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쇼와 두 무덤파기꾼 (광대)이 다시 펼치는 햄릿. 다시 구현되는 과정에서 원작 속 햄릿 대사의 순서와 말해지는 상황도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숨쉰틈있는 햄릿이지않을까. 영문학을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시 보고싶은 연극! 앵콜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는데 이번 앙코르 공연을 드디어 보게 되었네요^^ 공연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눈에 띄었던 무대에 깔린 모래는 공연 내내 바람소리인 듯 파도소리인 듯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타악을 이용한 동양적인 음악은 햄릿에 한국 정서를 착붙!! 극중극 형식이 당시의 시대와 현 시대를 관통하여 햄릿이란 작품이 가진 의미를 저에게 자연스럽게, 충분히 전달해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위트와 유머가 함께 한 무겁지만은 않은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훌륭한 연기을 보여주신 배우님들도 멋지셨어요! 공연을 보고 나온 금요일 저녁이 행복해지더라구요 :) 좋은 공연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며 숙부에게 가족과 나라를 빼앗긴 젊은 왕자가 복수와 체념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비장미가 넘치는 작품이라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작품입니다. 슬픔과 분노, 사랑과 배신, 욕망과 순응등 인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내면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비장한 왕가의 비극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지금도 꾸준히 여러 형태로 변용되어 무대위에서 선보이고 있는 것이겠지요. 지난 초연때에는 짧은 공연기간으로 인해 놓쳐서 아쉬웠던 극단 노마드의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이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으로 돌아와주어 반가운 마음에 평일 저녁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마치 장례식에서 쓰이는 꼭두를 연상시키는 지푸라기 인형과 모래로 뒤덮인 무대를 응시하며 궁금한 마음을 안고 착석하여 조용히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호레이쇼는 친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무덤에서 햄릿과 주변 인물들의 시신을 파내 연극을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와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빼앗은 숙부가 구축한 왜곡된 질서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며, 사람들은 의심없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요. 가혹한 현실앞에 햄릿은 복수를 맹세하고, 정의를 실현하여 진실을 되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며, 멈추지않고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서 실성한 사람 행세를 하며 주위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햄릿의 복수는 완성될 수 있을까요?

무덤에서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충격적인 장면이 인상적인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햄릿이 복수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는 과정보다는 왕위를 찬탈한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의 치세라는 명분없는 정치 권력과 왜곡된 질서에 순응하여 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아버지의 제삿밥이 채 식기도전에 숙부와의 결혼을 선택하여 왕실의 안녕과 대의를 선택한 어머니와 선왕의 충신으로서 사려깊고 분별력있는 대신이었던 폴로니어스의 위선적인 처세, 아버지의 명에따라 사랑보다는 복종을 선택한 연인 오필리어의 존재는 유일하게 진실을 외치는 햄릿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지요. 친구 호레리쇼는 왕가의 무덤을 관리하는 묘지기들을 광대로 만들어 이들을 단죄하는 연극을 준비하는데, [진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연극으로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제발이 저리겠지만, 제 발은 저리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하는 햄릿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고전에 빗대어 문화계 미투운동, 대통령 주변 측근들에 의한 국정농단등 현실 사회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도도 좋았습니다.

또한 작품은 광대들의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연극과 배우들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연극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배우는 시대를 대표하는 짧은 크로니클]이라고 자부하는 모습이 돋보였는데, 로미오와 줄리엣과 맥베스의 대사를 차용하는 부분과 타악기의 리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음악극적 요소도 좋았습니다. 망자를 기억하는 굿판을 연출하는 호레이쇼와 밀려드는 고난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 왕자를 비롯하여 개성이 넘치는 인물들을 맡은 배우님들의 멋진 연기는 고전의 변함없는 가치를 재확인 시켜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보면서 고전은 볼수록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며 음미하는 매력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죽은듯이 참는것이 고상한 것인가 혹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고난에 맞서 싸우는 것이 고상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관객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결말의 여운을 마음속에 담아 갑니다. 멋진 무대를 선보여주신 배우님들과 관계자 여러분들의 친절에 감사드리며, 앙코르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이 관객들의 사랑속에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