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극단 피오르 작품이 올라와서 관람했는데, 어려웠지만 80분 러닝타임 속에 생각할만한 대사와 영감을 이리 많이 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네요. 텍스트의 깊은 수준과 이를 풀어내는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화하고자 노력했음이 엿보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표절작가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제의식과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후반부는 5차원 공간 속에서 주인공이 오직 사랑의 힘만으로 딸이 존재하는 시공간을 찾아내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시간과 공간의 무한함 속에서 사랑은 우리를 서로 이어주는 강력한 힘이라는 거지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표절작가 역시 끝없이 반복되는 40분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복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사랑 때문이고, 시간의 영원성에 대한 도달 역시 시간과 닮아 있음을 이해하는 순간, 즉 시간과의 사랑 속에서 가능해집니다.
위에 쓴 문장이 불완전한 이유는 우선 저의 이해가 부족한 때문이고, 두 번째는 표절작가 역시 시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에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극은 시간을 다루는 만큼 대극장에서 대규모 장치를 통해 구현해도(마치 인터스텔라 처럼!) 참 멋있을 것 같은데 소극장의 한계는 조금 아쉽더군요.

이 세계엔 단 하나의 작가 단 한 권의 책이 있고 우리 삶은 모두 그 존재가 쓰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이다.
운명이나 신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단 하나의 작가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본 지인은 시간에 대한 실존주의적 내용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또한 4차원 주의라는 철학적 관점과 일치하는 극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4차원주의 관점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단면을 지닌 다양한 공간처럼 배열된다.
우리는 그 단면 하나하나에 속하는 존재인 것이다.
극에서는 두 작가 부부가 평생에 걸쳐 서로의 원고에 대한 표절 논쟁을 펼치는데, 그건 결국 단 하나의 작가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늙어 있었고 비로소 그 하나의 존재가 바로 자신들의 시간이자 변치 않는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간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는데, 사랑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은데, 그것은 무엇일까?
극중 인물들처럼 자신의 얘기를 극으로 쓴다는 것이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이 모두 닮아간다는 것일까?
80분이 휙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또 신기하게도 관람 후에도 연극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표절 작가" (작:김성민 연출:임후성 무대:이윤수 조명:김종석 음악:김동욱 출연:전수아, 김준희, 김시영, 양한슬, 임후성 제직:극단 피오르 극장:스튜디오76 ★★★☆☆) 2020년도에 "돌이 된 여자" 를 봤었던 극단 피오르의 아홉 번째 공연 이다. 작가 수연은 자신의 실제 삶을 글로 옮긴다. 그녀는 남편 상준의 희곡 <40분> 이 자신의 희곡 <40분> 을 베낀 것이라고 생각 하는데... 철학적인 대사들이 어렵다. 전수아, 김시영 배우님의 연기가 좋아서 별점 1개 추가!

11월3일 연극하는 지인들과 관람했습니다.
사회적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가 존재하는 방식을 표절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연극!
창작산실 텍스트인데 이런 연극 한다는 자체가 큰 실험인 것 같다.
깊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신선했다.
배우들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먼저 본 친구의 추천으로 주말에 공연을 보고 왔네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 보고 와서 생각도 정리할 겸 관람 후기 남깁니다:)

제 생각에 이 연극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텅 빈 방 안에 희곡 작가의 손에 하나의 종이가 주어집니다. 종이에는 써 있습니다. ‘시간에 대해 서술하시오’
희곡 작가는 인물을 창조합니다. 종이 속에 시간과 공간이 창조됩니다. 그 안에도 작가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 안에서 숨쉬고 이야기하고 바라봅니다. 희곡 작가는 그들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합니다.
시간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사실 시간은 반복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그렇게 하나의 방처럼 놓여 있습니다. 그 안을 우리가 채웁니다. 시간은 우리를 통해서 흐릅니다. 시간은 존재고 존재는 시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는 영원 속에 우리는 변하지 않는 조각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하지 않은 조각 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이때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로고스입니다. 존재가 존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은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 이야기, 저는 연극을 보면서 이 극을 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작가는 제게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 암전 후에 캄캄한 무대에는 허공이 내려앉았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을이 옷을 벗으면 빈 분장실에 놓인 대본 안에서 누군가는 비로소 그 허공 속에서 6시 41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시간일 것입니다. 같은 세계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연극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극단 피오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