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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히고 엇갈리는 남녀의 처절한 방언들, <스피킹 인 텅스>

작성일2015.05.28 조회수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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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불행, 사랑과 미움을 구분하는 것은 얼핏 단순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꺼풀 외피를 벗겨보면 행복으로 보였던 것에 지독한 불안이 스며 있기도, 사랑으로 보였던 것에 타성 혹은 무심, 증오가 배어있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1일 개막해 국내 초연 무대에 오른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이처럼 한없이 모순된, 그래서 때로는 그 자신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불륜을 저지른 여자, 오래 전 떠나버린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남자, 끝없이 타인의 사랑을 의심하는 여자 등 다양한 남녀들의 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사랑 아래 증오가, 또 그 아래 다시 사랑이 쌓인 복잡한 인간 감정의 층위가 드러난다.

호주의 극작가 앤드루 보벨이 쓴 <스피킹 인 텅스>는 1996년 초연 이래 미국, 유럽에서 꾸준히 공연된 인기작으로, <난쟁이들><프라이드>의 김동연 연출과 강필석, 이승준, 김종구, 정문성 등의 참여 아래 국내 관객들을 만났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이 극은 먼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독립돼 있으면서도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서로 맞물리는 정교한 구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인간 심리의 내밀한 곳을 샅샅이 훑고 드러내는 섬세한 시선으로 여운을 남긴다.

극은 레온-제인, 피트-쏘냐가 싸구려 모텔방에서 만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술집에서 처음 상대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기로 결심한 이들은 결정적 순간 망설이고,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이 하룻밤의 사건은 레온-쏘냐, 피트-제인 부부의 결혼생활을 위기로 이끌고, 이들이 위기 속에서 스쳐간 또 다른 남녀들의 이야기가 2, 3막에서 펼쳐진다.

레온-쏘냐, 피트-제인의 관계는 단지 하룻밤의 불륜 때문에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극중 모든 남녀들은 배우자에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고, 그 감정은 ‘방언’을 뜻하는 제목 ‘스피킹 인 텅스’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서로 절묘하게 겹치고 끊어지는 대사들은 “사랑해.”라는 말이 정말로 사랑한다는 뜻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 미묘한 상황을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자체의 미묘함뿐 만이 아니다. 탄탄한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쌓은 중산층 부부 레온-쏘냐가 화해하는 반면 변변한 재산도 아이도 없는 피트-제인의 갈등은 끝내 봉합되지 못하는 모습은 돈과 현실, 편리라는 불순물이 섞여 한층 더 모호해지는 남녀관계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한 작가는 그 예리한 시선을 우리 각자의 속마음으로 돌리며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듯 보인다.

네 명의 배우가 아홉 명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만큼, <스피킹 인 텅스>는 배우들의 연기도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지난 27일 무대에서는 전익령의 연기가 특히 돋보였다. 전익령은 삶에서 자신이 이뤄낸 것들에 대해 긍지를 느끼면서도 깊은 공허감으로 괴로워하는 쏘냐와  불안에 시달리는 발레리를 정확한 발성과 매력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강필석, 김종구, 정운선 등의 무대도 궁금하다. 공연은 오는 7월 19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3층 수현재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수현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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