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낮게 연극보는 중년아줌마들....정말 매너 너무 없으시다....
차라리 영화나 보던가....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극이라기 보다.
대사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는 극이라.
다소 지루한면이 없지는않았지만
너무나도 배우분들이 연기를 잘 하셔서 정말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김광보 연출 스럽지 않은 차분하고 담담한 시선.
두 배우의 열연.
그리고 참 따뜻했던 내용.

역시 산울림 시리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카테 요지의 국내 초연작인 [블라인드 터치]는 실제 사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2002년작입니다. 작품의 토대가 된 실제 인물은 연극과는 달리 아직도 복역중이고 여전히 여자는 남자의 구명운동을 하고 있다네요. 사카테 요지는 일본에서 주로 정치적인 이슈와 사회성 짙은 소제를 다루며 진지하고 문제의식이 뚜렷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해요. 그의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소신이 뚜렷한 사회파 연극인이라는 일관된 대외적 평을 보자면 그의 국내 초연작인 [블라인드 터치]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조금 가볍고 읽어내기 수월한 작품일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남녀배우가 활짝 웃고 있는 포스터는 그냥 보면 중년남녀의 로맨틱코미디로 보이는데 그 정도로 화사한 건 아니지만 줄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무게감은 덜합니다.

산울림 소극장의 2008년 '해외 문제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블라인드 터치]는 젊은 시절 '블라인드 터치'라는 2인조 밴드 활동을 하던 중 '일-미 양국 정부의 오키나와 반환협정 반대시위'에 참가한 남자가 동료 우에노와 함께 시위 주동자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된 후 28년 만에 풀려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16년 전 사회활동에 열심히였던 10살 연상의 여자와 옥중 결혼식을 올렸었는데 석방되기 전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여자의 면회와 숱한 위로 편지와 자잘한 배려를 받으며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남자가 석방되자 여자는 여러 곳에서 보내온 성금을 보태 둘만의 집터를 꾸리고 남자를 맞이합니다. 남자는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낸 데다 결혼 기간만 16년이었지 같이 살 맞대고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를 최대한 배려하고 부부로써의 애정을 갈구하는 여자의 친절이 못내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거기다 오랜 옥중 생활에서 베인 습관이 그 둘의 동거에 지장을 줄 정도로 얽매여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죠.

여자의 마음과 상관없이 남자는 아직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하다며 더 익숙한 감옥생활의 습성을 이어가려 하고 있고 집 뜰에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헛간을 짓기까지 해 그들 사이의 괴리감을 높여만 갑니다. 더불어 둘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부부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일련의 소소한 일상사를 겪게 되고 일련의 일을 통해 그간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하기도 하고 갈등과 이해와 화해를 하며 점차 서로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면서 끝이 납니다.

이 작품이 독특했던 이유는 일본적인 색체를 가감 없이 드러낸 데에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면 충분히 한국식으로 바꿔 표현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다던가 소제만 차용시키는 것이 아닌 원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일본식 주택이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집은 같이 산다는 것에서 의미가 부여될 뿐 정성들여 제작된 일본식 가정 집 세트가 작품에 효율 있게 활용되는 건 아니거든요. 또한 모든 사건의 계기가 되는 '일-미 양국 정부의 오키나와 반환협정' 사건도 그 사건 자체가 인물을 읽는 도구로 사용되진 않습니다. 작품 전반에 화두로 드러나긴 하지만 다른 사회적인 운동으로 대체되어도 무관해요. 주인공 남녀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 있고 능동적이지만 작품은 그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견해를 규명하기 보단 그걸 통해 인생이 뒤바뀐 남녀의 심리와 갈등에 중심을 맞추고 있습니다. 핵심으로 다루는 건 정치가 아닌 인간이란 얘기죠.

억압과 탄압의 역사라면 어느 나라 못지않게 억센 우리나라고 [블라인드 터치]가 정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개인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이나 우리나라 식으로 바꾸기가 편할 텐데도 원작을 따른 데는 추측컨대, 외국의 작품을 통해 우리를 반추하고자 하는 의도라 봅니다. 이 작품을 각색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이 작품의 중심은 남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색이 짙을수록 대입효과가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블라인드 터치]를 보면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역사가 개인 인생을 뒤바꾸고 의도치 않은 소신이 확대해석 되는 아이러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남녀주인공을 맡은 윤소정과 이남희의 연기입니다. 한국일보 리뷰와 마찬가지로 저도 정성들여 꾸며진 무대 소품과 일본식 주택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이 아쉽더군요. 제법 많은 소품이 있음에도 사용되는 게 별로 없어요. 풍성해서 보기는 좋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또 집 안과 마당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차지하는 비율이 반반입니다. 집 세트가 집 안은 왼쪽에, 마당은 오른쪽에 마련돼 있고 동선이 크지 않은데 산울림 소극장 객석이 반형 구조라 객석에 따라 인물 동선 따라잡는데 제한적입니다. 저는 왼쪽에서 봤는데 덕분에 마당에서 사건이 진행될 때는 배우들 뒤통수를 자주 봐야했어요. 집 안에서 진행될때가 많으니 오른쪽 객석에 앉은 관객은 소극장이라도 답답했을 것 같네요.

이런 난점과 서너 번의 암전 외에는 별다른 무대 기술이 없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위험을 배우들의 풍부한 인물묘사가 잘 살려내었습니다. 일본적인 색체가 선명한 작품에 부흥하듯 연기 스타일도 일본사람처럼 하는데 아주 재밌어요. 말투나 억양, 몸짓을 고심한 흔적이 보여요. 특히 이남희가 극중에서 격분하여 빠르게 대사 처리할 때는 언어만 한국말이지 일본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아요. 둘은 시종일간 호흡도 잘 맞고 연륜에 걸 맞는 세밀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인물의 강약과 대사의 완급조절이 정확해요. 또한 일본 작품답게 이 작품도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묘사에 치중하여 간접적으로 인물을 표현하는데 그 간결함에 어울리게 연극임에도 생활연기스러운 연기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표현됐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던 남녀가 어색하게 한 집안에 머물면서 빚어내는 세월의 격차와 어긋나는 감정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은데 그런 부분이 현진건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더군요. 작품 말미에 여자는 피아노를 한 대 더 장만해서 무작정 두들기고 그를 본 남자는 머뭇거리다 방안으로 들어가 피아노를 칩니다.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화음을 이끌어내려는 남녀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진실한 화해를 모색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 공연시간은 95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