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의 한복판에서 남자와 여자, 서로의 입장차이가 교차한다. 여자는 함께 있던 시절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자를 그럼에도 기다리던 자기 자신을 노래하고, 남자는 여자의 생전 모습을 더 이상 자세히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늙어버린 자기 자신을 노래한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여자는 ‘기다리던 나’이고, 남자는 ‘늙어버린 나’이다. 이 극적인 교차점을 통과하면서 메조소프라노와 바리톤으로 정제된 두 목소리는 기억의 정체를 꿰뚫는 듯하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 하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빙 둘러싸며 마치 객석처럼 의자가 놓여있는 무대는 기억의 자기중심적 성격을 은유하는 장치이다. 무대는 죽은 여자의 영혼이 부르는 독백과 여자의 무덤을 대신하는 앙상한 나무를 찾아온 남자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심지어 여자는 죽었고 영혼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잃고 홀로 남았던 자신의 외로운 모습만을 상기시키는 두 사람의 독백들은 마치 두 사람이 마주보면서 자신들의 추억을 회상하는 대화처럼 느껴진다. 대화 같은 독백들에 소통의 부조리함이 있다.

3장의 막이 오르고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더 늙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홀로 등장한다. 여자는 무대를 이탈해서 2층 객석에서 아리아를 이어간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이때 여자의 노래가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각지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처럼 느껴진다. 관객들은 무대에 홀로남아 딸의 결혼식이며 사위에게 느끼는 질투를 노래하는 남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무대 위에 둘 다 올라와 있을 때는 마치 자연스러운 대화 같았지만, 실제로는 홀로 아내의 무덤을 찾은 남자의 심정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멀리서 2층 객석에서 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를 상상하며 무덤가에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남자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2층 객석으로 남자까지 무대에서 이탈한다. 관객들은 배우 없이 텅 빈 무대를 보는데도 2층에서 이어지는 배우들의 합창을 듣고 있다. 조명이 관객석을 비춘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받았을 스포트라이트의 눈부심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진 채 무대를 보게 된다. 이때 아리아는 여전히 계속된다. 이 순간의 감각이 지금은 텅 빈 무대 위 사건이 허구임을 폭로하는 긴장감이라기보다도, 오히려 더 허구 안으로 침투하면서 기억자체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계속되는 아리아 때문이었다. 남자는 무대 밖으로 이탈했지만, 죽은 여자를 떠올리는 남자의 기억이란 이런 감각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운 하나의 장면이 무대처럼 놓여 있고, 그 장면에서 연상되는 독백과 대화와 목소리들이 그 장면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관념적 상상. 오페라 <열여섯 번의 안녕>은 사실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구조─그때 당신은 거기서 그렇게 (말)했어요!─에 가까운 순간을 예술적 경험으로 체험하게 한다.

무대 위 덩그러니 놓여있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패러디하며 죽은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라는 상황의 부조리함, 심지어 죽은 아내의 영혼이 직접 찾아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의 부조리를 암시한다면, 무대-좌석으로 구성된 공연장의 데칼코마니처럼 객석을 연상시키는 의자가 놓여있는 세트구성은 이날의 무대를 기억하게 될 관객의 기억을 은유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연장을 떠난 관객이 그날의 무대와 직조된 불협화음을 상기시키지만 끝없는 상승과 하향 곡선을 그리며 아름다웠던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의 목소리를 떠올리지만 그날의 무대는 영원히 결핍으로 남는다는 점이 공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관객의 영원한 숙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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