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연 중인 연극 《템페스트》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삼국유사와 결합시켜 재탄생한 작품이다. 본래 유럽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공이었던 프로스페로는 질지왕으로, 나폴리 왕 알론조가 신라 자비왕, 그리고 이 외 인물도 그에 맞게 바뀐다. 그러나 비단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삼국시대로 바꾼 것이 아니라 극 또한 원작을 생각할 수 없도록 재치 있게 바꾸었다. 물론, 그렇다고 원작과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연극을 보고 『템페스트』을 직접 읽어보았고, 연극을 관람했을 때, 이게 정말로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으로 연출한 연극일까라는 의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나 깨달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한국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아름답고 황홀하게 살리면서도 원작이 관객에게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읽고 연극을 보았더라면 극을 더욱 즐겁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연극 《템페스트》는 보통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서양 연극과 다르게 마당놀이와 같다. 실제로 연극이 진행되는 무대는 이렇다 할 무대 장치를 찾을 수 없다. 무대 왼쪽에는 큰 북이, 오른쪽에는 가야금이 있을 뿐이다. 연극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배경이나 소품은 배우가 직접 연기하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연극《템페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질지왕(프로스페로)가 폭풍우를 일으켜 신라로 돌아가는 자비왕(알론조) 일행이 타고 있는 배를 난파시키는 장면이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새하얀 한복을 입은 배우가 새하얀 천을 들고서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무대 왼편에서 질지왕이 북을 치며 폭풍우를 일으키면 무대에 앉아있던 배우가 일어서며 흰 천을 허공으로 높이 던지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흰 천이 높게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그와 함께 폭풍우에 휩쓸려 몸부림을 치는 배우의 움직임은 관객에게 하여금 눈앞에서 거센 파도에 맥없이 흔들리는 배를 상상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숲을 표현하기 위해 동물 역을 맡은 배우가 싸리빗자루를 흔들기도 하고, 탈을 쓰고 사람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존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원작을 살펴보면 프로스페로가 부리는 요정 에어리얼이 등장하는데, 연극 《템페스트》극본을 읽으면 에어리얼을 '제웅'이라고 바꾸었다. 여기서 '제웅'이란 액막이형 제의 도구이자 신체인 짚인형을 말하는 것이다. 연극에서 제웅은 단지 질지왕의 예속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맞춰서 세세하게 바꿨다는 점이 더욱 연극 《템페스트》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앞서 연극 《템페스트》가 마당놀이와 같다고 하였는데,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분위기와 일품이기 때문이다. 연극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악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리숙하고, 사람의 욕망을 꺼내어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 우습기 때문이다. 질지왕의 딸 아지(미랜더)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고 세자(퍼지난드) 또한 올곧다 못해 순박한 사내로 그려진다. 원작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다소 모자란 것 같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지와 세자를 보고 있자면 사람이 본래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주제를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사람은 본래 선한 본성을 품고 있으니 사랑과 용서를 통해 한층 성장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연극 《템페스트》는 희곡 『템페스트』와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바로 질지왕(프로스페로)가 부리는 쌍둥아(캘리번)이 이름 그대로 머리가 둘인 괴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에 연극에서도 쌍둥아(캘리번)의 결말이 다른데, 질지왕이 마법을 부려 머리 둘을 떼어놓고 자유롭게 풀어준다. 원작에서 캘리번이 프로스페로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그의 심복이 된 것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각색이 연극의 주제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연극 《템페스트》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셰익스피어 희곡이 만나서 가장 완벽하게 재탄생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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