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프라이드’ 김경수 "공기 중에 일렁이는 작품의 여운 오래갈 것 같아"

작성일2019.07.09 조회수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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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연 이래 올해도 네 번째 시즌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연극 ‘프라이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180분이라는 러닝타임, 만 17세 이상이라는 관람가, 동성애 소재라는 진입 장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모든 것이 억압되어 있었던 1958년도와 현재 장면이 교차로 진행되며 펼쳐지는 ‘프라이드’는 주인공들이 처한 시대에 따라 같은 영혼을 가지고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작품의 촘촘한 전개와 함께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NEW 캐스트로 채워진 이번 시즌에 필립 역으로 김경수가 김주헌과 함께 캐스팅됐다. 그동안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했던 김경수가 이번에는 ‘프라이드’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작품의 중반에 접어든 지금, 김경수는 어떤 생각을 하며 필립을 연기하고 있을까? 공연장과 연습실, 집이라는 늘 해왔던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김경수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며 ‘프라이드’에 대한 깊고 진한 애정을 전했다.

 
Q ‘프라이드’가 경수 씨의 첫 라이선스 연극이라고 들었어요.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7년 ‘프라이드’ 세 번째 시즌 때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성두섭, 임강희 배우의 공연을 보러 갔어요. 전부터 워낙 작품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었고요. 공연을 보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프라이드’의 대사에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의 첫 등장부터 대사를 주고받는 양식 자체가 뭔가 모르게 신선했어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작품의 대사처럼 무언가가 공기 중에 일렁이는 느낌을 느꼈거든요. 사실 이전에도 ‘프라이드’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지만 잘 성사되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그때 ‘프라이드’를 봤기 때문에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처음 대본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공연을 보고 난 다음에 이 년 정도 후에 대본을 본 건데요. 사실 대본을 건네받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공연의 기억은 소멸돼서 없었는데 대본을 보다 보니까 처음 공연을 봤던 기억이 소환되더라고요. 오히려 대본을 읽으니까 그때 배우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이런 분위기를 풍겼지’ 하면서 좀 더 수월하게 작품과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본이 정말 완벽해요. 각 캐릭터의 대사에 모든 캐릭터가 정리가 되어 있어요. 저는 예전에 공연을 봤을 때 순간 오해할 뻔했던 게 1막 1장 초반에 정말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줄 알고 속아 넘어갈 뻔했었거든요. 막상 대본을 다 보니 오히려 정반대였고요. 필립이 굉장히 아픈 사람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극 중에 ‘영혼이 길을 잃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양쪽의 필립 모두 영혼이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08년이 교차로 진행돼요. 다른 시대에 처한 같은 영혼의 필립을 연기함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두려고 했나요?
1958년의 필립은 대본 자체가 딱딱해요.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했군, -했지 같은 문어체적인 표현들이 많아요. 저는 대본대로 하고 있어요. 연출님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올드한 느낌이면 좋겠다. 그래서 2008년도와 명백한 차이를 두면 좋겠다”라고 디렉션을 주셔서 대사 톤 자체가 옛날 외화의 성우가 생각나도록 연기하고 있어요. 말투 때문에 연기하는 저도 어색할 때가 많은데 관객 입장에서도 이 부분이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캐주얼하게 표현도 해봤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필립의 결과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똑같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질은 대본대로의 텍스트 표현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반면에 2008년의 필립은 자유가 있는 것 같아요. 1958년의 필립의 대사와는 다르게 끝말 처리도 더 편해요. 저는 이 작품의 대본이 너무 좋거든요. 이 대본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거의 있는 그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2008년은 그 순간순간 드는 감정들이나 대본 외의 표현들을 때로는 입 밖으로 꺼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올리버가 저로 하여금 애드리브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2막 5장에서 서로 퍼레이드를 바라볼 때 어떤 날은 올리버들이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면서도 당장 퍼레이드 속 저 남자들한테 달려갈 것만 같은 때가 있어요. 그때는 올리버가 너무 미워서 대본 그대로 못 할 때가 있어요. 올리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올리버의 사랑스러움으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이때만큼은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이런 부분도 필립의 성격 같아요. 1958년의 필립은 갑갑하고 뭔가에 갇혀 있고 스스로를 사회의 시선에 가두고 조심스러워 하는데요. 2008년은 자유롭거든요. 이게 각 시대의 필립을 연기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이런 상황이 만드는 애드리브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면 좋은데 실패할 때도 있어요. 작품에 해가 되지 않게 적절한 지점을 잘 찾아야 할 것 같아요.
 



Q 함께 연기하는 각 올리버와 실비아는 어떤 느낌인가요?
올리버들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에요. 현욱 올리버는 냉한 공기가 흐르고요. 정혁 올리버는 반면에 뜨거운 공기가 있어요. 두 사람 모두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데 겉으로 보이기에는 차가운 면이나 뜨거운 면이 좀 더 부각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표현을 할 때 좀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현욱이는 평소에 건조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1막 2장에서 올리버가 가운을 입고 나오는 모습이 상상 잘 안됐어요. 연습실에서도 자기는 올리버와 너무 안 맞는 것 같다고 힘들어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정말 올리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정혁이는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올리버와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가 올리버로서 표현이 좀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요. 둘 다 제가 이번 공연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친구들인데 이런 역할 관계를 통해서 가까워져서 다행이에요. 필립과 올리버는 무대 밖에서도 서로 멀어지면 연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지윤이는 저랑 동갑이고, 2008년의 실비아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모습일 것만 같은 평소에도 정말 재미있는 친구예요. 제가 워낙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 활기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요. 지윤이랑 연기할 때는 늘 즐거운 것 같아요. 정원이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항상 매사에 바르다는 느낌이에요. 뭔가 대화를 할 때 정화된 나를 발견하게 돼요. 연극을 많이 해서 그런지 특히 목소리가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정원 실비아가 2막 5장에서 “괜찮아요”라고 하면 음성 자체가 편하고 좋아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져와요. 올리버든, 실비아든 저와 주헌 형의 필립도 너무나도 다른 배우들이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참 신기해요. '어떻게 한 인물을 연기하는 우리가 이렇게 다른 존재일 수 있지’라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모두들 제 눈에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배우들이에요.
 



Q ‘프라이드’에는 놓칠 수 없는 장면과 대사들이 참 많은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2막 5장의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결국 하게 됐을 때부터 그리고 올리버와 손을 잡고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바라보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실비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순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은 인터뷰니까 말을 어떻게든 많이 하고 있지만 제가 평소에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대사가 많은 역할보다는 리액션을 많이 하는 역할을 더 좋아해요. (웃음) 아까 이야기한 장면에서 올리버가 “목소리가 들린다”라고 하는데요. 2008년의 필립도 1958년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실비아의 어떤 속삭임이 들리면서 2막 5장의 마지막 신이 이어지는데요. 그 장면은 웃음이 지어지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 장면이에요. 관객 분들도 그럴 텐데 특히 배우들이 더 그런 것 같아요.

이 장면 때문에 많이 ‘프라이드’가 그리울 것 같아요. 사실은 ‘왜 이 좋은 작품을 이제서야 하게 됐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더 늦지 않게 이번에 참여하게 돼서 좋은 분들도 만나게 되고 관객들의 사랑도 받고 있어서 참 행복해요. 작품의 여운이 오래갈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이제 중반쯤 됐는데 제가 꼭 마지막 공연을 앞둔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네요. 그만큼 이 작품이 정말 좋거든요.
 
Q 네 번째 시즌의 작품인 만큼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연습한대로 공연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들 때는 어떻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편인가요?
모든 공연이 완벽하면 좋겠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도 공연이 만족스럽지 못한 날도 생기죠. 그런 날은 집에 가서도 엄청 괴롭거든요. 어떤 날은 저는 불만족스러운데, 관객들이 공연이 너무 좋았다고 하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들 때가 있어요. 요즘에는 관객들의 후기를 잘 찾아보지는 않는데요. 예전에는 보면 오늘 정말 공연이 좋았는데 후기를 보면 ‘정말 최악이다. 목 관리는 안 하냐’ 같은 댓글이 달릴 때가 있어요. 난 오늘따라 목 상태도 좋았는데… 그래서 연습 끝나고 공연이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고민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는 연출님이 해주셨던 말을 써놓은 연습 노트를 보며 체크를 해요. 오늘 좋았거나 안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 연결고리가 있는지 대입해보고 뭔가 무대에서 새로운 걸 발견했다면 그것에 대해 써놓기도 하고요.

네 번째 시즌이다 보니 기존에 해왔던 틀을 지켜야 하는 것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부분들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연습 초반보다는 생각도 많이 쌓이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대사지만 그 대사의 전사나 스토리들이 풍성해지고 제 몸에 흡수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요. 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고 있잖아요. 항상 필립에 대해,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든요. 
 



Q 1958년의 필립이 올리버를 만난 건 필립의 인생에서 아마 가장 강렬한 사건일 것 같아요. 경수씨도 배우 생활 중 혹은 삶 속에 이런 사건이 있나요?
공연 일을 하게 된 것. 그게 제 삶의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것 같아요. 원래 저는 음악이 하고 싶었어요. 음악이 정말 좋아서 취미로 하던 시절이었는데 대학가요제에 우연히 나가서 상을 받게 됐어요. 그걸 통해서 가수를 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 생겼는데 그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그때의 저는 음악은 취미로 할 생각인데, ‘왜 나보고 일을 하라고 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기회들을 제 발로 차버렸어요. 군대 가야 한다고 다 거절하고 입대를 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 음악이 저에게 계속 길을 열어주더라고요. 군대를 가면 고참들이 신입 병사한테 "뭐 할 줄 아는 거 있냐"고 많이 시키거든요. 제가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할 줄 아니까 병장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그렇게 노래를 계속 하다 보니 계속 음악이 생각나고 결국에는 원래 고향인 부산에서 다니던 토목과를 자퇴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너에게 딱이야”라고 할만큼 전형적인 공대생이었고, 집안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엔 보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서울에 올라와서 실용음악과에 다시 들어갔어요.

Q 뮤지컬 안에 음악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지만 가수와는 다른 선택이잖아요.
서울에 와서 뮤지컬 수업이 있었어요. 어느 날 뮤지컬 단체관람을 갔어요. 말을 하다가 노래를 하는 게 그때 너무 신기했어요. 뮤지컬이란 양식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공연 문화도 신기했고요. 처음에는 그런 게 웃겨서 저 혼자 웃었어요. 그렇게 공연을 보고 웃고선 집에 가서는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어릴 때 가수를 하고 싶었던 마음과 그 이후로 제가 보내온 삶을 되짚어 보니까 껍데기밖에 없더라고요.

왜 껍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냐면 전 노래 부르는 외적인 모습을 그저 따라만 했더라고요. 그 노래의 감성을 이해하고 불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저 가사, 멜로디 외워서 나름의 방식으로 집어넣어 표현하는 것의 반복이었어요. 그나마 한국어 가사면 다행인데 팝은 무슨 노래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불렀어요. 그냥 원곡 가수를 따라 하기만 한 거죠. 그때가 뮤지컬을 처음 보는 시점이었는데 무대 위 배우들은 모든 가사에 의미를 정확하게 부여해서 거기에 맞는 행동과 노래를 하더라고요. 공연을 보다보니 배우들의 감정이 저에게도 전달이 됐어요. 웃음은 잠시였고요. 나는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도 그렇게 생각 못했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뮤지컬 무대가 더더욱 매력 있다고 느낀 것 같아요.
 



Q 십여 년 동안 참여한 작품 중 특별하게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예술가를 좋아해요. 그래서 ‘빈센트 반 고흐’에서 고흐를 연기할 때 참 행복했어요. 제가 어릴 때 잠깐 그림을 그리려고 했거든요. 만화도 많이 그리고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오랜 전 기억이고 그때랑 거리가 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예전의 제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직전까지 미친 듯이 그림에 열중했던 사람이에요. 그만큼 그림을 좋아하고 동경한 거죠. 대단한 것 같아요. 자기 뜻이 확실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더라도 ‘분명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나만의 길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Q 바쁜 와중에서도 잠시 시간이 나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집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와이프랑 야식 먹으면서 미드나 영드 보는 시간을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시간이 저의 묵었던 스트레스나 지쳤던 마음을 다 치료해주는 시간이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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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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