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목이 바뀐 것도 이해하기 힘든데 뮤지션의 컨디션이 그 정도면 공연을 애초에 취소하는 것이 당연한 공연이라고 봅니다. 급하게 부상을 입으셨다고는 하지만 그 소식을 공연장에서 들었을 때는 정말 황당하더군요. 아무튼 무대에서 열심히 하시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공연 내용이나 퀄리티는 후하게 생각해도 티켓 가격의 절반에 절반에 절반도 아까웠습니다.

이브리 기틀리스는 공연 전날 넘어져서 왼쪽 어깨를 다쳤다고 양해를 구하며 연주를 끝까지 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고, 최선을 다해는 보겠다고 말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1부 프로그램에 들어있던 베토벤의 봄 소나타는 크라이슬러 레파토리로 변경되었다. 크라이슬러의 곡들도 좋았다. 수줍은 소녀처럼 부드럽고 순진한 터치로 연주하는 바한의 피아노와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 ''사랑의 고통''을 뒤돌아 보고 관조하는 듯한 이브리 기틀리스의 바이올린이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고통"을 연주했다. 참으로 절묘한 조합이었다. 아직 사랑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저 설레임으로 그것을 생각해보는 목소리와 이미 고통을 겪고 이제는 고통에서 더이상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는 목쇠가 함께 노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베토벤의 봄 소나타는 잠깐 연주되었는데, 수십번의 봄을 되돌아 보는 봄날이었다. 끝까지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93세의 이브리 기틀리스의 연주는 힘차고 정확한 연주는 아니었다. 사뿐사뿐하고 자연스러운 연주였고 음악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연주였다.

공연 내내 이브리 기틀리스는 미안함을 표현하며 곧 다시 오겠다고 말했는데, 부상에서 어서 회복하고 다시 한국을 찾기를 바래 본다.

만수무강하세요 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