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시작은 약간 그로테스크했다. 윈스턴이 시작한 메트로놈 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이 기계처럼 움직이고, 보도를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보도가 되면 사람들은 이전의 것과 모순되는 새로운 것을 동시에 생각한다(Doublethink). 우리는 전쟁 중이지만 전쟁을 하고 있지 않다 등의 모순되는 내용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이다. 생각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모습들이 연극에서는 매우 함축적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처음엔 1984의 내용을 떠올리느라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윈스턴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모습과 겹쳐져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표현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세계 간의 괴리가 커졌다. 윈스턴이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하는 것 까지는 유사하지만, 이후에는 조금 다르다. 사랑이 금지되어 있는 1984의 사회에 반하여 서로를 만나는 윈스턴과 줄리아는 고문을 받고 상대를 배신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끝내 죽음을 통해 하나가 된다. 그래서 1984에서 윈스턴의 죽음이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 죽음이었다는 해석을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육체적으로는 죽은 목숨이지만 정신만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끝내 서로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존재한 사회가 너무나도 달랐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공포만이 존재하는 1984 같은 사회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는 쉽게 vaporize시킬 수 있고, 자신의 존재를 그 무엇으로부터도 확인받을 수 없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것 같지만, 사회의 힘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오웰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묘사가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오히려 연극을 본 이후에는 그 함축에 대해서 더 생각할 기회가 생긴 것 같다. 한 사람에 대한 모든 기록을 조작하여 사람을 vaporize 시키는 사회에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원한 사랑은 존재할까? 아직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문제 같다.
(원문: blog.naver.com/js5930)

"로미오와 줄리엣@1984" (부제2+2=5 원작:윌리엄 셰익스피어 재구성,연출:오경숙 출연:남승화, 주예린, 김상혁, 박진원, 최선경 주최:연극집단 뮈토스 극장:예술공간 오르다 별점:★★☆☆☆)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유명한 작품 두개를 묶어 놓아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였다. 결론은 어느 것도 잘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을 읽었지만 "1984"의 내용은 와 닿지가 않았고,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 장면도 흥미롭지가 못하다. 첫공이라서 그런가 배우분들의 움직임도 어색하고 왜 AR에 우리말 노래를 쓰는지 가사 전달도 잘 안되었다. 그러나, "스탑 키스" 에서 보았던 주예린 배우님의 집중있는 연기는 좋았다. :"영국 왕 엘리자베스" 가 그리운 이유는 뭘까?