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쇼걸에서 살인공모자까지, ‘카포네 트릴로지’ 손지윤의 도전기

작성일2018.04.17 조회수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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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배우가 세 가지 에피소드별로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다 무대와 객석이 가까이 맞닿아 있어 배우의 역량이 특히 중요한 작품이다. 세 번째 무대로 돌아온 이 연극을 손지윤 배우는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어느새 데뷔 11년차, 어떤 인물을 맡든 늘 야무진 연기로 작품에 매력을 더했던 그녀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손지윤은 ‘카포네 트릴로지’ 무대에서 ‘로키’의 당당한 쇼걸 롤라 킨으로, ‘루시퍼’의 사랑스런 여인 말린으로, ‘빈디치’의 비밀스런 살인공모자 루시로 완연히 변신해 관객들의 기꺼운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연습시간이 부족해 힘들었다던 그간의 마음 졸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삶도 연기도 너무 멋있어서” 메릴 스트립을 좋아한다는, 스스로 ‘왈가닥’이라고 했으나 인터뷰 자리에선 수줍고 사랑스런 웃음을 자주 지어 보였던 배우 손지윤의 이야기.
 
Q 전작 ‘더 헬멧’에 이어 또다시 관객들 바로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계시죠. 배우로서 특별한 경험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카포네 트릴로지’는 ‘더 헬멧’과 또 다르긴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객석과 무대가 정말 가까이 맞닿아 있다 보니 연기하면서 관객 분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느껴져요. 반대로 내가 하고 있는 연기가 발끝까지 디테일하게 노출되기도 하고요. 숨소리 하나, 눈동자의 흔들림 하나까지 다 보여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장르가 다른 세 가지 에피소드를 모두 소화해야 해서 연습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
연습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웃음) 대본은 두껍고, 시간은 없고, 춤을 비롯해서 할 것이 너무 많다 보니 (극중) 상황에 온전히 집중하기까지의 시간이 정말 빠듯했어요.

우리 팀(김주헌, 김도빈, 손지윤)을 ‘주도윤’ 혹은 ‘주또지’ 페어라고 하는데, 우린 무조건 틈날 때마다 연습을 하기로 의견을 모아서 연습 시작 전에 한 두시간 일찍 나와서 맞춰보고, 밤에도 또 추가로 연습을 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헤어질 때 “내일 봐”가 아니라 “이따 봐”라고 인사하기도 하고(웃음). 낙산공원 가서 왈츠를 춘 적도 있어요.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운동하고 계신데(웃음).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운 추억이 돼서, 공연 올라가는 게 아쉽기도 했어요. 이제 매일 못 보니까.
 
Q 연습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소개해주신다면.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도빈이랑 서로 웃음을 참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더 헬멧’부터 두 번째로 같이 하는데다 둘 다 성격도 왈가닥이고 장난도 많이 쳤거든요. 근데 ‘빈디치’의 경우에는 굉장히 무게를 잡고 가야하는 극이잖아요. 일단 눈이 마주쳤을 때 웃음을 참는 게 첫 번째 목표였어요(웃음).
 



Q '로키'의 롤라 킨, '루시퍼'의 말린, '빈디치'의 루시 등 세 에피소드의 여성 캐릭터가 서로 다른데, 셋 중 자신과 많이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음…말린 같아요. 제가 유부녀라 그런가(웃음). 말린은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범한 생활을 갈망하지만, 그러면서도 남편 닉을 온전히 사랑하잖아요. 가끔은 위태롭기도 하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으로 위태위태한 순간을 함께 견디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나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 싶은 부분들이 있었어요. 물론 상황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떤 부부든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그런 점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또 말린은 굉장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요. 애정 표현도 숨기지 않고, 의견이 다를 땐 남편과 대립하기도 하고. 저도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티가 많이 나는 스타일이거든요. 반대로 그런 면에서 저랑 제일 안 닮은 캐릭터가 루시 같아요. 루시는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잖아요. 저랑 많이 달라서 더 재미있기도 했어요.  
 
Q 최근 몇 년간 주로 연극을 하셔서 ‘로키’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좀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부담됐어요(웃음). 내가 과연 이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근데 (노래 외에도) 할게 너무 많아서 그것만 연습하고 있을 수도 없었거든요. 마이크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내 목소리만으로 반주를 뚫고 가사를 전달하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집에서 정말 주구장창 불렀죠(웃음). 신랑(성두섭 배우)이 뮤지컬 들어가면 항상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제가 그만 좀 하라고 한 적이 많았거든요. 근데 이번에 신랑이 절 보고 ‘이제 알겠지?’ 하더라고요(웃음). 롤라의 감정을 계속 생각하고, 이해하고, 거기 집중하는 데 많이 신경을 썼어요.
 
Q 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과의 연이은 작업입니다. 두 분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일단 지이선 언니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더 헬멧’과 ‘카포네 트릴로지’를 함께 하면서 연기적으로 풀리지 않는 부분, 고민되는 부분에 대해 언니한테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작가라면 ‘이 때는 이런 감정이야’라고 답을 내려줄 수도 있는데, 언니는 늘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네 마음이 간다면 그렇게 해봐도 좋을 것 같아’라고 열어주시거든요. 그래서 배우로서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태형 오빠는 얼마 전 “내가 지금까지 제일 많이 작업한 여배우가 손지윤이야”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둘이 사이가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저희 엄청 싸워요(웃음). 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둘 다 고집이 엄청 세거든요. 그래서 ‘다신 보지 말자’ 하고 화끈하게 싸운 적도 많아요. 그러고 나서 또 화해하고. 오빠는 아마도 저를 가장 잘 아는 연출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Q 처음 배우가 되기로 한 건 언제였나요.
부끄럽지만 전 사실 연극의 ‘연’자도 모르고 연극영화과에 갔어요. 여고를 나왔는데, 그때도 엄청 왈가닥이었거든요. 친구들이 ‘넌 끼를 발산하려면 연극영화과에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한번 가볼까? 하고 3개월 정도 준비를 하고 갔는데 붙은 거에요. 그렇게 입학을 해서 처음으로 연극을 봤어요. ‘우리 읍내(Our Town)’였는데, 무대에서 옛날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게 그냥 막연히 너무 멋있었어요. 저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교 때 사실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수업도 맨날 안 나가고(웃음). 근데 연극 워크샵 수업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방학 때도 계속 공연 작업을 하면서 거의 학교랑 극장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극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졸업하고 나서 1년쯤 있다가 정말 운 좋게 연우무대에 입단했어요. 그리고 반년쯤 있다가 ‘해무’(2007)로 데뷔했죠.
 
Q 데뷔 후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들을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죠. (연기를) 때려 치자 생각했던 순간도 있고, 내가 이걸 할 깜냥이 못 되나 싶었던 적도 있고...그래도 돌아보면 매 작품마다 항상 애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더 헬멧’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게, 제가 원래는 잘 안 울거든요. 근데 이번엔 유독 팀원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첫 공연 날 제가 출연하는 날이 아니었는데도 공연 시작하기 전에 엄청 울었어요. 그 감정이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데 뭔가 벅차 올라서 많이 울었어요. 마지막 공연 때도 퇴장하고 나서 많이 울었고. 그 기억이 좀 오래 갈 것 같아요. 그 때 ‘그래 맞아, 이게 내가 연극을 하려던 이유였지’라는 느낌을 다시 받았던 것 같아요.
 
Q 이제까지 연기하신 캐릭터들 중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글로리아’의 켄드라와 ‘수탉들의 싸움’의 ‘W’가 기억에 남아요. ‘수탉들의 싸움’은 연기적으로 터닝포인트가 됐던 작품이에요. 그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내 능력 밖이구나, 연기를 계속 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어려웠고, 처음엔 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동안 연기했던 인물들과는 굉장히 다른 캐릭터였어요. 또 텍스트만으로도 굉장히 탄탄한 작품들이잖아요. 그걸 소화해야 하다 보니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두 캐릭터 모두 힘들었던 만큼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잘 못 느끼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래도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Q 공연계에 여성 중심 서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여성 캐릭터가 있나요.   
일단 그런 분위기가 너무 반가워요. ‘수탉들의 싸움’이나 ‘글로리아’가 좋았던 것도 그런 점 때문이었거든요. 그런 작품이 꾸준히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구체적인 인물을 그려 보진 않았지만, 일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삶이든 주체적으로 뭔가를 계속 표현하는 여자라면 마다할 이유 없이 선택할 것 같아요.
 



Q 연기 외 관심사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원래 산에 자주 다니는데,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갔어요. 대신 강아지랑 산책을 하거나, 집 앞이 남산이어서 시간 날 때마다 가볍게 커피 싸서 올라가서 마시고, 구경하고 그래요.
 
제가 완전 집순이라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집에 텃밭이 있어서 봄에는 그걸 가꾸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밭도 못 일구고 있네요. 상추, 깻잎, 고추, 루꼴라, 바질, 당귀, 적상추, 오크상추, 샐러리 같은 걸 키워서 먹고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재미가 엄청나더라고요.
 
Q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좋은 점도 많을 것 같은데, 결혼 전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 수월한 점이 많아요. 작품을 선택할 때 서로 많이 조언해주고, 연습하면서 힘든 것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니까. 연애할 때도 좋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좀 더 안정감을 찾은 느낌이에요.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거잖아요. 그 친구나 저나 연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Q 올해 이루고 싶은 계획 같은 것이 있다면.
2018년을 맞이하면서 신랑이랑 각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 놨어요. 공개하기 조금 창피한데, 1번이 ‘욕을 하지 말자’였어요(웃음). 나머지도 되게 소소한 것들이에요. 주변 사람을 잘 챙기자, 설탕을 줄이자, 책을 많이 읽자, 산에 가는 걸 게을리 하지 말자, 신랑 밥을 잘 챙기자, 부모님께 더 잘 하자. 소소한 건데 지키기가 쉽지 않네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왜 1번 안 지키냐고 해요(웃음). 

일단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겠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매 작품에 충실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되고 싶은 모습은.
음…어렵네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이 가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아직 멀었어요. 많이 노력해야겠죠.
예전에 영화 ‘해바라기’를 봤는데, 거기서 마지막에 나문희 선생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던 한 컷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무 대사도 없이 그냥 카메라를 쳐다보시는데, 그 눈빛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거든요. 그런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결국 연기에 다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건강해야 어떤 인물을 받아들일 때도 온전히 다 흡수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항상 노력해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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