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많이하게되는, 훗날 다시 또 보고싶은 연극이었어요 :)
배우분들의 연기에 저까지 상황에 몰입해서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

무대 연출도 좋았고, 연기력, 모두 좋았다, 심지어 안톤체홉극장이라는 극장 이름도 좋았고 모바일티켓 디자인도 멋지다, 소극장이고 약각 오래된 공연장이지만 객석 의자가 영화보는 극장 의자처럼 아주 큼직하고 좋다, 살짝 불편한 의자도 있지만 이 모든게 이 극장의 매력 같다, 여기서 예전에 차이카도 봤는데 안톤체홉 소설에도 묘한 매력이 생긴다, 입구에서 커피 내려주시랴 티켓 확인하시랴 바쁘시던 그 분의 두건도 매력적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그 공연장 지하로 내려가서 두건 아저씨를 보는 순간 안톤체홉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거 같다.

이름따라가는 극장, 안톤체홉극장
안톤 체홉이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인데(이번에 알게됨) 내 취향의 연극을 그동안 해왔고 앞으로 예정된것들도 다 내취향.
앞으로 여기서 하는 연극은 다 볼거다! 혜화 대학로 골목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가는 길에 헤맸지만, 극장이 작지만 깨끗하고 좌석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어디 앉든지 상관없을 것같다. 게다가 일반 좌석가격이 15,000원 이라니 연극보고 너무 적은 값을 내는게 아닌가 하는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학교다닐 때 나의 꿈은 연극, 뮤지컬 브랜딩 디자이너였는데. 정말 열정없이는 할 수 없을 일이겠구나하는걸 다시 느낀다.


시대극이라는 판타지
나는 판타지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이나 과거 시대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나에게 판타지란 시대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없는 제약, 의상, 라이프스타일들을 보고 내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 너무 역동적인 시대물보다는 바냐삼촌처럼 잔잔한 시대물. 그 안에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복작복작이는 모습을 엿보는게 너무 즐겁다. ‘옛날엔 그랬구나’하는 식의 상상이 나에겐 편하고 재미있다. 내가 쓰는 글도 그림도 항상 그럴법한 판위에서만 짜 나가는것을 좋아한다. 지금보다 더 어릴때는 그런 내가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느껴서 싫었는데, 요즘엔 이게 그냥 나라고 생각이 든다. 어디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가면 된다.


그러려니하는 약속
첫장면에 의사가 객석을 바라보며 날씨 이야기를 할 때 오랜 감정이 생각났다.
‘그래, 나는 이런 연극의 느낌이 너무 좋아!’
바냐삼촌에서 쓰인 소품은 정말 섬세하고 이야기의 배경과 어울리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그러려니, 그런 상황이려니 이런 자연스러운 받아들임과 자신의 상상이 일부 들어가야 연극이 완성된다는것.
내가 연극을 왜그렇게 좋아했는지 보면서 생각이 났다. 바냐삼촌과 새엄마가 비를 맞는 장면도, 의사선생님의 오래된 지도도 관객들 각자의 그 장면이 다 다를거라는 점. 어디든 조금씩 내 상상을 끼워넣고 싶은 내 성격은 어쩔 수 없나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어쨌든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의사선생의 나른함을 온몸에 휘감고 일어나는 장면에서 나는 극으로 확 몰입하게 되었다.


텅비어있는 창문으로 둘러쌓인 바냐삼촌의 집
연극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크게 나누자면, 일하는자(바냐삼촌, 쏘냐)와 노는자(교수님, 새엄마)로 나뉘어지는데
바냐삼촌과 쏘냐는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일평생 교수의 학업과 유흥비용을 위해 뼈가 빠져라 농장일을 해서 돈을 대준다. 가족이기 때문도 있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그의 존재가 그저 배낀 논문, 고마워하지도 않는 그의 태도등을 알게되어 분노한다. 게다가 그런 사람을 위해 살았던 내 인생에 한탄하고 더는 일을 하려 하지 않지만 결국엔 다시 그를 위해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 전과 달리 마음의 무언가를 잃어버린채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을 한다. 무대의 절반을 매우고 있는 언뜻보면 쇠창살같은 텅비어있는 창문처럼 훌쩍 넘어가면 그만인 것을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 앉아 주판으로 계산을 하면서 극이 끝난다.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해보면서 생각보다 편하게 놀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물론 나는 ‘일하는 자’에 속해 있지만...
때때로 타인을 위해 일을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성장이나 발전에 목표를 두고 선택하는게 참 쉽지 않다. 잘 노는법을 알지 못해서 요즘도 너무 쉬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좀 놀아보려고 한달에 연극 두편씩 보기로 결정한거지만 그마저도 전전날 쯤에 취소가 되나 안되나 알아보기도 한다... 워커홀릭이 되고싶지 않지만 어느새 하는짓은 비슷한듯 ㅠ
역시 적당히 놀면서 적당히 일하는게 제일 좋지만, 세상은 우릴 그렇게 놔두지 않고 뭐든간에 ‘적당히’가 가장 힘든 법이다.
극중 내가 지향하는 캐릭터는 ‘유모’인데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하고 일상을 살아내고 타인의 삶을 미워하지 않는사람. 그러나 그는 나이 90이 된 노인이다. 90쯤의 나는 좀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수 있을까?

체홉을 연구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진지한 연기의 앙상블!

"바냐삼촌" (작:안똔 체홉 번역,연출:전훈 출연:정인범, 지주연, 이동규, 조환, 이규빈, 김용학, 조희제, 장희수, 박희도, 파트마누르 아탈라이, 김채원 제작:애플씨어터 극장:안똔체홉극장 별점:★★★★☆) 2017년도에 봤었던 공연이다. 배우가 바뀌었지만 똑같은 공연 인데도 매 번 볼때 마다 다른 느낌이 드는게 체홉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주인공들도 좋았지만 오늘은 쏘냐와 유모에게 유독 눈길이 간다. 바냐와 옐레나, 아스뜨롭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 하지만 짝사랑만 하는 쏘냐가 불쌍해 보인다. 그렇지만 쏘냐 에게는 그녀를 위로하는 유모가 있다. ''우린 쉬게 될거에요'' 라고 얘기 하면서 마무리 되는 마지막 장면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브릿지 음악도 좋았다. 기대했던 지주연 배우님도 옐레나에 어울리는 미모로 무난한 연기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