다. 1막과 2막 처음, 무과시험, 마지막 넘버 등은 참 멋있습니다. 또 고종, 명성황후, 홍계훈 세 분이 서서 노래하실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준호, 김소현 배우들의 명성에 걸맞는, 라이징스타 임정모 배우의 노래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박상궁 역할을 맡으신 임선애 배우도 연기를 아주 맛깔스럽게 하셔서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라인은 좀 아쉽습니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어지는데.. 말로 대사를 처리해서 스피드하게 전개하면 장면마다의 개연성을 좀 높일 수 있을텐데..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노래로 질질 끌다가 다음 장면으로 간주점프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명성황후에 대한 고증을 차치해도, 픽션으로서도 극중에서 내용 연결이 아쉽습니다. 고종의 정치적 변화과정과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울분이 설득력을 전혀 얻지 못한 채 배우들의 노래 실력에 업혀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차라리 애국심이라도 자극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라도 뽑게 하심이 어떨런지.. 내용이나 연출때문에 울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우들의 진심을 담은 노래 실력에 감탄이 되더군요. 앙상블을 맡은 배우분들이 울면서 부르시는데 그 감정에 동화될 뿐 극이 주는 호소감은 없습니다. 배우들의 실력에 극이 얹어간다.. 배우들 아니었으면 돈이 무척 아까울 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