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지고 피고지고''는 해초의 왕오천축국전과 닮은 자신들의 삶에 비추어 살아가는 세 노인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왕오, 천국, 국전이라는 이상한 애칭 아닌 이름을 붙여 하루하루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마치 해초가 인도를 둘러보고 ''왕오천축국전''을 썼듯이. 자신들도 해초가 보낸 시간만큼 열심히 땅을 파면, 지금 삶을 버티게 해주는 일확천금이라는 가슴 설레는 희망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 기대만을 품고서 매일같이 땅을 파고, 그 퍼낸 흙으로 화분을 키워 내다 파는 이들의 모습은 밖에서 보기에 개과천선한 사람들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하루하루 열심히 땅을 파서 절터에서 발굴될 신라시대 유물을 몰래 팔아치울 생각은 허황된 꿈을 꾸는 몽상가들이다.

내일모레 칠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들은 그런 나이는 잊어버린 듯하다. 셋이서 나누는 대화는 칠십을 앞둔 노인이기보다 열일곱 살 소년같이 철없는 모습일 때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설명처럼.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싸우는 모습이나, 좋아하는 여인을 욕할 때 발끈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아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이 극의 중심을 잡고 있는 오영수 배우님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의 연기는 철없는 아이 같은 모습이 본래 모습인 듯 표현하고 있었다. 극에서 다른 친구들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집으로 찾아온 짝사랑하는 상대를 대하는 모습 등은 투박하고 서투른 극 중 인물 그 자체였다. 연기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피고지고 피고지고'' 속에서 그의 모습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몽상가와 꿈만 부여잡기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망설이는 겁 많은 노인 그 자체였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곁에 남은 가족들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서글픈 인생을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 이야기로 풀어낸다. 하지만 이루어질 꿈인 듯 부여잡는 이들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이들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 않다. 당첨될 가능성이 극히 낮은 로또 복권을 매일 같이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다를까.

''피고지고 피고지고''에선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연극 무대도 세 노인의 집뿐이다. 다시 말해 세 사람이 연극을 다 끌고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별거 아닌 말장난과 다툼이 반복되는 데. 엄청난 대사량과 그 대사에 맞는 행동의 합을 어떻게 다 외우신 건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연극에서처럼 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일상 대화하듯이 지나가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끊어지는 느낌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신기한 듯 보았다.

그러다 이따금씩,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드는 대사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피고지고 피고지고'' 속 세계로 빠져들어갈 수 있었다. 신라 시대 토기를 발견해, 30살이나 어린 짝사랑 상대에게 선물하는 모습이나, 궂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노인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함께 연극을 보았던 많은 어르신들이나 중년배 관람객들은 웃기도 하고, 때로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박수를 더하기도 하며 즐겁게 관람하는 듯싶었다. 다가오는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재미난 말장난이 나에게 모두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부모님이나 그 이상의 나이가 든 분들과 함께 봤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시 제가 제일 존경하는 오영수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연기는 정말 좋았어요. 보는 내내 벅차는 그런 느낌. 작품 자체에 아쉬움은 좀 남더라구요. 좋은 고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고전... 이 작품이 고전이라고 불릴만큼 오래되지는 못 했지만요. 아무튼 지금 이 시대에 특별한 각색 없이 날것 그대로 올리기에는 많이 불편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대사와 단어들도 그렇구요.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지- 라는 생각을 항상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 켠이 찝찝한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그냥, 옛날에 공연하셨던 그 모습을 지금 다시 볼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거겠죠. 그래도, 아쉬움은 좀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