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국립극단 특별기획공연

포스터만 봐선 이게 연극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연극 제목보다 서너배는 크게 작성된 스튜디오 배우열전이란 낱말이 포스터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우측 하단에 연극 제목인 [통닭]이 자그맣고 단조롭게 씌어있으며 연극 제목과는 하나도 어울려보이지 않는 레저의자가 엷은 조명 아래 우두커니 놓여있는 디자인이다 보니 대체 어떤 류의 작품인지 종잡을 수가 없죠. 거기다 제목이 [통닭]이라니, 좀 우습기도 하고 "무슨 제목이 그래?!" 라며 갸우뚱하게도 됩니다.

연극 자체보단 과정에 의미를 둔 기획물입니다. 그래서 포스터에 '통닭'한 마리 그려넣지 않은거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이 작품은 국립극단 전속 배우들도 대중적이고 평범하며 일상적이고 소박한 내용의 연극과 그에 맞는 연기를 해낼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해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목보다 부제로 붙은 '스튜디오 배우열전'을 더 확대시킨 것도 그런 연유에서죠. 2007년 부터 시작된 특별 기획 시리즈로 올 해 두 번째를 맞고 있는데 첫 해엔 [겨울 해바라기]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보였다고 하는군요.

국립극단이 자사전속배우들의 자기발전과 극단 특유의 매너리즘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책으로 방안된 것 같으니 몇 번은 더 하고 끝내겠죠. 사실 전 이런 기획물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별오름 극장도 처음 가본걸요. 관심이 없었죠. [겨울 해바라기]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도 [통닭]때문에 공연 정보 알아보다 어렴풋이 제목만 겨우 생각난 정도였고 이번 관람도 자의에 의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표를 얻었고 시간이 비었으며 국립극장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으며 그래도 국립극단 공연이니 기본적인 신뢰는 한 겁니다. 부랴부랴 공연 정보 캐서 취지를 이해하려고 했죠.

작품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우리도 남들 하는 것 해보자"는 의식이 깔려있는 기획물이기 때문에 별건 없었어요. 극단이 독보적인 정극 스타일의 정형화 된 틀을 깨부순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으니 오랫동안 국립극단의 많은 작품들을 같은 배우들의 연기로 봤던 팬들에겐 남다른 감상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는 그냥 그저 그런 연기에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보면서 극단이 긴 워크숍 과정을 거치며 치열한 경쟁 끝에 이 작품을 선택하고 애정을 쏟아낸 이유는 알겠더군요.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kbs일일드라마 같은 내용에 연기력을 발휘할 만한 장면도 없지만 바로 그것이 극단이 원한바니까요.

그렇다면 남들 하는 모습 나라고 못할 것 없다라는 의미를 남기기 위한 결과물은 어떨까요? 별로에요. 기대한 것도 없지만 나을 것도 없습니다. 욕 들어 먹을만한 수준은 아니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공영 기획단의 작품을 볼 때 종종 기계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데 [통닭]도 피해가진 못합니다. 안정적이긴 한데 치열함이 없어요. 선입견일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우러나오는 맛이 부족합니다. 별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죠. 그럼에도 기본적인 신뢰를 할 수 있는 건 제제를 많이 받는 집단이니 그만큼이나 안정적인 기반에서 기본적인 완성도는 보장시켜 준다는 건데 좋게 말하면 그런거고 나쁘게 말하면 꼭두각시 놀음이고요. 그 강구책으로 '스튜디어 배우열전'이란 명목하에 연유한 작품이 [통닭]이니 시도는 칭찬받을만 합니다. 대수로운 작품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극단의 모습은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겠냐마는 향후 작품들에 긍정적인 영향은 끼칠 순 있는거죠.

대학로의 가벼운 연극을 의식한 웃음포인트는 충분한 효력이 없고 제한된 무대 공간에 맞는 기술력이 따라주질 않아서 산만합니다. 통닭집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대안가족이라는 것도 어디서 많이 본듯한 구성이고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너무 많은 공간에서 다루고 있는데 협소한 무대 공간의 절반 이상이 통닭집 세트로 구성돼있는데다 억지로 상황설정에 맞는 소품을 갖다 붙여 설득력이 떨어지고 답답한거죠. 연출가도 이점에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무대 공간도 좁지만 이야기 자체가 무대극보단 t.v드라마에 옮겨지기에 적합한 전개입니다.

이 작품에서 '통닭'은 소통의 매개체이고 결정적인 전환은 죄다 통닭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통닭집은 단순히 결집을 응구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중요한 건 아닙니다. "닭날개는 내거"라느니 "이집 통닭 맛이 최고"라느니 같은 대사가 있긴 하지만 꼭 통닭집이 아니어도 주요인물들이 인과관계를 이룰 수 있는 장소라면 어떤 배경이라도 상관이 없죠. 서민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로 통닭을 삼은 것 같은데 작품에 방해가 되고 있죠. 속풀이를 하는 구심점으로나 통닭집이 이용되는것을 무대 전체에 통닭집 세트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연수네 집,연수 엄마의 직장,연수의 직장,연수가 노는 나이트클럽,연수와 연수 남자친구가 만나는 데이트 장소,연수가 친아빠 배웅하는 정거장 등 세트가 감당할 수 없는 배경 설정이 너무 많아요. 거기다 난데없이 연수가 은행강도 무찌르는 설정은 왜 나오는지 납득시키지도 못합니다.

구질구질하고 잔잔한 일상에서 졸지에 서민 영웅이 되어버린 연수에게 자신감 회복과 용기를 복돋아 주며 공감대를 얻기 위한 설정으로 쓰인 것 같은데 결정적인 훅을 주기엔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은행원의 무장강도 격파 시점을 계기로 이야기를 급진전 시킨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연수 친아빠 등장도 마찬가지죠. 그런거 없어도 따뜻한 대안가족 설정을 자연스럽게 끌고 갈 수 있을텐데 말이죠.

[통닭]은 단독콘서트를 여는 가수의 이벤트성 특별 공연과도 같은 공연입니다. 잘 하진 못해도 전공분야도 아니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니 관대해질 순 있는거죠. 국립극단 배우들을 좋아하거나 국립극단 공연을 자주 접한 관객이라면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익숙한'배우들의 '새로운' 연기를 본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대체로 무난한 이야기 전개에 희미한 웃음 정도는 머금을 수 있는 것이고요. 어차피 2주 단기 공연에 70석 겨우 넘는 별오름 극장에서 올려지는 작품이니 볼 사람이나 볼테고 작품도 취지에 솔직하니 연기나 작품 자체에 왈가왈부하는 게 불필요한 짓일 수도 있죠.

- 74석 정도의 객석규모 치곤 별오름 극장은 경사가 높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