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도 우리는 종종 ‘권태로움’을 느낀다. ‘부부’의 관계는 ‘권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예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도 부부가 되면 그 불꽃이 사그라진다. 현실은 서로에 대해 느꼈던 환상과 기대감을 잔인하게 무너뜨린다.

연극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에서 주인공 남궁선과 그의 아내는 서로에게 완전히 지친 모습을 보인다. 남편 남궁선은 회사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빌미로 아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내는 가사 일과 육아의 고충을 남편에게 털어놓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다. 그는 아내의 아픔과 슬픔을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작품에서 아내의 등장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나오는 장면마다 아내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첫 장면에서 남궁선과 대화하는 아내는 우울하고 근심이 가득하다. 남편 남궁선을 쳐다보는 눈빛은 건조하고 삭막하다. 아내가 “내 말이 다 잔소리처럼 들리지?”라고 묻는 물음에는 음성의 높낮이조차 없다. 식탁을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굳건히 자리 잡은 듯싶다.

‘서로 사랑하긴 했을까’ 의심이 가는 두 사람, 이들의 과거는 남궁선의 회상으로 전모가 밝혀진다. 댄스 동호회에서 남궁선은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때의 아내는 첫 장면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아름답고 발랄한 아내는 첫 장면과 같은 사람인가 의심이 갈 정도다.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과 남궁선에 대해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눈빛은 사랑스럽다. 그는 남궁선과 왈츠를 추며 수줍음과 떨림의 감정을 보인다.

첫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아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 고통을 참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에 남궁선은 가슴 깊이 아픔을 느낀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남궁선의 말에 아내는 “당신이 아프면 내가 더 아파 나는 괜찮아”라는 말로 사랑을 전한다. 위기 속에서도 아내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

삶의 무게는 사랑의 기억까지 잃어버리게 한다. 남궁선은 회사 생활에 찌들며 주변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이런 남궁선을 보며 아내는 깊은 실망을 느낀다. “차라리 이럴 거면 혼자 사는 게 낫지”라는 아내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기적인 남궁선은 예수와 저녁을 먹으며 변화를 맞이한다. 그는 인생의 진정한 사랑과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궁선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아내는 기쁨으로 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행복한 왈츠는 전보다 단단해진 사랑으로 살아갈 것임을 보여준다. 이제 아내는 처녀 때처럼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배세민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