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관람이었는데
3번째가 더욱 좋았던 공연이었어요
볼수록 더 좋아지는 작품이었던듯.....

이제와서 또 보고 싶으면 어찌할런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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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국내 초연되는 연극 [아시안 스위트]는 재일교포 출신의 작가 정의신이 2004년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2004년은 영화 [애란]으로 국내에 본인의 이름을 알렸던 여배우 김구미자가 암으로 사망한 해인데 이 작품은 김구미자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김구미자와 오래 전부터 친분을 나눴던 정의신이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 김구미자를 위해 헌정한 작품으로도 유명하죠. 실제로 연극을 보면 미혼으로 살았던 김구미자를 의식한 인물배경과 설정이 많습니다.



정의신의 이름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은 최양일 감독의 2004년작 [피와 뼈]였습니다. 2005년 국내 개봉한 영화 [피와 뼈]는 28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12개 부문이나 석권하면서 국내에서도 찬사를 받은 작품이었는데 개봉 당시엔 각본을 맡은 정의신의 이름 보단 공동 각본을 맡은 연출가 최양일과 기타노 다케시가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의신은 일본에선 영화 각본가, 연극 연출가, 극작가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극작가로 많이 알려져있죠. 극작가로서 정의신이 이름이 국내 공연계에 단번에 새겨진 작품은 유명한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이 있습니다. 2008년 국내 연극계에 획을 그은 작품이었죠.



국내에선 2000년대 중반 부터 자주 언급이 된 작가지만 정의신은 오래전부터 국내 공연계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다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뿐이지요. 1989년 10월, 지금의 동숭아트센터인 동숭아트홀 개관 기념작으로 선정된 [천년의 고독]을 필두로 20년 넘게 [인어전설][행인 두부의 마음][겨울 선인장][바케레타!]등 꾸준히 들어왔고 2009년 [바케레타!]공연 때는 처음으로 한국 배우들로만 구성하여 국내에서 첫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정의신의 작품은 상반기에 세편이나 공연됐습니다. 봄에 [야끼니꾸 드래곤]이 3년 만에 토월극장에서 재공연 됐고 5월엔 [겨울 선인장]이 재공연 됐으며 6월 부터 지금까지 극장 옮겨가며 [아시안 스위트]가 올려지고 있습니다.



이 중 이번에 국내 첫 선을 보인 [아시안 스위트]는 2007년 국내에 출간된 [정의신 희곡집]에도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그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연극이나 일본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 정도라면 이름 석자 정도는 익숙한것이 됐죠. 사실 극작가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회당 2~3천만원씩 받는 드라마 작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릅니다. 길가다가 김수현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셋 중 하나는 [드림하이]에 나온 김수현을 말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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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스위트]는 2009년 [바케레타!]이후 2년 만에 국내에서 보게 되는 정의신의 못보던 작품입니다. 제가 [아시안 스위트]를 보게 된 건 김구미자 유작이라서가 아니라 배성우 때문이었어요. [모비딕]을 보고 배우들 인터뷰를 찾다가 씨네21에서 배성우 인터뷰를 보게 됐고 연극 차기작이 [아시안 스위트]라고 하길래 알아보다가 예매까지 한거였죠. 배성우가 이번에도 살짝 맛이 간 연기를 한다고 하길래 기대가 됐어요. 배성우는 생긴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맡는 배역들을 보면 하나같이 정상이 아닙니다. 연극에서도 그런데 감독들이 그가 나오는 연극을 보고 영감을 받은건지 영화에서도 변태 같은 역만 맡더군요. 근데 그걸 무척 잘 하기도 하고 어울려서 보고 있으면 재밌어요.



연극은 뮤지컬 만큼 광고 횟수가 잦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신작이 올라가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공연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집결돼 있는 인터파크 티켓만 하더라도 연극 페이지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공연 볼 때 저에게 대학로는 정말 필수적인 요소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가급적 발 딛기 싫은 곳이라 대학로 여기저기 붙어 있는 광고지의 영향도 거의 못 받고 있어서 종연되고 뒷북친 연극들이 많아요. 대학로 자체가 기피 장소가 된지 오래돼서 그런지 대학로만 갖다 오면 피곤하네요.



[아시안 스위트]는 김구미자의 유작으로 꽤 알려진 작품이었는데 일본에서의 초연 후 7년 만에 국내 유입이 이뤄진 건 아무래도 작가가 김구미자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보니 다른 배우의 연기로 올리는게 부담스러웠을지도요. 이번에 올려지게 된 건 2010년 일본에서 7주년 기념으로도 올려졌겠다, 연극계에서 정의신의 인지도도 높아졌겠다, 국내 공연을 추진하는데 있어 무리가 없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김구미자가 생소한 배우라면 모르겠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애란]이나 [미친 사랑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배우라 연극 자체에 김구미자의 잔영이 아직까진 가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본 공연 당시에도 실제로 죽어가는 김구미자가 사력을 다해 무대에 오른데다 배역과 배우를 구분할 수 없는 작품에 출연한것이기 때문에 씌여진 것 이상의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었던건데 이런 작품을 다른 배우를 통해 연결짓는다는건 무리도 있고 다소 위험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정의신은 작가가 작품을 내놓으면서 소중한 지인들에게 건네는 인삿말의 의미로써가 아닌 김구미자란 여배우 자체를 염두에 두고 구축한 배역을 통해 이 작품을 헌정한것이기 때문에 다른 여배우가 여주인공을 맡는다면 서커스가 될 염려가 있어요. 김구미자의 연기를 통해 파생된 감정은 어쩔 수 없이 단발성 효과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물건너 온 희곡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나 김구미자 역할인 치요크를 이항나가 아무리 잘 해도 작품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쓸쓸하고 처연한 감정흐름은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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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스위트]는 그동안 소외계층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던 정의신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걸쳐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음지에 머물고 있는 약자의 시선에서 다채로운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죠. 총 5막 짜리 작품으로 작품이 그려내는 주된 시간대는 어느 해 겨울 12월 25일 부터 12월 31일까지 연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5막에서 몇 개월 건너 뛰어 치요크가 마침내 결혼하게 되는 4월 봄날로 넘어가지만 이는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한 단계이고 작품이 긍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와 극적 재미는 1막 부터 4막까지입니다.



극 전개는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로 사는것에 자신감을 잃은 40대의 노처녀 치요크를 중심으로 펼쳐치고 있습니다. 치요크는 가족들이 저 혼자 잘 살겠다고 다 떠나버린 뒤에서 혼자 집을 지키며 인적 없는 지역에서 양장점을 운영하여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겐 최근 들어 가족들이 하나 둘 돌아오더니 옛 연인인 아사다까지 빌붙고 있죠. 그녀는 말없이 모두를 받아줍니다. 오히려 주제넘게 설치는건 뻔뻔하게 집으로 돌아온 가족과 아직 정이 남아 있는 아사다 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못 이기고 집을 나갔가다 재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어머니 미쓰코는 현실감각은 있지만 딸을 아끼는 마음과 늙어서 의지할 곳 없는 자기 자신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경멸하는 남동생 시로는 저학력 이력에 불만을 느끼며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엎친데덮친격으로 여자한테 사기나 당하고 저금한 돈 다 날리고 알거지가 된 상태에서 백수가 되어 누나를 돌보겠다는 핑계로 집에 돌아와 끊임없이 자기비하를 하곤 합니다. 그는 밤마다 만취한 상태에서 [아시안 스위트]나 사들고 돌아와 어머니와 싸움박질이나 하기 일수죠. 과거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다른 여자의 배우자가 된 아사다는 집안은 망했고 아내와는 별거중으로 만만한게 치요크라고 치요크에게 얹혀 살며 그를 못마땅해하는 미쓰코와 위태위태한 관계를 지속합니다. 치요코도 아사다가 싫지는 않지만 언제까지 유사 불륜 관계로 한집에서 머물 순 없는 노릇입니다. 이들은 한집에 살면서 어떻게 해서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되고 끊임없이 으르렁 거리고 갈등을 고조시키며 급기야 찬거리로 마련한 파뿌리가 가루가 되도록 내려치며 치요크가 분개하고 나서야 일단락됩니다. 그리곤 아무말 없이 이들은 화해와 용서와 치유의 의미로 다 같이 모여 앉아 송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전골을 나눠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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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이항나는 여배우가 나이 들고 결혼하고 애낳고 나면 누구의 이모, 엄마 역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에서 모처럼만에 찾아온 주체적인 배역에 매료돼 출연을 한건데 이 작품은 그녀의 출산 후 무대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치요크 역이자 김구미자 역을 맡아서 매체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데 연기엔 한계가 보입니다. 일단 작품 자체의 세월이 7년 밖에 안 지났고 초연 때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김구미자가 죽은지도 7년 밖에 안 지나서 김구미자 그늘에 갇힐 수 밖에 없고 이를 떠나서 이항나의 연기가 힘이 많이 딸려요.



감정표현이 나쁜건 아닌데 발성이 너무 답답해서 후반부 발악하는 장면들은 듣는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호흡 조절을 해야하는데 그냥 내지르고 말더군요. 소리가 제대로 나오면 신경쓸 일이 없는데 소리가 안 나와서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대는것 같았어요. [아시안 스위트]는 대학로 예술극장 공연 이후 곧바로 가변극장 키 작은 소나무 공연장으로 옮겨가는 작품인데 두 곳에서 하는 공연기간이 합쳐도 한달이 안 됩니다. 긴 공연이 아닌데도 목상태가 이렇게 엉망이라면 문제가 있어요. 더군다나 이항나는 이젠 거의 노장 취급을 받는 연극 배우인데 말이죠.



치요크란 배역은 참다참다 확 폭발하는 역할인데 이 폭발하는 지점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동기부여와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항나의 연기엔 그런게 없어요. 그저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 빠진 치요크의 공치사로 밖에 안 들리죠. 인물의 분노도 다혈질로만 비춰집니다. 구차하고 비참하더라도 동정의 여지를 남겨놨어야 하는데 몇분을 내리 몰아치기만 하니 징징대는걸로 밖에 안 보여 짜증나더군요. 나중에 치요크가 모두에게 감사하다 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래서 씌여진 것 이상의 감성을 일으키는데 실패했고요. 인물을 통한 전반적인 정서가 뭔지는 알겠는데 이항나의 연기엔 치요크의 처연함이 결여되어 있어 감정이입을 더디게 만듭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좋았습니다. 특히 배성우의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능글맞은 캐릭터 연기는 입체적으로 살아 숨쉽니다. 이런 배역에 있어서 가히 최고에요.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면 가발을 쓰는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숱없는 머리카락 때문에 배역에 있어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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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스위트]는 해체된 가족구성원이 다시 원상복구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가정극인데 그 묘사 방식이 굉장히 강도가 높습니다. 구성 자체는 뻔하지만 생생한 질감으로 표현된 대사는 날이 서있고 속사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대사는 간담서늘합니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중간에 아사다가 미쓰코를 성희롱하는 장면은 아슬아슬했죠. 표현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수위까지 묘사될지 보는 내내 불안불안했어요.



정의신이 이 작품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나약한 인간 본성입니다. 겉으론 강한척 굴지만 현실은 가진 것 없는 절름발이 노처녀 치요크에게 기대려는 이기적이고 불안한 인간 본성의 이면을 그리고 있죠. 이를 상징시키는 소품이 작품에서 잠깐 등장하고 마는 [아시안 스위트]입니다. [아시안 스위트]란 일본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같은데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망고 푸딩 이름으로 맛이나 품질과 달리 제품 이름이 거창해서 미쓰코가 비아냥거리는 싸구려 식품이자 패륜아 수준인 그녀의 아들 시로가 즐겨 먹는 간식입니다. 작품은 우리의 삶, 혹은 이들의 삶이 겉으론 그럴듯 해보이는 이름을 영위하려고 하지만 속은 물러터지고 달짝지근하기만 한 싸구려 푸딩인 [아시안 스위트]와 같다는걸 인물들의 구차하고 저급한 본성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이상주의가 실은 허상이라는걸 여지없이 박살 낼 때 이 작품의 진가는 드러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통한 정화작용을 얻을 수 있죠. 인물들의 감정변화는 끝까지 가고야 맙니다. 치요크는 잡안 집기와 대파를 아무데나 후려치며 발광을 하고 옛 연인인 아사다는 그를 멸시하는 미쓰코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자기기만에 빠진 동생 시로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고불로 지랄을 떱니다. 아주 다들 한대 쥐어받고 싶을 정도로 징징거려요. 그러나 이 모든 응어리진 감정을 해체하고 나서야 비로서 이들은 가족애를 회복하고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아시안 스위트]는 해체된 가족의 아이러니를 조명하면서도 이들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따뜻하게 봉합하는 기술력이 능숙한 드라마였습니다.



- 소품으로 진짜 아시안 스위트 푸딩을 썼을까요? 푸딩이라면 환장을 하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더군요. 진짜로 고기 넣어 끓인 전골 소품은 배우들이 젓가락으로 한두번 집어 먹을 정도만 준비했을겁니다. 전골인데 국물이 보이지도 않았고 배우가 전골 냄비를 들고 나오는 폼이 너무 가벼웠어요. 고기를 짚을 때도 국물이 떨어지지 않았고요.



- 시로 역을 맡은 김두봉의 구두는 본인 신발이 아닐까 싶어요. 설정 자체가 남루한 배역이긴 하지만 의상으로 따로 구비했다고 보기엔 구두 밑창이 너무 닳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