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습니다

요엘레비와 쇼스타코비치의 궁합이 좋다.

객원으로 온 트럼펫 악장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8일 금요일 오후 8시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 교향악단 743회 정기연주회의 첫 곡인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부터 볏짚을 짜는 듯한 현의 유려함과 우아함이 아늑함과 따뜻함을 선사했다. 발레음악은 언제나 평타 이상이다. 거기다 하차투리안 특유의 민속적인 요소가 강렬한 리듬은 음악회의 서곡으로서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을 단숨에 하나로 집중시키는 효과만점의 쇼스타퍼(Show Stopper)다.

많이 알고 많이 들으면 그 곡에 대해 점성(Viscous force)이 생긴다. 그만큼 듣고 아는 곡에 대해 들었던 연주를 끈덕지게 잡으면서 거기에 매몰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날의 다니엘 하리토노프의 <파가니니 광시곡>은 여러모로 열린 상태다. 꽃미남의 귀공자 스타일의 다니엘 하리토로프의 <파가니니 광시곡>, 아니 라흐마니노프는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우아했다. 그래서인지 박진감과 박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옆 자리의 동행은 첫 음 타건을 듣고 대포알 소리인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 라자르 베르만,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강소연의 연주가 뇌 속에 박혀 버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슈퍼 헤비급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를 날린다면 다니엘 하리토노프는 웰터급에서 잔 주먹으로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복서같았다. 체급이 안 맞는 선수를 같은 링에서 경쟁시키는 것은 불공정하고 급이 안 맞는다. 그래서 다니엘 하리토노프를 통해 라흐마니노프 보단 드뷔시, 라벨 등의 곡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고 듣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감상과 해석의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되는데 일주일 간격으로 2명의 다른 피아니스트로 <파가니니 광시곡>을 실황으로 감상하니 상대적으로 앞서 들은 연주 프레임의 덫에 걸린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쇼스타코비치의 11번 교향곡은 한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다. 제정 러시아의 1905년 혁명 전야를 음악적으로 시간대별로 순차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한편의 음악드라마이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동학운동, 갑오경장 등 우리 구한말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숨 가쁘게 이어진 격동의 시대였는데 그 중 하나를 교향곡의 소재로 정해 그 당시에 불린 민중가, 혁명가, 당대 유행했던 노래, 군가를 삽입하여 한 편의 교향곡으로 구성했다고 가정해 보면 역사에 대한 사전이해와 지식이 없이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재미없는 무성영화에 불과하다. 시대서사극의 역사와 등장하고 삽입된 원곡의 테마의 의의를 안 상태라면 훨씬 쉽게 교감하면서 교육적인 목적이든, 교화의 도구든 아니면 혁명에 대한 예찬이든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한국도 아닌 외국, 그것도 아직도 극단적인 이념논쟁이 벌어지는 한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민중봉기까지 알고 공감하기엔 너무나 벅찰 수도 있다. 다만 간접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역사의 한 칸을 음악으로 경험해 보고 상상해 보면서 쇼스타코비치의 탁월한 음악적 구성과 특유의 블랙 유머와 위트에 콧방귀를 칠뿐이다. 1시간 넘게 지속되는 결코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없는 긴 연주시간 내내 하프와 트럼펫은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시그널이다. 그 두 악기가 솔로로 출연하면 뭔가 일이 터질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한바탕 난리가 휩쓸려간 광장에 부러진 깃발과 낭자한 선혈이 흐르는 느낌이며 붉은 옛 소련(USSR)의 국기가 연상되어 으스스했다. 듣는 사람이 누구고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판단과 느낌은 달라질테다. 다만 우리의 역사, 예를 들어 ‘4.19혁명’이나 ‘5.16군사쿠데타’.‘''5.18민주화운동’, ‘6.10민주 항쟁’ 등을 음악적으로 구성할 때 쇼스타코비치에게 많이 배우고 학습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은 혁명의 열기와 참화를 있는 그대로 충실히 반영한 표제음악(Program Music)이다. 그 안에 어떤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을 감추고 있는지 우리 한국 실정에선 라이브로 듣기 힘든 곡이자 오소독스한 작품이다. 마침 우리나라의 6월 항쟁, 하루 전날 연주되면서 묘한 대척점을 이뤘다. 안그래도 지난 주 광주에서 5.18광주민주화항쟁 때 불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주제로 한 창작곡 공모발표회가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11번 같은 스타일로 공모에 출품했다면 이런 내용에 충실한 작품보단 외형적이고 기법적이면서 기교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분명 떨어졌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런 ''시대교향곡''은 못 따라가더라도 적어도 사실에 입각한 진실성을 내포한 한국 창작관현악곡의 창출을 6.29민주화운동 32주년에 부쳐 꿈꾸어본다.

러시아 음악의 웅장함에 흠뻑 빠졌어요 정말 섬세하면서도 큰울림이 있었던 연주회 참 잘봤습니다ㆍ KBS교향악단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향악단답게 수준 높은 연주 감명 깊게 봤습니다 앞으로 정기연주회 빠지지 않고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