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작 ③_신철환
아내를 도둑맞은 남편 이야기

정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올해로 결혼 15년차, 아내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無MSG를 내건 건강식으로 밥상을 차렸다. 창틀에 먼지 하나 앉을 시간을 주지 않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오는 손님들의 입에서는 어쩜 10년 산 집이 이리도 깨끗하냐는 칭찬을 받았다. 주말에 두 딸 실내화 빠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도록 반갑지 않은 배려를 아끼지 않지만 속옷 정도는 2개의 세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빨래를 했다. 그리고 퇴근하면 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맞이해 주는 그런 전업 주부였다. 그, 그 빌어먹을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 틀려버렸다.
아내는 툭하면 이런 문자를 보낸다.
‘어머. 미안 내가 너무 바삐 나오다 보니까 저녁 준비를 못해 놨네. 그냥 시켜 먹어. 아니면 자기가 제일 맛있어 하는 어머니 집에 가서 먹고 오든가.^^;;’
‘어쩌지? 세탁기에 빨래 돌려놓고 못 널고 나왔네. 부탁해. 자기야~’
진공청소기는 그동안의 과로에서 벗어나 릴렉스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대신 로봇청소기가 다람쥐처럼 쉬지 않고 집안을 훑고 다니게 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초등학생 두 딸은 퇴근하는 아빠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간혹 조퇴도 불사하며 달려온 아빠를 향해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며 울상을 짓는다. 유구무언이다.

나는 그렇게 아내를 도둑맞았다.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다. 도둑맞은 것은 맞지만 현행법상 위법이 아니다. 그 도둑은 우리 집에 한 번도 침입한 적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남편인 내가 아내를 도둑의 손에 덥석 넘긴 꼴이니 남이 알면 팔불출이라 할까 무섭다.
그 도둑은 찾기도 쉽지 않다. 멀게는 왕복 4시간도 넘는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 환승을 반복해야 하고, 아무리 가까이 있을 때라도 왕복 3시간이나 필요하다. 아내의 귀가 시간은 밤 12시는 다반사고 종종 새벽 1시를 넘기기도 한다.
속에서는 열불이 나지만 이 또한 어쩌겠는가? 그저 내 복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않겠나 싶다. 요즘 매 맞고 사는 남편도 흔하고 바람을 피워도 내가 못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사는 남편도 많다는데, 매를 맞는 것도 아니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살고 있다. 내 나이 벌써 마흔 중반, 조강지처 버리면 남는 것은 쓸쓸함과 처량함뿐이지 않겠나?

그럼 이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련다.
때는 2011년 6월, 나는 우연히 손에 쥐게 된 그것을 가지고 온갖 유세를 떨었고, 1등 당첨된 로또라도 되는 양 생색을 냈다. 정작 아내는 취미도 관심도 없다며 시큰둥해 했지만 한사코 등을 떠밀고 말았다. 그것이 아내를 도둑맞는 일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12시가 다 돼서야 돌아온 아내의 얼굴은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흡사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표정이랄까? 그랬다. 분명 아내는 그 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신세계를 접하고, 그 곳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돌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배를 타고 뮤지컬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디딘 아내는 그 후로 한 달에 서너 편의 공연(뮤지컬, 연극, 콘서트 그리고 영화, 전시회)관람은 기본이 되었으니 아내를 도둑맞지 않았다 할 수 없다.
그런 세월이 2년 가까이 흘러 이제 우리 집에 아내를 도둑맞은 남편은 없어졌지만 엄마 아빠를 도둑맞은 두 딸이 생겼다. 夫唱婦隨라더니 우리 집은 婦唱夫隨다.

 
첨부한 사진은 그동안 관람한 티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