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아슬아슬하고 도전적인 일탈의 느낌.
짧은 시간인만큼 조금더 강렬한 매력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마지막 대사로부터 전해져온 뭉클함으로 상쇄됩니다.
영화든 연극이든 왜 눈물이나는지 이유를 궁금해했던 적은 없었는데, 많은 생각할거리가 2주가 지난 지금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네요 ㅎㅎ
본래의 내용은 원작의 배경 등을 공부를 좀 해봐야 이해하겠습니다.

(공연이 끝났으므로, 극의 내용을 다수 포함하여 후기를 남깁니다)

타자를 상처 입히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가 포함되더라도 그것이 이익이 되는 선택이라면 자연스러운 현실로 취급받는 사회, 그러나 반대로 타인에게 해로운 요소 없이 단지 원하는 행동을 선택한 것일 뿐인데 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멸시를 받아야 사회, 이러한 사회 공동체 내에서는 무엇을 선택하는 게 만족스럽고 좋은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모호하고 난해하다. 예술을 하겠다는 것은 자랑스럽고 멋진 선택인 것 같은데, 배우가 겪어야 하는 생존의 문제는 점점 더 무거워져 간다. 그러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무대에 잡혀 있기 때문에 연극을 떠날 수가 없다. 어쩌면 반대로, 배우가 무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대의 마력이 배우를 끌고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데 이미 자아가 태어나서 공동체의 삶이라는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거기서 떠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연극이 무대로 배우를 끌고 들어와서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중 어느 인물은 “연극이 뭐라고 이렇게까지”라고 말하지만, 그 연극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연극 무대라는 공간의 다양성과 모호성과 복합성은 여러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겹쳐 있다. 그 누구도 연극무대가 무엇이라고, 콜롬비나가 누구라고 선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콜롬비나(연극무대)를 놓고, 극 속의 극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충돌하고, 서로가 그녀를 기다려왔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실체를 명료화 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극 속에서 배우들은 콜롬비나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무작정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싫어도 버릴 수 없는 연극무대에 남아 있는 배우들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연극이 뭐라고”(콜롬비나가 뭐라고)에는 대답할 수 없어도, “연극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다”는 이유(콜롬비나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배우들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겹쳐 있는 공간들을 넘나드는 것이 계속 용납되지는 않는다. 각 공간들에 있는 힘은 배우들이 무대 위의 경계선에 그대로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내 작품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작가는 난해하고 실험적으로 보이는 무대를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즉,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현실의 영역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맥락을 견디지 못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반대로 “연극을 책으로 배운 연출”은,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배우들에게 더욱 작품에 몰두할 것을 강요하면서, 배우들을 피곤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실적인 맥락에서 초현실적인 무대를 선택하려는 시도도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실제와 허구가 겹치고, 현실과 초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배우 한 명, 한 명이 사라지고 사그라져 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히려 소름끼칠 정도로 선명한 현실을 보여준다. 몇 겹으로 교차하는 공간들의 경계인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어느 공간으로 갈 것을 놓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동료 배우의 사망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는 것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다른 무대를 꿈꾸며 떠나고, 누군가는 무대(삶)를 포기하며, 누군가는 경계선 위에 그러니까 처음 시작한 연극 무대에 그대로 남는다.

몽환적으로 표현된 무대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실감나고 냉정하게 응시하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무대의 슬픔과 객석의 웃음”이라는 다소 노골적인 장치를 사용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감정을 겹치게 만든다. 아마도 어떤 관객들은 이 지점에 이르러, 지켜보는 사람으로서의 선택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누군가는 다른 선택을 하고 떠날 것인가 혹은 아예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 남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이(밤새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면서도 재산은 보증금 밖에 남지 않은 생활과 중고차를 사서 집으로 쓰는 게 더 낫겠다는 한탄과 누가 연극배우와 결혼하려고 하겠냐는 냉소가) 자신의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희망으로의 변화를 갈망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 백 명의 생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고, 약자와 피해자들을 경멸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도 반성하는 이가 별로 없으며, 힘을 가진 범법자들에게 관대하다 못해 환호를 보내는 일이 지속되는 우리 사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는 환각과 같은 무대이자 동시에 현실이다. 따라서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이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진 공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무대를 보며 그저 웃고 마는 사람이 되는 것과 현실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감수성도 갖지 못하는 것은 닮아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공연장 밖으로 나온 관객들에게 대학로의 활기찬 웃음과 즐거움들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면, 그토록 기다려왔던 콜롬비나가 마분지 신부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극 속의 극의 난해함이 충분히 공감을 얻고 관객들을 관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과 현실을 한 무대에 포개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 강렬한 매혹을 선사해주었다. 아마도 그 경계인 무대가 인간의 삶과 닮아 있는, 이해하기도 도망치기도 어려운 불가항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나 날카로운 비판보다 훨씬 더 호소력 짙은 울림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진한 여운이 남는다.

작가, 연출자의 연극에 대한 오랜 사색과 애증이 돋보였던 무대. 연극(혹은 예술)을 위해 삶을 댓가로 지불하는 이들의 고뇌는 비 예술인들이 공유하기 어려운 것인데, 연출가는 마분지신부를 통하여 연극에 대한 사랑과 좌절, 그리고 기다림을 담담히 표현해내어 나같은 이공계출신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링크해준다. 팀의 초연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였는데, 극중 배우들의 대사에서도 말하였듯 고전적인 길고 상투적인 대사를 애써 배제하면서도 빠르고 간결한 호흡의 대사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해낸다. 전체 극의 절반이상이 안무에 치중되어 있는데, 살짝 아쉬운점이라면 더 넓은 무대와 고급진 조명이 있었더라면 안무를 120%살려낼 수 있었으리라 본다. 연출자는 보편적인 연극배우들이 추구하는 메소드 연기의 프레임을 거절하고, 배우들의실제 성향에서 배역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하는데, 이는 전인치료로서의 연극에 연출가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어쨌건 배우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무대에서 토해내는 경험은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또한 배우가 스스로 내면을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별점은 다섯개 만점에 일곱개 반 정도 드림. 오랜만에 내 눈과 귀뿐만이 아닌 전인적인 호강을 하게 해 준 연출자와 배우들에게 잉여별점 두개 반 헌정합니다. 차기작을 두근거리며 기대합니다.

"마분지 신부" (부제:Actor '' s commentary 원작:알랙산드르 불록 "발라간칙" 연출:신영선 안무:김은지 출연:김홍부, 문하나, 윤소연, 강신곤, 강도윤, 손효주, 장선국, 김지혜, 조영지 주최:팀 스케네 극장:소극장 혜화당 별점:★★★☆☆) 피에로, 콜롬비나, 할리퀸 이렇게 세 남녀의 애기가 극중극 형식으로 벌어지고, 그 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처한 현실의 삶을 얘기한다. 다시 극 속으로 들어가 연인들의 얘기가 춤으로 표현된다. 연극과 무용의 콜라보레이션 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춤이 들어가서 그럴까? 얘기의 서사성이 약하고 개인적으로 식견이 좁은 춤 공연이어서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았다. 창단 공연인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