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커지고 만나고 율동하는 음악

렘브란트의 그림을 샤갈의 그림을 보듯
빛나는 음악으로 가득했던 2시간이었다~!

음반으로 만난 헤레베헤

헤레베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검색해보니 1947년 벨기에 태생이다. 맡고 있는 악단이 꽤 많은데, 이번에 같이 내한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등과 함께 좋은 음반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아모니아 문디 레이블에서 좋은 연주를 좋은 음질로 담아내더니, 최근엔 파이(PHI)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걸고 계속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처음 접한 건 아모니아 문디 레이블에서 나온 3CD 짜리 마태수난곡이었던 것 같은데, 이 곡의 참맛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이 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CD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역시 또 잘 알지도 못하는 브람스 합창 음악을 파이(PHI) 레이블에서 나온 CD로 들어보게 되었는데, 아주 좋았다. 완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음반이 아니었으면, 이 아름다운 음악은 접해보지도 못할 뻔했다. 그 감동으로 하나 더 도전해본 것이 바흐 모테트 음반이었다. 이것도 아주 흡족했다. 몇 가지 음반을 더 추천받아 들어봤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는 그렇게 내 음악 감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헤레베헤의 레퀴엠 공연을 기다리며

작년에 서울시향의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으면서 한동안 레퀴엠 앓이를 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막연히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서울시향 공연 예습 겸 이것저것 영상물과 음반을 들어보면서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좋은 연주도 정말 많고, 판본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다양하게 듣는 재미가 더 좋았다.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레퀴엠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었는데, 내한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레퍼런스급으로 꼽는 사람이 있는 세계적인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을 수 있는 기회 같아서 얼른 예매를 결정했다. 그리고, 음반을 구입해서 걸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연주와 독창진은 더 나은 음반들이 많지만, 음질과 합창은 최상급이었다. 그렇게 헤레베헤의 레퀴엠 공연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주회가 되었다.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교향곡 연주회

문제는 교향곡인데, 헤레베헤 음반 중 순수 기악곡은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었기 때문이다. 레파토리를 넓혀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합창 음악에 강점이 있는 지휘자라는 인식이 내겐 남아 있다. 주변의 호평 속에 기대를 갖고 들어봤던 말러 교향곡 4번도 음질은 아주 좋았지만, 연주 스타일에는 그렇게 매료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포은아트홀에서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세 곡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즘 시대악기 연주에 조금씩 관심이 가고 있던 참이긴 하지만, 레퀴엠과 교향곡 41번으로 구성된 LG아트센터 공연을 예매해둔 이상 이건 좀 포기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기 예매 40% 할인의 유혹을 결국 넘지 못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38번 ''프라하''

그렇게 약간은 우연적으로 가게 된 공연이지만, 기대는 잔뜩 하고 갔다. 교향곡 38번 프라하를 첫 곡으로 연주했는데, 미리 몇 번 들어봤는데도 이 곡은 귀에 쏙 안 들어온다. 연주가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딱히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심한 울림 없이 소리를 잘 보존하는 홀의 음향이 기대 이상 좋았고, 익숙하지 않은 곡을 실연으로 귀기울여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헤레베헤의 지휘하는 모습과 손동작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40명 정도의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앙상블이나 음색이 지난번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보단 좀 떨어지는 듯하다. 그때 시대악기 연주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는데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그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두번째 곡인 교향곡 40번은 조금 익숙한 곡이라 더 즐겁게 들었다. 천상의 선율이라는 도입 부분은 다소 빨리 연주하는 듯했다. 조금 듣다보니, 음을 또렷하게 내기보단 흐르게 놔둘 때가 많다. 물결치는 느낌이 강하고, 그 끝에 삐침이 조금씩 있어서, 춤곡같은 리듬감이 살아있다. 흥겨운 부분 뿐 아니라 느린 선율도 이런 스타일로 연주된다. 개별 악기보다 전체의 조화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고, 개별 음보다 음의 흐름에 더 신경을 써서 연주하는 듯했다. 전체적인 진폭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작은 리듬들로 물결치는 느낌이었다. 유유히 흐르는 큰 줄기에 세밀한 파동이 많이 가미되어 개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연주로 들렸다. 특히 좋아하는 3악장도 역시 좋았고, 다소 격정적으로 느껴졌었던 4악장은 절제된 격정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음악은 큰 물결을 형성하기보단 작은 물결이 모여서 흐름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휴식 후 연주된 41번 교향곡은 이날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았다. 원래 40번과 41번은 들을 때마다 선호도를 뚜렷하게 결정하기 어렵게 둘 다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는 41번이 확실히 더 좋았다. 원래부터 가장 좋아했던 4악장도 좋았지만, 조금은 밋밋하게 들리기도 했던 2악장이 특히 좋게 들렸다. 서정적인 느린 악장에서 특유의 잔물결이 주는 유려함이 개성적으로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 리듬감이 자연스럽고 템포와 강약이 인위적이지 않아 우아한 연주였다. 쪼임과 풀림, 흐름과 삐침이 자유롭게 교차되는 감칠맛이 있었다. 시대악기 연주는 좀 더 또렷하단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히려 흐르듯 미끄러지는 음 사이와 연결이 강조되는 듯한, 나로선 상당히 새롭게 들리는 특별한 연주였다.

특히 좋았던 플루트와 오보에

악기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플루트였다. 마르셀 퐁셀의 오보에도 아주 좋았다. 호른은 1부에서는 간혹 불안정하게 들린 부분이 있었는데, 2부에서는 대체로 안정감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트럼펫은 특별히 더 좋게 들리진 않았고, 현파트도 나쁘진 않았는데 기대만큼 황홀하게 매혹적인 사운드는 아니었다. 개별 악기의 소리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좋게 들렸던 연주였는데, 플루트와 오보에는 특히 좋아서 더 잘 들렸다. 플루트 소리는 계속 일부러 귀기울여 찾아듣게되는 매력이 있었다.

의외로 좋은 연주 만나기 어려운 모차르트

모차르트 교향곡들이 규모도 크지 않고, 연주의 난이도도 특별히 더 높은 것 같진 않은데, 좋은 연주로 듣기는 참 어렵다. 국내 악단이 그 맛을 잘 못살려내는 작곡가가 또 모차르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친숙한 작곡가이면서도, 실제 연주회에서 좋은 연주로 자주 만나기 의외로 어려운 작곡가가 바로 모차르트다. 그런점에서 헤레헤베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교향곡은 아주 좋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