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작품임에도 3시간 정도의 긴 플레이 타임 동안 머릿 속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대체로 좋지 않은 의미에서요. 가장 큰 문제점을 잡아보자면 대사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디는 약간 허세식으로 고풍스런 말투를 쓰며 대사를 날리곤 하는데요, 원래 리처드 3세의 대사를 연극 속에 녹여내기 위한 수단이었죠. 리처드 역의 배우 분께서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해주셨습니다만 결국 대사를 힘있게 전달하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관객도 결국 배우분의 입보다는 화면의 자막을 보게 됩니다. 연극에서 말이 힘을 잃어버리면 기본적인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죠. 특히나 모순덩어리에 욕망과 순수함이 함께 뿜어져 나와야하는 극히 복합적인 캐릭터인 리처드는 이 연극 속에서 붕 떠버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냥 그가 하는 행동이 다 어리석게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사의 힘이 없으니 어리석음을 공감으로 이끌어가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리고 현대어 파트도 문제인 것이 전체적으로 번역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어색한 번역체 말투가 내내 이어집니다. 각색된 작품의 가장 큰 내재적 지향점이 결국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을 파괴하는만큼 그 이상의 성취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썬 제게는 득이 실보다 큰가 회의하게 됩니다. 무대를 현대의 고등학교로 설정하고 그에 맞는 배우들의 대사가 욕설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이어져도-이 부분만큼은 톡톡 튀는 번역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욕설과 비속어를 현대 한국사람이라면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식으로 바꾸었는데요, 다만 왜 이 대사들만? 이라는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소셜 네트워킹에 대한 비판이라던가 익명성의 무서움, 혹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을 녹여내긴 했지만 그런 주제를 녹여낸다고 해서 이야기의 매력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죠.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를 좋아하는데, 고등학교 교실과 장애인 리처드로 재해석된 <틴에이지딕>. 역시 기대대로 흥미롭고 생각할 문제를 던지는 연극이었습니다!!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극. 로미오와 줄리엣,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넘는 매력적인 원작과 재창작극. ?

대사의 속도는 좀 느렸지만 휠체어를 타고 연기를 펼치는 하지성 배우와 조우리 배우의 연기는 대단했고, 다른 배우들과의 합도 좋아서 3시간이 넘는 공연이었지만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뇌성마비인 역할을 실제 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면서 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고정관념이나 인식과 태도에 대한 강한 비판을 실감나게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음흉하고 잔인한 리차드3세의 이야기가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각색되면서 청소년들의 시기와 질투를 다루게 되니 원작보다는 다소 가볍게 느껴졌지만, 청소년기의 복잡한 심리상태와 욕망이 주는 무게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밝고 발랄한 느낌의 연출에 재치있고 코믹한 유머가 센스있게 잘 조화되어서 제법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당연하게 장애인 친구를 편파적으로 대하고, 조롱하기까지 하는 사람들과 비틀린 욕망으로 교활하게 행동하는 리처드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는 없었고 모두가 입체적인 인간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가는데, 다른 사람만 탓하고 자신의 입장에만 맞게 해석하고 주장하는 리처드의 모습이 참 씁쓸했어요.

인상깊은 공연이었습니다. 영상 활용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