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 만에 국내 무대 복귀하는 김지현 "뮤지컬 ‘호프’를 통해 소중한 일상 함께 느꼈으면"

작성일2020.11.11 조회수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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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연해 관객들의 사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호프’가 오는 11월 19일 돌아온다. ‘호프’는 원고가 곧 자신이라며, 평생 원고를 지켜온 스스로에게 원고의 소유권이 있음을 주장하는 78세 에바 호프의 이야기로 시작해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호프의 삶을 풀어나가는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 재연 무대에는 초연부터 함께해온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띈다. 바로 오랫동안 일본에서 활동 해온 배우 김지현이 새로운 호프로 낙점된 것. 김지현은 검증된 실력과 관록을 자랑하는 배우로 아시아 최대 규모인 일본 ‘극단 [四季](사계) 한국인 최초 수석 배우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2012년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이후 8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다.

8년 만에 국내 복귀 무대

지난 6일 막바지 연습 중인 김지현이 인터뷰를 위해 성큼성큼 카페로 들어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자연스러운 포즈로 사진 촬영을 끝낸 김지현은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 워치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긴 오래된 습관인데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파악하고 실수가 없었는지 확인하려고 해요. 다시 들어보고 체크하죠."

오랜 기간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녀가 8년 만에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넥스트 투 노멀’을 2012년에 끝내고 다시 일본에 돌아갔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서는 한국 무대인데요. 알앤디웍스 오훈식 대표님과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대표님이 항상 좋은 일 있으면 같이 해 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연을 맺고 있다가 작년 8월쯤에 ‘호프’ 출연 제안을 주셨어요. 항상 한국 무대를 그리워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게 돼서 정말 기뻤어요. 이번 무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와서 자가 격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본을 보면서 ‘호프’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에바 호프에게 공감되는 점 많아
호프의 감정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어


첫 공연 앞두고 떨릴 만큼의 여유도 없다는 김지현은 “지난주에 처음으로 런쓰루를 돌았는데 묘한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라며 개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김지현이 연기하게 될 에바 호프는 78세의 노파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동네 미친년”이라고 불리는 캐릭터이다.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만났지만 노파 역은 처음이에요. 본격적으로 대본을 보기 시작하면서 ‘이 노파의 캐릭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단지 에바 호프를 단순하게 기가 세고 독설이 심한 노파로 표현하는 건 너무 그녀의 상처와 아픔을 너무 평범하게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을 봐도 대본 속 비슷한 인물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느 날 연습 중에 오루피나 연출이 그녀에게 해준 말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오 연출이 “선배님은 나이 들어도 허리 구부러진 노파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선배님이 가지고 있는 강인함. 그것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라고 말했다고.
 
김지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띵하고 울렸다. 그동안 제 자신이 볼 수 없었던 걸 찾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답답했던 것들이 좀 정리가 됐어요.”

김지현은 과거의 기억 속에 자신을 묶어둔 채 살아가는 에바 호프에 공감이 많이 됐다고. “에바 호프가 극중 절대 원고를 버리지 못하잖아요. 고집이라면 고집인데, 그런 고집이 저에게도 있어요. 연습하면서 ‘버려야 될 것은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돼요. 또 좋아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고요."
 



뮤지컬 '호프'를 통해
소중한 일상 느꼈으면


뮤지컬 ‘호프’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호프와 K역 외의 배우들은 1인 2역을 연기한다.

“현재는 재판장이지만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관객들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장면에서 호프가 변호사에게 하는 대사를 쳐요. 그 장면에서 있을 수 있을법한 대사로 흘러가는데 호프의 감정 자체는 과거 호프의 연인이었던 카델에게 마음을 담아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를 담아서 더 명확하게 호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저는 작품을 분석해서 보는 편인데, 이 장면이 어디서부터 온 거고 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런 친절함이 관객들에게 혹여나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에 표현의 수위는 조절하려 한다고.

김지현은 ‘호프’ 대본에서 ‘일상’이란 단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극 중 호프 곁을 항상 함께하는 K가 호프에게 네 일상을 포기하지 마라고 하는데, 저는 ‘일상’이란 단어를 일본에 있으면서 많이 사용해보지 않았거든요. ‘호프’ 대본만이 아니고 한국에 오니까 주변에서 일상이란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게 되게 생소한 경험이었고, 한국말이지만 낯선 이국의 말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단어가 저에게 흡수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어요."

"요즘 우리도 일상의 소중함을 코로나로 인해 알게 됐잖아요. ‘일상이란 표현이 많이 필요한 말이구나’, ‘지금의 이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뒤늦게 깨닫게 됐죠. 그러면서 저도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저나 관객들도 호프처럼 각자 살아온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도 있고, 상처도 있잖아요. 그렇게 각자 만들어온 일상을 뮤지컬 ‘호프’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번에 연습하면서 배우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김지현은 "매 순간이 행복했어요. 캐릭터의 감정을 오롯이 한국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극단 사계는 엄청 엄했거든요. 감정이 조금만 들어가도 그건 한국식이라고 꼭 집어 말했어요. ‘감정을 넣지 말고, 제대로 된 대사만 치고, 너는 이 캐릭터만 연기하면 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계를 나오게 된 후에도 계속 일본에서 활동하다 보니 일본어로만 연기하고 노래해서, 이번에 한국말로 된 대사와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 그 어느 것도 비교할 수없이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타이틀로 국내 복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김지현은 극단 사계를 나오게 된 후에도 여전히 일본에 남았다.

“10년 넘게 극단 사계에 있으면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하고, 한국 후배들도 양성했어요. 사계 나와서도 다른 곳에서 뮤지컬을 했죠. 일본에는 사계 같은 극단이 많거든요. 그리고 ‘가스펠 콰이어’ 라는 가스펠 팀을 만들었어요. 가스펠을 가르치면서 1년 한 번씩 콘서트도 열고요.”

그녀는 사계를 그만둔 후, 한국에 언제든지 올 마음이 있었다고. 그러나 고마운 사람들을 두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관객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힘든 일도 있었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좋은 만남들이 저에게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바로 작별을 고하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보답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음의 위안이 되는 가스펠을 전하면 어떨까 싶었고, 지금까지 가스펠 콰이어로 14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삶에 다채로운 색 입혀준 일본 활동
힘든 시기 함께 해준 팬들 감사해


일본 활동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 덕분에 한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어요. 그런 저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은 제 삶에 파란만장하게 많은 색을 입힐 수 있는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니까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음에도 오해도 많이 받았고요. 외롭기도 했죠. 그러나 어디에나 어떤 일이나 힘든 점이 있잖아요. 이런 삶을 통해서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 사람의 모습, 생각과 가치관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분명 어떤 의미와 의도가 있다’라고요.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됐어요.”

김지현의 배우 경력을 대표하는 작품은 뮤지컬 ‘캣츠’와 ‘라이온 킹’이다. 그리자벨라와 주술사 라피키는 ‘호프’의 에바 호프만큼 개성적인 캐릭터이다.

“요즘 한국 공연계에 ‘호프’처럼 여성 중심 서사 혹은 젠더프리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젠더프리의 대표적인 예가 ‘라이온 킹’의 라피키라고 생각해요. 원래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는데 거기서는 주술사가 남자로 나오거든요. 뮤지컬로 새로 탄생하면서 여성 연출가가 참여했는데, 라피키를 여자 배우가 하게 했어요. 라피키는 극 중 주술사이자 스토리텔러로 나오는데 주술사 특유의 예리함과 신비적인 것을 여자가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제는 사회 자체가 실력을 인정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여성의 위치도 확고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 팬을 떠나서 작품 자체를 사랑해주시는 관객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호프’처럼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들도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을 누가 하느냐를 떠나, 여성, 남성 배우들의 장점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도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 작품의 주인공 호프도 여성이긴 하지만 K라는 남성 캐릭터가 있음으로 상호보완적으로 작품의 균형을 맞춰 주거든요.”
 



삶의 좌우명 No pain, no gain
앞으로 한국에서 다양한 할동하고파


마지막으로 김지현은 한국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가 일본에 오래 있으면서 많은 역을 했지만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예전에 기회가 주어져도 어쩔 수 없이 못한 작품들도 있는데 그런 작품들이 다시 인연이 된다면 하고 싶고요. 또 음악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서 송스루 작품들도 언젠가 하고 싶어요.”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김지현의 마음을 다독이던 문구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이다. “어떤 것이든 노력 없이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하지 마라’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성숙하지 못했을 때는 1을 해서 5를 얻으려고 했어요. 예전에는 그렇게 조금 투자해서 많이 얻게 되면 ‘운이 좋았다’ 생각했고, 적게 얻게 되면 그저 아쉬워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내가 한 만큼의 대가고, 그 실패를 통해서 다른 걸 얻을 수 있다’고 삶의 해석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삶이 행복해요. 제가 행복하니까 제 주위도 평온해지고요.”

인터뷰를 마친 김지현은 “인터뷰하면서 지금껏 삶을 돌아보니 이제야 애에서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아직 숙제가 남았어요”라며 씩씩한 걸음으로 다시 연습실로 향하는 김지현의 모습 뒤로 그녀가 새롭게 보여줄 에바 호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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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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