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라서 그런지,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한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결혼을 한 부부를 배경으로 한 디너 등 유독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이번에 보고 온 작품은 현재 대학로 문화 공간 엘림홀에서 공연중인 사흘 동안이라는 작품이다. 인터파크에서 공연 소개를 보니 ‘고난을 통한 내면적 성숙과 가족애’ 그리고 ‘가족을 위한 새로운 공연 패러다임 형성’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정에 찾아온 고난을 극복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나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측면보다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더 많이 들었다. 헤이스트 가문의 아들 엘리스. 아버지가 신탁금 횡령혐의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가문의 명예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가정 형평은 파산하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스는 아버지의 재판을 준비하고 지나쳐 오면서 어려운 시간을 거쳐왔고, 빚쟁이들을 두려워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동생 엘레나는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특유의 정신세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사고를 터트리고 만다. 거기에 자신의 수제자였던 페테르는 자신의 논문을 도용하여 아직 자신도 받지 못한 학위를 받았다. 또, 교육자로 자신의 명예를 높여 줄거라 기대했던 제자 베냐민 역시 시험에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페테르와 외출을 하려는 약혼녀 크리스티나조차 의심하는 상황. 모든 상황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와중 헤이스트 가문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린드키스트로가 집을 찾아온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족애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가족들 간의 의지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린드키스트로가 등장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 전까지 이 집안은 조만간 박살이 나도 (…)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극의 중심에 있는 엘리스의 모습은 어려운 현실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너무 감정의 변화가 심하게 아닌가? 아니 굉장히 정상적으로, 이유도 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있다가 갑자기 ‘제길!’이라면서 절망해봤자 정말로 어려운 날들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모습이라기 보다는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인생을 사는 부잣집 도련님이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괜히 투정부리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앞에도 언급한 것처럼 엘레나를 제외하고는 극 자체에서 가족간의 사랑 따위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없었다.

그래도 이 작품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가족애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썩 괜찮은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기 위해 헤이스트 가문을 방문한 린드키스트로는 엘리스에게 이상한 요구를 한다. 그리고 이 요구는 결국 불필요한 자존심, 타인에 대한 질투심, 끊임없이 의심하고 용서를 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결국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손에서 놓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게다가 린드키스트로역의 임동진 배우님의 연기력이 너무 좋아서 인지 대사 하나하나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려왔다.

임동진 배우님을 제외하고는 안수현 배우님이 가장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타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듯한 소녀의 역을 차분하지만 약간 격조되어 있는 목소리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특히, 엘레나가 꽃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물론 배경에 깔리는 음악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높은 집중력으로 무대를 보게 만들었다. 음악이 흘러가는 느낌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를 목소리의 기승전결만으로 환상적인 느낌을 만들어 주었다. 헤이스트역의 김민경 배우님 역시 출연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지만 연기 내공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단지, 엘리스역을 맡으셨던 송승용 배우님. 이분 연기가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원래 엘리스역 자체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정의 표현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셨다. 감정의 변화라는게 너무 갑작스럽게 나타나면 ‘제가 왜 저래?’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딱 그런 연기였다. 너무 쉽게 분노하다가 갑자기 비굴해졌다가, 다시 분노했다가….왜 저러지? 라고 진심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너무 극단적이 감정 표현 덕분에 극 자체가 암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저런 스타일의 연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연기.

홍보물에서 알려주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고, 가장 중요한 역할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후반부에 등장한 임동진 배우님의 열연과 다른 배우 분들의 무난한 연기 덕분에 인상 깊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자존심과 타인에 대한 질투심으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검게 물들려 가고, 그런 감정이 중요한 순간 옳지 못한 판단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시 타인에게 그 잘못을 넘긴다. 사람으로 질투심을 가지고 자존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적절한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야 하지 않을까?…머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연극이었다.

정극이어서 지루할 법도 한데,
배우의 연기가 이래서 중요한가봐요.
특히, 임동진 선생님 연기는 참으로 자연스럽고 재밌었어요.

연극 내용은 좀 관념적이고, 신앙적이지만,
메시지가 있는 연극이라 배울점들은 있었어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일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에는 참으로 악한 가시와도 같다는 것.

전 잘 보았습니다.
더욱 발전있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