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동안 숱하게 예술의 전당에 들르곤 했지만 오페라하우스와 연결되지 않는 공간엔 특별히 발딛일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와 오페라하우스 아래, 옆에 이동하기 좋게 연결된 자유소극장과 토월극장은 아주 친숙하고 친근한 공간이었지만 1년 365일 날짜 수보다 더 많은 횟수의 공연이 연중무휴로 올려져 잠시라도 휴장할 일이 없는 콘서트홀과 리사이틀홀이 위치한 클래식 공연장은 '모차르트'까페에 가지 않는 이상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어요. 예술의 전당 자체만으로도 구경할 게 많아서 오래전에 배회한 적은 있으나 그것도 한두번, 그 뒤엔 다른 공연 관람 시간 맞추기도 늘 벅찼으며 극장 외관 구경은 한두번이면 충분하고 그걸 넘어서면 신선하지도 않죠. 공연 전후에 여유있게 밥먹고 차마시고 동행인이 있을 땐 담소도 나누며 공연과 공연장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공연 관람에 의미를 새겼던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합니다. 앞으로 그럴 일은 없겠죠. 공연을 몇 년 동안 끊다가 보면 또 모를까요. 공연관람을 외출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엔 현재 제 공연관람 행태는 습관적으로 빠진지 오래니까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주변은 항상 북적북적거리더군요. 평일에도 오후고 밤이고 끊김없이 공연이 오르다보니 부대시설은 오페라하우스 쪽보다 더 활성화된 것 같아요. 편의시설도 이쪽이 더 많고요. 여름 저녁 나절에 토월극장에서 올라가는 공연을 보러갈 때면 엘레베이터 이용이나 오페라하우스 입구 쪽으로 빠지지 않고 바깥 층계 밟고 분수대 쪽의 입구로 들어갈 때가 많은데 그 앞에 펼쳐지는 분수대 쇼는 즐겁게 요동쳤으며 그 옆의 '모차르트'까페나 콘서트홀 바깥 주변은 인산인해로 활기있게 차올랐습니다.



6월 26일 한국과 우르과이의 월드컵 16강전이 있던 날, 월드컵에도 심드렁하고 밖에 나가기는 무지하게 귀찮고 한없이 나른해서 외출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는데 지인이 콘서트홀 연주회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해서 프로그램을 물어보니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나오는 공연이라더군요.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꽤 익숙한 이름이긴 해서 클래식 분야에 깊이 없는 내가 자연스럽게 이름이 인지될 정도라면 이 사람, 매체에 심심찮게 등장한 인물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최소 멋대가리 없는 공연 프로그램에 허탕칠 일은 없을거란 안심을 갖고 공연정보를 찾아보니 비록 초대권 관람이긴 했지만 찾아갈만한 가치는 느껴졌습니다.



초대권 공연이 할인률 별로 없는 값나가는 공연이라면 같은 공짜 공연이라도 상대적 만족감이 높아지잖아요. 공연단가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고 이 분야에 있어 명망있는 행사로 보였습니다. 저는 조수미 같은 유명 소프라노나 최소 '무릎팍 도사'에 나올 정도의 몸값 비싸고 대중적인 클래식 계열의 인사들이 아니라면 콘서트홀/리사이틀홀 프로그램에 무관심한 얄팍한 클래식 관객이기 때문에 예매처의 과장 섞인 프로그램 해설에 뻥이 넘칠수록 혹해집니다. 모처럼만에 콘서트홀 구경도 할 겸 사람도 만나고 피할 방도 없이 거대하게 압박하는 포효하는 월드컵 열기에 넌덜머리 난 뇌도 식힐 겸 습도높은 구질구질한 날씨에 무기력해진 몸을 끌어내었습니다.



초대권 준 지인 말로는 원래는 임동혁 공연은 무대에 섰다 하면 스타파워 발휘하며 매진되는데 이 날은 예상치 못한 월드컵 16강 전 복병을 만나 공석이 생긴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운이 좋은거라나요. 자리도 좋았습니다. 이럴 때 아니면 제가 언제 콘서트홀 상위 객석에 앉아 보겠어요. 지인도 공연 당일 날 초대권이 생긴거라고 했기에 16강 전 때문에 표가 남은 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월드컵 한국경기 있는 날이면 그동안 한번 이상은 시켜먹었던 동네 통닭집 여기저기서 막역한 친구처럼 닭 배달 새벽 내내 된다는 문자까지 오니 이런 느닷없는 초대권도 으례 그러려니 했습니다. 월드컵 없어도 마술처럼 객석 채워넣는 게 공연계 미스테리 중 하나죠. 월드컵 열리면 통닭 집 대목보는 것과 대조적으로 어느 한쪽에선 파리만 날리게 돼있지만 그래도 공연장에 관객은 많았습니다. 공연은 8시에 시작했고 못해도 10시 전후엔 끝날것이기 때문에 밤 11시에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 한국 16강 전 경기중계는 무리없이 볼 여유는 되지만 월드컵 한국경기를 아무렇게나 보고 싶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 사람들 전부 다 콘서트홀에 모인 것 같았습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 때마다 대한민국 외침과 붉은 잔재가 난리도 아니어서 월드컵 열기와 무관해보이는 공연장 분위기에 초현실적인 느낌마져 들더군요.



2

국내 클래식 공연 무대에 서는 남자 솔리스트가 객석점유율을 보장해주는 지명도라면 여성팬이 많다는 건데 임동혁 프로필을 찾아보니 1984년생으로 젊고 어리며 나이에 비해 소년같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성팬 이끄는 원동력엔 외모가 한몫하죠. 그런 풋풋한 인상과 소년같은 매력이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수준급 연주실력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여성팬들에게 달짝지근한 매력을 선사하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보니 그렇게는 보이더군요. 청년같다기 보단 애같았죠. 인사도 쭈빗쭈빗, 무대 등,퇴장 걸음걸이도 머뭇머뭇. 수줍고 수수하며 순박하고 어설퍼보였습니다. 좋게 보면 순수한 모습이었는데 제가 보기엔 연주실력을 떠나 무대에 임하는 모습이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맥아리 빠진 게 별로 프로페셔널해 보이지가 않아 좀 쪼다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때론 덜떨어짐이 순박한 매력으로 승화될때도 있는 법이죠. 그렇다해도 인사 정도는 힘있게 좀 하지 무슨 어린이 콩쿨 대회 참가자 같아 보였습니다. 클래식에 대해선 초짜관객이니 연주실력 뭐 이런거는 그저 잘 친다고 하니 잘 하는 것 같았고요. 각 곡목이 길고 복잡해 기술적으로 상당한 기교와 힘이 필요했는데 무리없이 근사하게 잘 연주했습니다.



이날 최고 하이라이트는 2막 연주 초반에 페이지터너의 실수에서 비롯된 신경질적인 긴장감에 있었습니다. 일명 악보걸 - 누군가는 '넘순이'이라고 하던데 그 말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 이 악보 하나 제대로 넘겨주지 못해 임동혁이 연주하던 중간에 한손으로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한 손으론 페이지터너의 손을 무시하고 과격하게 악보를 넘겨 악보는 구겨졌고 공연은 그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불안불안했습니다. 임동혁은 딱 한번 악보를 넘겼을 뿐이지만 구겨진 악보는 다음 악보를 넘길 때에도 구김 선이 보였고 에어컨 바람에 악보는 넘실넘실, 임동혁의 반응에 놀란 악보걸은 그 뒤부터 신경 써서 넘긴다고 하는 것이 고정도 잘 안 되고 전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악보 넘기는 것도 재주가 필요한가봅니다. 잘 넘기는 사람은 연주자 연주방해도 안 하고 깔끔하게 고정시켜 준다는데 말이죠. 이날 페이지터너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고 임동혁도 너무 티를 냈으니 둘 다 잘한거없습니다.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연주자나 관객이나 연주에 집중해야 하는데 페이지터너가 악보를 한번 잘못 넘겨 분위기가 어색해진 뒤로 자꾸 악보 넘기는 것만 보이는거에요. 페이지터너 없이 악보 넘기는 방법은 없을까요?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더군요.



아, 여태 임동혁 얘기만 했는데 이 공연은 임동혁 단독 연주회는 아닙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앙상블 디토의 공연으론 4회째)젊고 대중적인 클래식 공연을 지향하는 실내악 축제인 '디토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번 페스티벌의 총 6단계로 구성되는 프로그램 사항에서 2번째에 해당되는 '디토프렌즈'의 첫번째 듀오 프로젝트 공연이죠. 아르헤리치의 전폭적인 지원과 애정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프랑스의 첼리스트 고튀에 카퓌송은 둘 다 비슷한 또래로 10여년 전 아르헤리치의 소개로 인연이 닿았으며 그 뒤 오랫동안 좋은 음악친구로 지냈나봅니다. 이 둘이 이번 '디토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선건데 프로그램 진행은 고튀에 카퓌송에 비해 임동혁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할당되었습니다. 1막 첫번째 연주인 '쇼팽_환상 폴로네이즈 Op. 61'는 임동혁 단독 연주였으니까요. 그 외 예고되었던 나머지 연주는 공연타이틀 답게 듀오연주로 펼쳐졌습니다. 페이지터너의 실수만 아니었으면 무리없이 흘러갔을 연주회였을 겁니다. 임동혁과 고튀에 카퓌송의 호흡도 자연스러웠고 연주도 유려하게 흘렀으니까요.



1막 세곡, 2막 한곡이었는데 2막의 '라흐마니노프_ 첼로 소나타 사단조 Op.19'이 워낙 길어서 40분 동안 연주했던 1막과 거의 비슷하게 끝났습니다. 각 연주시간과 막 구분이 균형있게 나뉘어졌습니다. 앵콜곡은 무려 3곡이나 들려줬는데 거의 3막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앵콜곡 연주만 20분이었습니다. 날이 날인지라 커튼콜 하고 들어가서는 붉은악마 응원 티셔츠를 갈아입고 나와 연주하는 센스를 보여줬습니다. 당연히 객석 반응은 본 공연 때보다 열기있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덤을 얻은 느낌이더군요. 앵콜곡 때문에 커튼콜을 거듭 반복하면서 여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이는 악보걸도 붉은악마 응원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 연주회 관람이었습니다.



- 예술의 전당 근처에 먹을데가 많이 생겼더군요. 가끔 너무 이르게 도착해서 시간은 남아돌고 배는 고플 때 만만하게 먹을만한 식당이 생겨 다행이에요. 작년에 예술의 전당 매점에서 6천원짜리 샌드위치를 사먹었던 걸 생각하면...

임동혁의 현란한 연주와 카퓌송의 첼로 소리가 참 좋더군요.

엥콜무대에 두 연주자가 붉은 악마 셔추를 입고 나타나서
정말 팬서비스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모두를 또 한번 웃을 수 있었던 일 기억에 남아요.

최고다. 역시 기다렸던 만큼 설랬던 만큼
감동도 설렘도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사실 피아노를 전공해서 나의 꿈이자 영웅인 임동혁씨를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서 보다니. 바로 예매를 클릭했다
첼로에 대해서 아는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첼로 소리가 바이올린 소리보다 무겁고 딱딱한 것 이라는 편견을 확실히 깨주었다
첼로소리는 부드럽고 명확하며 피아노와 또다른 매력이 있다고해야할까.
피아노가 사람의 감정을 연주하는 것이라면
첼로는 사랑이있는 엄마품 같았다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긴 곡을 연주하시느라 몇십분내내 힘들고 긴장되고 즐겁고 했을것이다
무대앞에 선다면 어떤 마에스트로도 그런감정이 들겠지.
연주를 끝마치고 나면 관객들보다 더 희열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오늘 연주가들보다 더 희열을 느꼇다
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온 힘과 좋은 소리만을 나에게 들려줬음 이었기때문에
난 너무도 큰 감동을 얻었다.
또 그날은 아주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는날.
두 연주가께서 붉은티를 입고 나오신건 정말 센스 만점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앵콜곡도 3곡이나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이렇게 거장끼리 만났지만 나이차이도 있고 동서양의 견해차이도 있었겟다
라고 생각했는데
음악가들은 음악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너무 멋있는 멜로디이자 이것은 마음이 서로 통해야하는 말그대로 듀오 인데
그 소리가 나에게 너무 잘 와닿았다.
마지막에 팬사인회에서 나의 꿈이자 닮고싶은 임동혁씨를 이렇게 가까이서 대면해서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그 순수한 피아노의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전해진듯 너무도 순수하시고
자상하셨다.
오늘 너무도 즐거운 밤 이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다.
남동생과 함께 했었는데 역시 너무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된다
이런 두 거장이 듀오를 할 기회가 몇번이나 된단 말인가.
돈으로도 못살, 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셨다.

임동혁과 고티에 카퓌송,

잘맞는 호흡에 아주 열정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음악에 빠져들어 절로 박수가 나오더군요.

월드컵16강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빨간티를 입고 나오는 센스까지^^

정화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두 연주자의 연주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