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내 경험 담은 진실한 러브스토리” 이지나 연출

작성일2019.09.25 조회수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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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개막한 신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일견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극이다. 한 천재 예술가가 극도의 혼란과 광기로 치닫는 모습을 그린 이 극은 그 과정의 상당부분을 안무, 음악, 조명, 비디오아트 등의 비언어적 요소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곡가 정재일, 현대무용가 김보라, 아트디렉터 여신동 등 내로라하는 창작진이 모여 만든 이 극은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풍성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관객은 한 섬세한 예술가의 내면을, 또 그 자장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예술을 탐구해가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다채로운 감각으로 체험하게 되며, 이는 여느 공연에서 쉽게 가질 수 없는 희소한 기회다.

이 공연의 수장은 그간 ‘광화문연가’,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유수의 인기작을 이끌어온 이지나 연출이다. 그녀는 많은 작품을 흥행 가도에 올린 스타 연출가이지만, 동시에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 ‘더 데빌’ 등을 통해 흑백의 간결한 무대, 고전의 현대화 등 과감한 시도를 거듭해온 창작자이기도 하다. 지난 23일, 인터뷰에 응한 이지나 연출의 이야기에서는 흥행에 대한 부담과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한 창작자의 단단한 뚝심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Q 원작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쓴 오스카 와일드의 팬이시죠. 어떤 점 때문에 그에게 끌리셨나요.
영국 유학 시절에 ‘오스카’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 전에도 오스카 와일드를 알고 있었지만, 그 영화를 보고 영국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빠져들었죠. 일단 그의 지적인 표현, 그리고 직설적인 표현들을 좋아해요. 내가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을 굉장히 많이 해요(웃음). 예를 들어 “아름다움은 천재성의 한 형태지” 같은 말이요.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세상이 어느 때인데 그런 말을 하냐고 욕하겠죠. 그런데 오스카는 그런 것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Q 2016년에는 같은 원작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로 공연하셨는데, 이번 총체극은 어떤 계기로 구상하시게 됐나요. 당시 좀 부족하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었나요?
그건 아니에요. 그 뮤지컬을 하면서 이번 공연을 구상했어요. 어쨌든 지금 뮤지컬의 큰 트렌드는 시대극이잖아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도 그랬고요. 근데 내가 보면 볼수록 이건 컨템포러리로 가면 더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 공연계에는 컨템포러리가 너무 없어요. 시대극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컨템포러리가 좋아요. 근데 그동안 뮤지컬을 하면서 할 수 있는 현대극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데빌’ 초연도 (현대극으로) 했던 거죠.
 



Q 원작 도리안이 이번 총체극에서는 양극성장애를 갖고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 제이드로 재탄생했습니다. 왜 양극성장애라는 설정을 하셨나요.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니 이 사람은 양극성장애라는 게 너무나 분명했어요. 그 시대에는 그냥 정신적인 질환이 있다, 혹은 악행을 한다고 바라봤겠지만, 제가 볼 땐 명백히 양극성장애였어요.

저는 꼭 한 번 양극성장애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건 내 얘기거든요. 주위에 그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중증 양극성장애를 가진 친구 두 명을 40년간 지켜봤어요. 극중 (제이드의) 대사는 실제로 그 사람들이 했던 말이고, “완치는 없습니다”라는 대사도 제가 실제로 대여섯 명의 의사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에요.

그리고 그 경험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 맞닿아 있었던 지점이, 그 친구 두 사람이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아티스트형 인간이죠. 그 중 한 명은 지금 식물인간으로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어요. 그 친구는 아름다움의 신봉자였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있던 친구에요. 미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향락적인 생활을 즐겼지만, 자기 얼굴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마약은 손도 대지 않았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부모의 의지로 지금 그렇게 (식물인간으로) 살아 있어요. 과연 그 친구가 정신이 깨어 있으면 그런 상태로 살아있기를 바랄까, 그게 저의 큰 화두였어요.

또 한 명은 양극성장애를 가진 파트너 때문에 너무나 큰 고통을 겪어서 외상후증후군이 왔어요. 그걸 (극중) 유진이 표현하고 있는 거에요. 양극성장애를 가진 친구도 본질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인데, 그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외상후증후군이 와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공연 사진

그러니 이 공연 속 이야기는 제게 너무나 실화에요. 워낙 여러 가지 일이 내게 벌어졌고, 이제 나이가 드니까 내가 겪은 일들을 쉬쉬하지 않고 좀 표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에요. 나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남의 대본을 받아서 연출만 하는 거라면 모르지만, 이건 내가 창작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야기를 꾸미고 만들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창작자는 못 돼요. 내가 직접 경험하고 아는 이야기를 무대에서 풀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내 얘기를 진실성 있게 하고 싶었어요.

이 공연은 예술가에 대한 담론은 아니에요. 그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이고, 본질은 양극성장애까지 이겨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유진의 사랑, 제이드의 사랑, 오스카의 사랑, 그리고 시빌의 사랑 이야기죠. 유진이 “그를 처음 봤을 때 내 본질, 영혼, 모든 것들이 빨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라고 하잖아요. 옛날에 어른들이 사랑에 빠지는 걸 두고 ‘살 맞았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이유 없는 사랑, 맹목적인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Q 그 이야기를 ‘총체극’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의 관계를 말로만 푸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로 풀고 싶었어요. 그들의 육체, 동작, 표정, 조명으로. 그러면 서사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저는 무용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조명과 분위기를 사랑하거든요. 인간의 육체를 사랑하고요. 말로만 사랑 이야기를 할 거면 드라마에서 하면 되잖아요. 무대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공연이 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서사를 말로 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그냥 영화를 보는 게 낫죠. 요즘 컴퓨터 그래픽도 얼마나 발전했는데. 그러면  (공연이) 도태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공연이 가진 현장성도 공연만의 경쟁력이지만, 저는 공연이 미학적으로도, 미장센에 있어서도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경쟁력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총체극을 한 거에요.
 



Q 실제 보고 겪은 지인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이드와 유진을 그려냈다고 하셨는데, 오스카라는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오스카는 사람들이 보는 제 모습이기도 해요. 저는 제이드처럼 아름답게 태어나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었지만, 실제 사람들은 나를 오스카라고 생각하죠(웃음). 그런데 그건 일할 때의 제 모습이고, 실제 사생활에서 저는 베질(유진)이에요. 주위 사람들에게 굉장히 헌신적이고 책임감이 강해요. 하다못해 강아지를 포함해 내가 책임감을 진 사람과 생명체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요.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오스카인 게 좋아요. 왜냐면 그 사람들(배우, 스텝)과 나는 명예와 직업, 기브 앤 테이크의 사이로 만난 사이니까요. 일할 때 서로 인간적인 정으로 끌리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 작품이 끝나면 헤어지잖아요. 그러니 당장은 그 사람을 다그치더라도 이 작품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서도 나는 오스카가 매력 있어요.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제이드의 병을 방치하는 건 나쁘지만, 오스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제이드를 사랑하는 거에요. 제이드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영광을 주고 싶어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아티스트들 중에 그걸 더 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사실 제이드는 오스카를 만나기 전 이미 양극성장애를 갖고 있었어요. 오스카를 만나기 전 2장에서 갑자기 잠적해서 연락이 안 되는 장면이 있잖아요. 오스카 때문에 발병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양극성장애는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유전적 질환이에요. 사람들은 이걸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냥 ‘뇌’의 문제에요.
 



Q 캐스팅도 기대를 모았던 부분이고, 실제로 각 배우 분들의 느낌이 각기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연습 과정도 궁금하고요.
몇 장면에서 배우들한테 자유를 줬어요. 잔느와 유진이 사진 찍는 장면, 유진과 제이드가 사진 찍는 장면 등에서 ‘여기서 여러분이 표현해야 될 것은 이것이니 자유롭게 애드립을 만들어보세요’라고 했죠. 그 애드립 구간에서 (각 배우의) 캐릭터가 나와요.

자람이는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유진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해 못 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길래 ‘아름다움보다 더 큰 이유가 있냐’고 했죠(웃음). 그래서 자람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책임지고 끝까지 하는 사랑을 보여줘요. 성민이도 은근히 굉장히 열정적인 배우인데, 논리적으로는 왜 (유진이)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근데 이걸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배우가 연준석이에요(웃음).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나이가 들수록 사랑을 할 때 더 많은 생각과 이성이 개입하게 되잖아요. 영수는 우리 팀에서 가장 보수적인 배우라서, 제이드가 정신병으로 인해 하는 행동들을 용서하지 못 했어요. 근데 지금 어마무시한 자기 최면으로 사랑을 하고 있죠(웃음). 각자 나이에 따라, 성격에 따라 (표현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연습하면서 배우들에게 제가 생생히 목도했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다 들려줬어요. 배우들도 굉장히 놀랐죠. 김주원, 문유강 씨는 양극성장애에 대한 온갖 자료와 영상을 다 공부해서 준비를 한 거에요. 주원 씨는 워낙 프로페셔널한 사람이고, 가장 모범생에 연습벌레에요. 공부를 정말 많이 해서 (양극성장애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죠. 주원 씨가 차분하게 못된 (제이드를) 표현한다면, 유강이는 좀 더 과격하고 천재성이 있는 제이드를 표현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대사가 많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더니 요즘은 묘한 표정, 시선 처리를 알아서 매일매일 디테일이 발전하고 있어요.
 



Q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 소개하는 것은 큰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작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로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오죠, 가오(웃음). 제가 나이 57살에 맨날 남이 좋아하는 것만 만들면 뭐해요. 전 호불호 반응도 좋아해요. 어떻게 내 작품을 다 좋아할 수가 있겠어요. 이 나이까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면 안 되죠.

이런 작업은 실질적으로 돈이 안 돼요. 지금처럼 스타일이 굉장히 확고해진 대학로 소극장에 이런 공연을 들고 와서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에요. 근데 나는 이런 작품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관객들이 해낼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야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또 이런 작업에 뛰어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라이선스가 아닌 창작 공연을 할 때는 항상 이런 시도를 해요. ‘바람의 나라’, ‘잃어버린 얼굴 1895’, ‘더 데빌’도 같은 결의 작품이었죠. 이렇게 이상하고 독특한 작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나라에 천만 영화가 나오는 게 싫어요. 5천만 인구 중에 천 만 명이 보는 영화가 있다는 것이 섬뜩해요. 그런 문화의 쏠림 현상이 싫어요. 그리고 내 작품에 손가락질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요. 그래야 새로운 시도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거지요. 그러면서 문화의 격이 올라가는 것이고요. 그냥 다 좋고 편안해 하는 것을 내 나이에 할 수는 없어요. 책임감이죠. 요즘은 욕을 먹으면 내가 작가가 되어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요. ‘저거 딱 이지나 같아’라고 하면 ‘내가 내 색깔을 가진 작가가 되어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죠.
 



Q 연출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소공동 같은 곳에서 회사원들이 넥타이 풀고 소주 한 잔 하는 모습을 보면 사회는 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베짱이인 것만 같을 때가 있어요(웃음). 근데 우리도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문화와 예술이 없으면 삶이 얼마나 빡빡해지겠어요. 나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고, 나의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고 싶어요. 또 저는 청각적, 시각적 아름다움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작품에 그런 부분을 많이 담으려고 하고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기를, 또 그것이 그 사람의 세포 속에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경험이 되기를 바래요. 그것이 하나하나 쌓이면 그 사람은 결국 취향이 바뀌거든요. 처음부터 피카소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없어요. 저는 어렸을 때 피카소 그림 보고 무섭고 싫어서 울었어요. 우린 어렸을 때 정물화, 풍경화 같은 사실화부터 보면서 나중에는 추상화도 즐기게 되잖아요. 제 공연은 그림으로 말하자면 ‘합리적 추상화’에요. 사실은 더 추상화로 가고 싶은데, 너무 그 쪽으로 가면 스토리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큰 뼈대의 서사는 갖추는 선에서 표현하는 거죠.

제가 만든 작품이 불쾌하든 짜증이 나든,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낫띵(nothing)’이 아닌 것, 흔한 커피 믹스가 아닌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호식품도 마찬가지잖아요.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처음엔 낯설 수도 있지만,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맛과 향으로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잖아요. 예술이라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줘야 돼요. 앞으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것을 더 많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불편함을 이겨내며 장르가 점점 넓어질수록 문화선진국이 되는 거잖아요.
 



Q 2001년 연출가로 데뷔하셨는데,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감회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한국 공연계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시나요?
확실히 상업화됐어요. 모든 것은 돈이 목표가 됐죠. 근데 안 바뀔 거에요. 한국 남자들 공연 안 보는 건. 그렇게 공연을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 1년에 한번 놀이공원에 가는 대신 이벤트성으로 공연을 보죠. 그리고 그런 관객에 맞게 돈을 아주 많이 들여서 만드는 대극장 뮤지컬이 늘어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대극장에서 밀려난 거에요. 요즘의 대극장 뮤지컬은 내가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트렌드를 못 쫓아가서 도태된 거에요.

Q 최근까지 ‘광화문연가’를 하셨잖아요.
대극장에서 하길 원하는 레플리카 공연은 못 한다는 거죠. 그리고 어찌 됐건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눈이 떨어진 건 맞아요. 근데 사실은 트렌드를 읽는 눈이 떨어진 게 아니라 그게 내 취향이 아닌 거죠. 내 취향이 트렌드가 아닌 시절에 연출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내 취향대로 하고 싶어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하고 있는 거에요. 고집이 센 거죠.

그렇지만 제게는 제가 하는 예술이 나에 대한 채찍질이기 때문에, 공연이 올라가면 쏟아지는 이 불호와 여러 반응 자체가 없어지면 아마 굉장히 서운해질 것 같아요. 내가 57살에 아직도 욕을 먹을 수 있다는 데서 젊다는 느낌을 받아요.
 



Q 나중에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누가 기억해요. 아무도 기억 안 돼요(웃음). 저는 제가 천재적인 사람이 아닌 걸 알아요. 그래서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말도 싫어해요. 저는 멋진 프로듀서를 만나 개성 있는 작품을 쪽박 안 차고 계속 만들어내는 연출가, 공연계에서 그래도 가장 자기 색깔을 이어나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두 손을 모두 놓지 않는.
 

자람이가 저한테 ‘세상에서 가장 마이너 취향을 가진 메이저 연출’이라고 했어요. 이렇게 취향이 마이너인데 계속 메이저의 자리를 잡고 가는게 참 신기하다고.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소위 ‘예술병’에 걸려 아무도 보지 않는 작품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내 작품이 아무한테도 언급되지 않고, 돈을 못 벌고, 그러면 그 때 저는 은퇴하는 거죠.


Q 앞으로 하고 싶으신 작업에는 어떤 게 있나요.  
예전에 했던 뮤지컬 ‘곤 투모로우’를 ‘삼일천하’로 이름을 바꿔서 다시 하고 싶어요. 공연 당시 여러 가지 문제가 좀 있었는데, 제가 애정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음악도 좋아서 꼭 잘 살려내고 싶어요. 그렇게 선 굵은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꼭 한 번 더 공연하고 싶어요. 한다고 하면 우리 멤버들은 다 모일 것 같아요. 다들 이 작품을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하거든요.


Q 마지막으로 이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만나고 있는, 또 앞으로 만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건 러브스토리에요. 제가 멜로적인 감성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너무 극적인 사람들 속에 살아서 (평범한) 러브스토리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요. 근데 이번 이야기는 제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러브스토리이고, 백퍼센트 실화이기도 해요.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알고 즐겨 주시면 좋겠어요. 인간이 서로 다 다르듯 사랑도 다 다르거든요. 물론 이런 사랑이 흔하지는 않지만, 실제 러브스토리에요. 그리고 이 작품의 중심엔 유진이 있어요. 본인이 유진이라고 생각하고 과연 이런 사랑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 공연이 확실히 러브스토리라는 것을 아실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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