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극한 감정을 날것으로 체험하는 무대, 문소리·지현준 연극 ‘사랑의 끝’

작성일2019.09.09 조회수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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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처럼 쏟아내는 너의 말들…나는 네 생각 속에 가득한 천박함이 익숙해지지 않아”

십수 년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가, 아이까지 셋을 낳고 함께 길러온 남녀가 헤어짐을 맞이할 때는 그 ‘사랑의 끝’에 어떤 말들과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까? 어쩌면 그곳엔 상상 이상으로 격렬하게 내면을 흔들며 폭발해 나오는 거센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의 폭발과 분화를 날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연극 ‘사랑의 끝’이 지난 7일 막을 올렸다.

연극 ‘사랑의 끝’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Pascal Rambert)가 쓴 작품으로, 2011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후 이듬해 프랑스평론가협회로부터 최우수 프랑스어 신작 연극상을, 프랑스국립극장으로부터 최우수극본상을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약 30개 언어로 번안되어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지난 201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으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한국어 버전으로 처음 펼쳐지는 이번 공연에는 문소리와 지현준이 주역으로 나섰다. 2016년 한국과 프랑스에서 초연된 연극 ‘빛의 제국’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는 당시 함께 했던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Arthur Nauzyciel)을 통해 ‘사랑의 끝’을 알게 됐고, 그의 제안으로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두 배우를 작품에 섭외한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직접 이번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써내려 간 ‘사랑의 끝’은 제목처럼 오랜 사랑의 시간 뒤 ‘끝’을 맞이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의 전반부에선 남자 배우가, 후반부에선 여자 배우가 각기 1시간씩 긴 독백으로 파경 앞에 선 자신의 심경을 절절히 토해내는 독특한 형식의 극이다.
 



문소리와 지현준은 지난 6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각기 20여 분간 극의 일부 장면을 선보였다. 넓게 트인 무대에는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등 사랑의 각기 다른 순간들을 담은 그림만 구석에 놓여있고, 서로 훌쩍 거리를 두고 선 배우는 오롯이 육성으로 넓은 무대를 채우며 강렬한 감정선을 구축해간다. 뒤이은 기자간담회에서 연출가가 말했듯 “신체적인 부분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배우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무대 위 두 남녀가 왜, 어쩌다가 이별을 택하게 됐는지 구체적인 정황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격한 말들을 통해 두 사람이 거쳐온 사랑과 갈등과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남녀는 때로는 거친 욕설과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으며 서로를 공격한다. 별다른 극적 장치에 기대지 않고 긴 시간 대사와 몸짓만으로 격렬한 감정을 분출하는 두 배우를 통해 관객은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없는 극한의 감정을 대리 체험하게 된다.
 



“실제 상황을 겪는 듯한 공연이 될 것”
“‘사랑의 끝’은 제목처럼 헤어짐에 대한 연극이고, 꽤나 독특한 방식으로 헤어짐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헤어짐을 볼 때는 그 전후의 짧은 순간만을 보게 되지만, 이 극에서는 정말 실시간으로 헤어짐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이 정말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는 순간을 보게 되는 거다. 마치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은 이 작품의 독특한 형식에서 나오는 현장성을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헤어짐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냥 끝났어, 갈게’라고 하지 않는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 걸려서 감정을 표현하고, 알맞은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공연에서 그런 과정을 재구축하려 애썼고, 그럼으로써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려고 한다”며 실제로 이별의 순간에 다다른 남녀의 생생한 언어와 감정을 구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또한 “감정이라는 것은 굉장히 신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떤 감정을 겪는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무언가를 겪는다는 것이고, 깊은 내면에서 많은 것을 끌어올리는 경험”이라고 말한 그는 관객들에게 “마음을 열고 실제 상황을 겪으실 준비를 하고 오셔야 할 것 같다. 2시간 동안 굉장히 비일반적이고 놀라운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번 공연이 단지 무대를 지켜보는 것 이상의 강렬한 체험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문소리 “언어 자체에 집중했다…살면서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
배우들도 이 쉽지 않은 극에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 그간 배우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다 ‘빛의 제국’ 이후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게 된 문소리는 “나중에 이 시간을 돌아봐도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은 의미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간의 연습 과정을 돌아보며 “가장 집중한 것은 언어였다. 말이 곧 인물의 생각이고 과정이고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언어의) 과정을 겪다 보면 감정은 그냥 따라오더라”는 문소리는 “한 단어 한 단어가 프랑스 사람들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쓰는 단어인지를 연출이 다 설명해줬고, 우리는 거기 적확한 한국어 단어와 표현들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모두가 다 같이 만들어낸 말들이기 때문에 대사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다 박혀 있다”며 이번 작품에 각별한 노력과 애정을 쏟았음을 드러냈다.


이어 “연습을 하면서 대체 말이라는 게 뭔지, 생각이 먼저인지 말이 먼저인지, 감정이 먼저인지 말이 먼저인지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리고 극중 남자가 연출가이고 여자가 배우라서 연극 작업과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작품에 많이 녹아져 있다. 연기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무 살 때의 심정으로 다시 배우는 기분”이라고 말한 문소리는 “오늘 보신 장면은 시작에 불과하고, 나중엔 정말 (감정이) 폭발해서 산산조각난다. 인생을 살며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라 표현하기 어렵다”는 말로 본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문소리와 호흡을 맞추는 지현준 역시 각별한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연에 대해 “맨 몸으로 전쟁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맨 몸에서 쏟아지는 말을 생생히 내뱉는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랑의 끝’은 연극(의 정통 형식)에 가장 가까운 작품인 것 같다”고 말한 그는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사랑에 대해 좀 겪으신 40대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이다. 만약 20대 분들이 보시면 굉장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연극 ‘사랑의 끝’은 오는 27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우란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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