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릴라 시어터>

대학로 소극장 아리랑에서 연극 게릴라 시어터를 보고 왔습니다. 연극 <게릴라 시어터>는 뛰어난 창작희곡을 발굴하기 위해 진행되는 2013년 '희곡아 솟아라'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으로 2014년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이기도 했으며, 2014년 대학로에서 공연 시 평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작품일지 사못 기대를 하며 찾아갔습니다. 게릴라 그리고 시어터, 해석을 하자면 게릴라 연극이 되겠네요. 게릴라와 연극, 두 단어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어보이는데 왜 게릴라 시어터라는 작품명이 나왔는지 한번 작품 속으로 저와 함께 들어가보시죠.

연극 <게릴라 시어터>가 공연중인 소극장 아리랑이 보입니다. 쇳대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소극장 아리랑, 지나가면서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들어가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연극 <게릴라 시어터>의 무대사진입니다. 티켓팅을 하고 들어가니 배우 두분이 직접 관객분들을 자리로 안내해주시더군요. 그 중에 한 분은 사냥총을 든 채로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와 털털한 말투로 관객들을 맞이해주시는데 그 모습에 연극 <게릴라 시어터>에 대한 첫인상은 호감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소극장 아리랑은 소극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정말 작은 무대였는데 조명을 이용, 너무 예쁜 무대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이 예쁘고 작은 무대에서 배우들은 뛰고 구르고 땀을 흘리고 노래를 부르며 그리고 전투를 치룹니다.

공연을 기다리는데 무대 한편에 기타를 드신 분이 나와 계십니다. 전 맨처음에 오프닝을 위해 배우분이 기타를 들고 나오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연극 <게릴라 시어터>는 공연 곳곳에서 기타반주와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들어있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아까 말씀드린 총을 들고 관객을 맞이해주신 분이십니다. 본인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이제 모두 한 식구라고 하시더니 알고보니 연극 <게릴라 시어터>에서 산지기 역할을 맡으신 이영주 배우님이십니다.연기 정말 잘 하시더군요.

연극 <게릴라 시어터>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순박한 게릴라들의 이야기를 순수한 눈빛으로 담아낸 연극입니다. 연극이 시작되자 무대는 깊은 정글 속, 정부군에 대항해 싸우는 게릴라들의 아지터로 변합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게릴라군이라고 해봐야 고작 4명에 불과합니다. 대장(손경원), 투덜이(김미영), 쌍커풀(민대식), 그리고 왕눈이(김현준), 이들은 마치 영화 동막골 사람들을 보는 듯 했습니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총은 고사하고 아직 비행기조차 구경 한번 못해본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게릴라들이지만 나무 막대기를 총으로 삼아 열심히 비행기의 공습을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고 폭격소리를 내며 말이죠. 그런데 이들에게 식량을 대어주던 산지기(이영주)가 마음이 변했는지 식량원조를 대폭 줄였습니다. 어딘지 산지기의 모습이 수상하다는 쌍커풀의 말에 모두들 의심을 갖는데 그때 비행기가 출현을 하고 삐라가 뿌려집니다. 게릴라 대장은 기억을 되살려 아마도 산지기의 수상한 모습은 분명 이 삐라 때문일 거라고 추측을 하고는 추궁을 하러 산지기에게로 몰려갑니다.

하지만 게릴라들이 추궁을 하기 전 이미 산지기가 먼저 삐라 때문이라며 털어놓습니다. 글자도 모르는 게릴라들은 산지기의 딸 이쁜이로부터 삐라의 내용을 듣는데 삐라는 정부군이 게릴라들을 돕는 민중을 설득하기 위해 게릴라들을 음해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인지라 산지기는 마음이 흔들렸던 거였죠. 아지트로 돌아온 게릴라들은 어떻게 해야 산지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를 의논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죠. 글자를 모르는 게릴라들이어서 정부군처럼 삐라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때 게릴라 대장이 유년시절의 추억 속, 당시 게릴라들이 연극을 통해 민중의 마음을 얻었던 기억을 떠올려, 그들은 산지기 모녀의 마음을 돌리기위한 연극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게릴라군은 연극의 대본을 만들고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정부군이 말하는 것처럼 무식한 부랑자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횡포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는 그들이 세금을 올리거나 물과 나무를 독점하거나 곡식과 소젖과 양들을 가져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땀 흘린만큼 배부르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게릴라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연극연습에 몰입을 합니다.

한편, 정글의 게릴라들을 섬멸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수색대를 편성해 투입을 시키는데 실전경험이라고는 한번도 없고 사람을 향해 총을 쏴본 적도 없는 수색대 대장(김신용)과 어쩔수 없이 군에 징집되어 온 주먹코(김기홍), 금이빨(박영남), 그리고 큰눈이(김현준, 왕눈이의 동생으로 1인2역)들 역시 게릴라들과 별반 차이 없이 순박하고 어리숙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줍니다.

수색대는 정글 깊숙히 들어와 산지기의 집을 발견하고

산지기와 그 딸을 인질로 삼아 게릴라들을 섬멸하기위해 작전을 펼치는데...

더 이상의 내용은 지나친 스포가 될듯하여 이 정도에서 줄이겠습니다.

2014년에 공연했던 연극 <게릴라 시어터>와는 조금 다른 것 같더군요.

연극 <게릴라 시어터>는 브라질 연극 연출가 아우구스토 보알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되었다고 합니다. 연극은 그 시절, 그곳 브라질의 게릴라들의 생존방식이었다고 하네요. 지금껏 게릴라라고 하면 무조건 총을 쏘고 싸우는 일이 전부인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더군요. 게릴라들에게 식량을 원조해주는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위해, 또 흔들리지 않는 가치와 신념을 갖기 위해서 그들은 연극이라는 매체를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연극 <게릴라 시어터> 정말 작은 무대였는데 무척이나 많은 배우들이 출연을 하는 것을 보고 우선 깜짝 놀랬었고, 배우들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에 감동받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연기 잘하시더라구요. 연극 <게릴라 시어터>은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지만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가볍기만한 개그나 해학위주의 대학로풍의 연극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정통연극에 가깝다고 해야할까요? 희곡이 주는 매력을 너무나 잘 살린 작품이었습니다.

연극 <게릴라 시어터>에서의 어설푼 게릴라들은 분명 웃기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던 그들이 전해주는 메세지가 분명 있었고, 정부군으로 나온 어설푼 수색대 역시 미워할 수가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형은 게릴라군에 동생은 수색대에 들어가있던 설정은 마치 얼마전 세월호로 인한 광화문 집회를 떠올리게 해주더군요. 서로 각자의 신념을 위해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적으로 만났지만 이들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극 <게릴라 시어터>에서 게릴라들이 꿈꾸는 세상은 땀 흘린 만큼 배부르고, 따뜻한 세상입니다. 굳히 꿈꾸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당연한 세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꿈을 꿔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성완종 리스트를 비롯해서 역사적으로 봐도 기득권자들의 세상은 언제나 단단하기만 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들이 연극 <게릴라 시어터>에 나오는 수색대만 같았어도 걱정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만난 연극 <게릴라 시어터>는 정말 실력있는 배우들,

그리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만들어진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서울 연극제 '희곡아 솟아라' 선정작인 연극 <게릴라 시어터>

정말 배우분들 한분 한분에게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