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톱밴드' 결승전 무대에 톡식(TOXIC)과 포(POE)가 올라온 것은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공중파 방송에, 그것도 프라임 타임대에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 선율의 팀이 아닌, 개성과 실험으로 무장한 팀이 결승에서 겨룬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시청률을 위한 보편적 관점에서 보면')이었다. 그들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하다하더라도, 프로그램의 구성상, 가장 대중적인 팀 하나 정도는 올라오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실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16강 경연에서부터 보면 적어도 아이씨사이다, WMA 등 가볍고 흥겨운 무대를 이끄는 팀 하나 정도는 '일반 시청자'를 위해 남겨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시청률에 의존하지 않고 독야청청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하면,'톱밴드'가 전적으로 시청률을 위한 치밀한 계산 보다 경연 자체가 지닌 실력의 무게, 그리고 전문가와 시청자의 평가에 모든 걸 맡겼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톱밴드'가 지닌 최고의 미덕은 바로 제작진이 아닌 듣고 보는 이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이다.

◆ 다수의 외면, 소수의 극찬
이 프로그램은 평균 시청률 4∼5%대로 다수의 외면속에 소수의 극찬을 받으며 생명력을 보존했다. 마니아, 음악평론가, PD들로부터 "오디션 프로그램 중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는 극찬 속에 매회마다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 것은 물론, '음악은 아름답지만, 얼마나 또 힘든 일인가'를 늘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아마추어 밴드들에게 프로 라이브 무대를 제공해주고, 콘텐츠를 예능이 아닌 음악적 시각에서 투영하고(예능국이 아닌 교양국에서 제작), 출연자의 진솔한 삶을 동반하고, 심사위원과 코치의 비(非) 권위의식이 잉태한 섞임의 미학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 보컬외에 다른 연주자도 함께 조명
'톱밴드'가 지닌 또다른 미학은 그간 보컬이 음악의 전부라고 여겼던 많은 이들에게 보컬 이외에 다른 연주자의 연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음악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훑게 해줬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밴드가 연주하는 동안 기타는 어떤 음색을 내는지, 드럼의 리듬은 어떻게 쪼개지는지, 키보드는 왜 저렇게 연주하는지 등 보컬을 포함한 연주 전체에 대한 정보와 해석을 동시에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것. '나는 가수다'도 밴드 반주가 있지만, 철저히 보컬에 초점이 맞춰지는 구조와 비교하면 그 차원이 다르다. 록밴드 게이트플라워즈가 '나가수'에 출연하면 데스 메탈 같은 보컬 음색 때문에 바로 '탈락'의 위기에 놓일 수 있겠지만, '톱밴드'에선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다. 이유는 기타의 맛깔나는 연주와 베이스의 안정된 리듬이 보컬 못지않게 조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도 할 수 있다' 동질감 획득
'톱밴드'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 누군가가 열정을 불태우는 자리라는 점에서 잃어버리거나 정체돼 있는 일반인의 삶의 욕구를 자극했다. 인지도 있는 가수들의 경합은 '감상'이상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아마추어 밴드들이 엮는 협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실행'의 욕망을 부추긴다. 영화 '쉘 위 댄스'에서 무기력한 중년 가장이 춤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춤이 다가갈 수 없는 유명인의 댄스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평범한 교습소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톱밴드'는 '저 사람이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정서에 기대 '평범한 교습소'로서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정서적 괴리를 좁히고, 동질감을 획득했다. 드라마는 꿈을 좇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무함을 안겨주지만, '톱밴드'는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누군가의 삶을 통해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 '톱밴드' 실력파 뮤지션 10팀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각양각색의 '톱밴드' 출연팀들은 오는 12월10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알싸한 콘서트를 준비한다. 기존의 밴드들이 보여주지 못한 개성있는 색깔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밴드의 존재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은 무대이기도 하다. 이 무대에 오를 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8강전에 오른 팀을 중심으로 놓쳐서는 안될 밴드 2팀을 함께 묶어 소개한다.

① 게이트플라워즈 : 예심에선 보컬이 비호감이라는 악평까지 들었던 이 팀은 조별 예선과 16강전을 거치면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정통 블루스 기타 연주와 거친 헤비메탈 보컬의 묘한 조합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 코치 신대철로부터 '뼛속가지 록밴드'라는 극찬을 받기도했다. 학생(베이스), 특목고 입시강사(기타), 출판사 편집직원(보컬), 일러스트레이터(드럼)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2009년 문화관광부 선정 이달의 인디밴드, 2011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록(노래)'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됐다.

② 아이씨사이다 : 신나는 펑크(Punk)와 치기 어린 퍼포먼스로 관객을 사로잡은 아이씨사이다는 20대 젊은 혈기와 정확한 연주가 강점인 밴드.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은 고교 동창밴드로 신나는 펑크록을 추구하고 있다. 2009년 파주 파비뇽 밴드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동두천 록페스티벌에서 일반부 금상을 수상했다.

③ POE : 최근 베이스의 탈퇴로 2인조로 재편된 포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다. 피아노와 보컬을 맡은 물렁곈(본명 윤영주)은 학창시절부터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말하는 족족 사람들을 놀라게 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지은 물렁곈도 '물렁물렁 외계인'의 준말. 5세때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그룹 더더의 리더 김영준에게 찾아가 걸레 닦이, 커피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며 음악을 배웠다. 2010년 EBS 이달의 헬로루키에 선정된 것을 비롯 2010 웹진 '가슴'에서 '올해의 앨범 '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④ WMA : 파워풀한 보컬이 매력적인 6인조 고교밴드. 2010년 라이즈업 코리아 청소년 대회 최우수상을 거머쥔 이들은 한 곡에서도 여러 장르의 편곡을 시도할 만큼 아이디어도 뛰어나고, 사운드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비욘세, 듀스, 래리 칼튼, 토토 등 종잡을 수 없는 장르를 모두 시도하면서 8강까지 올랐다. 보컬 손승연은 1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부에서 성녀까지의 목소리를 두루 들려준다. '제2의 윤미래' '한국의 아레사 프랭클린'이라는 극찬도 쏟아졌다.

⑤ 2STAY : 스타일리시한 음악을 추구하는 4인조 모던록 밴드. 심사위원 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은 "보컬리스트가 매우 눈에 띄는 밴드"라며 "내가 음반제작자라면 당장 계약을 하고 싶을 정도로 보컬에 매력이 도드라진다"고 평가한 바 있다. 16강전에서 실력파 고교밴드 엑시즈를 누르고 8강에 안착했다. 결성 11년이 된 관록의 이 밴드는 이상은으로부터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무대"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⑥ 톡식 : 예심때부터 늘 '천재'소리를 들었던 2인조 개러지 밴드. 미국의 화이트 스트라입스(기타+드럼) 같은 구성으로 2인조가 낼 수 있는 사운드의 한계를 커버하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매 경연때마다 선보였다. 김정우(보컬·기타)는 서울대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의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웠고, 김슬옹(드럼)은 중학교때 이미 프로 연주자처럼 연주한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심사위원 유영석은 "감성을 자극하는 뮤지션은 많이 봤는데, 본능을 자극하는 밴드는 처음 봤다"고 극찬했다.

⑦ 제이파워 : '톱밴드' 유일의 연주밴드로 8강까지 오른 숨은 고수다. 김종진·유영석은 "수준 높은 연주로 해외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중원의 고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신나는 록부터 끈적거리는 솔(Soul), 세련된 재즈까지 두루 섭렵하는 이들은 보컬 없는 연주만의 음악으로도 얼마나 듣는 이를 감동시키고 휘어잡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⑧ 라떼라떼 : 백석대 학생들로 이뤄진 11인조 혼성밴드로, 정열의 라틴 음악을 선보여왔다. 16강 조별 예선에서 WMA와 함께 탈락한 뒤 패자부활전을 통해 끈질기게 올라와 서서히 저력을 드러낸 팀이다. 김종서는 16강 경연에서 "연주가 상당히 고난도인데, 프로팀 이상의 유연한 연주를 보여줘 깜짝 놀랐다"는 심사평을 내놓기도 했다.

⑨ 브로큰발렌타인 : 가정 남성적이고 하드하고 완벽한 록 밴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아시안비트 코리아 파이널에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록밴드. 심사위원 대부분이 이들의 원숙한 연주와 강렬한 무대매너에 호평하며 이들을 우승후보로 점쳤지만, 16강에서 톡식에게 간발의 차로 발목을 잡혀 탈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⑩ 엑시즈 : 고등학생 답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무대로 예심때부터 모두의 탄성을 받아온 숨은 고수 중 한 팀. 김종진은 "내 50평생 이런 연주는 처음봤다"며 "음악의 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고 최고의 칭찬을 퍼부었다. 2009년 동두천 록페스티벌 금상, 2010년 창동록페스티벌 대상, 2010 아시안비트 코리안파이널 결선 진출의 화려한 경력이 뒷받침해주듯, 보컬, 연주, 퍼포먼스 등 무대 3박자가 뛰어난 그룹으로 호평받았다. 16강에서 안일하고 특색없는 편곡으로 2STAY에게 8강 진출권을 내줘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